최재해 감사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3회 국회(임시회) 법제사법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에 출석하고 있다./뉴스1

윤석열 정부가 방송통신위원회를 ‘2인 체제’로 운영한 것이 불법이라며 야당이 감사원에 요구한 감사에 대해, 감사원이 ‘감사를 통해 판단할 사안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낸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감사원은 20일 감사위원회의를 열어 이런 내용을 담은 감사 보고서를 의결하고, 이후에 이를 국회에 보고할 예정이다.

이 감사 보고서는 민주당이 ‘국회가 요구한 사안은 감사원이 무조건 감사해야 한다’는 국회법 조항을 이용해 감사원에 시킨 감사 45건 가운데 첫 번째로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감사원은 이 사안에 대한 감사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감사관 5명을 투입해 방통위 현장 감사를 했고, 이후 4개월간 방통위의 소명 청취와 감사 보고서 작성, 검토 작업을 거쳐야 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지난해 9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방통위의 불법적 2인 구조 및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과정 등에 대한 감사 요구안’을 여당 반대에도 가결시켜 감사원에 보냈다. 방통위는 상임위원 5명으로 구성되고 이 가운데 3명은 국회가 추천하도록 돼 있는데, 민주당이 국회 추천 위원 선출을 거부해 이진숙 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 등 대통령 지명 위원 2명으로 운영돼 왔다. 이 2명은 KBS 이사 선임과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 선임 등의 안건을 심의·의결했다. 이것이 불법이니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감사 요구안을 통해 감사원에 구체적으로 ①방통위의 2인 체제를 통한 불법 운영과 ②2인 체제에서의 KBS·방문진 이사 선임 과정을 감사하라고 했다. ③방통위가 KBS·방문진 이사 선임 과정이 담긴 회의록·속기록을 제출하라는 국회 요청에 따르지 않은 것과 ④방통위가 여당에 KBS·방문진 이사 선임이 적법하다고 설명하는 문건을 제출한 것도 감사하라고 했다.

국회법에 따르면, 감사원은 국회 본회의 의결로 감사 요구를 받은 경우엔 5개월 안에 감사 결과를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지난해 10월 곧바로 감사팀을 구성해 감사에 들어갔다.

19일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이진숙 방통위원장 주재로 6차 위원회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8일 방통위 전체 회의 개의 정족수 3인 이상의 내용을 담은 방통위법 개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연합뉴스

문제는 야당이 지난해 8월 이미 이진숙 방통위원장을 같은 이유로 탄핵소추해 헌법재판소가 탄핵 심판을 진행하는 상태였다는 점이다. 감사원은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감사를 하지 않는다. 이미 강제 조사나 그 이후 단계가 진행 중인 사안을 감사원이 다룰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헌재의 탄핵 심판이 방통위 2인 체제의 불법성을 쟁점으로 해 진행 중이어서 감사원이 감사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감사 보고서에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 관계자는 “국회가 요구한 이번 감사 건과 똑같은 내용이 공익감사청구 등 다른 경로로 접수됐다면, 곧바로 각하 처리됐을 것”이라며 “국회의 무리한 감사 요구로 행정력 낭비가 벌어진 것”이라고 했다.

헌재는 올해 1월 이진숙 위원장 탄핵소추를 4대4로 기각했다. 기각 의견을 낸 헌법재판관 4명은 2인 체제에서 안건을 심의·의결한 것은 위법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래픽=이철원

감사원은 앞으로도 야당의 강제 감사 요구에 답하기 위해 인력과 자원을 계속 투입해야 한다. 민주당이 22대 국회 들어 감사원에 보낸 감사 요구는 45건에 달한다. 민주당이 보낸 감사 요구 중에는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의대 증원과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 도입,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 리버버스’ 사업을 감사하라는 내용이 있다. 정부의 역사 교과서 검정 절차에서 문제점을 찾아내고, 민주당의 검사 탄핵 추진에 반대하는 성명을 낸 검사들,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을 감사하라는 요구도 있다. 감사원은 이 감사들을 수행하기 위해, 국민적 관심 사안을 골라 실시하는 ‘기획 감사’를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