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방송통신위원회를 ‘2인 체제’로 운영한 것이 불법이라며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감사원이 요구한 감사에 대해, 감사원이 ‘우리가 결론을 내리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사실상 각하 결정을 내렸다.
앞서 지난해 9월 26일 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방통위의 불법적 2인 구조 및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과정 등에 대한 감사 요구안’을 여당 반대에도 가결시켜 감사원에 보냈다. 방통위는 상임위원 5명으로 구성되고 이 가운데 3명은 국회가 추천하게 돼 있는데, 민주당이 국회 추천 위원 선출을 거부해 이진숙 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 등 대통령 지명 위원 2명으로 운영돼 왔다. 이 2명이 KBS 이사 선임과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 선임 등의 안건을 심의·의결한 것이 위법이니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감사원이 25일 공개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방통위는 방통위법에 몇 명 이상이 있어야만 회의를 열 수 있다는 의사정족수 규정이 없다는 점과, 위원이 2명만 있어도 심의·의결이 가능하다는 법률 자문 결과를 바탕으로, 2인 체제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또 헌법재판소는 야당이 방통위 2인 체제가 위법이라며 이진숙 위원장을 탄핵 소추한 사건에 대해 지난 1월 4대4로 기각 결정을 내렸다. 기각 의견을 낸 헌법재판관 4명은 2인 체제에서 안건을 심의·의결한 것이 위법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반면 KBS·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임명 무효 확인 소송 등 방통위 2인 체제의 위법성이 쟁점이 된 소송이 14건 진행 중이고, 일부 소송 1심에서는 2인 체제가 위법이라는 취지의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2인 체제의 적법성에 대해) 사법기관 간에도 판단이 엇갈리는 상황”이라며 “감사원이 결론을 내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감사원은 “국민감사청구 등의 경우 수사·재판에 관한 사항은 감사 청구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회가 아니라 다른 경로로 들어온 감사 요청이었다면 감사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사안이라는 것이다.
야당은 방통위가 2인 체제에서 KBS·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선임한 것과 관련해 회의록과 속기록을 제출하라는 국회 요구를 따르지 않은 것도 국회증언감정법 위반이라며 감사원에 감사를 요구했다.
감사원이 확인해 보니, 방통위는 국회가 비공개 회의의 회의록과 속기록을 달라고 한 경우에는 이를 제출할 것인지를 별도의 회의에서 의결해야 한다는 자체 규정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야당은 방통위가 2인 체제에서 KBS·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선임안을 의결한 직후 이진숙 위원장을 탄핵 소추해 직무 정지시켰고, 이에 따라 방통위에는 김태규 부위원장만 남게 돼 회의가 열릴 수 없게 됐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방통위가 정당한 사유 없이 국회 요구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거나 성실하게 임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 곤란하다”고 판단했다. 방통위가 자체 규정상 회의록·속기록을 국회에 제출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제출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야당은 방통위가 KBS·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선임한 것을 적법하다고 설명하는 문건을 여당에 낸 것도 잘못이라며 감사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해당 문건은 국회에 이미 제출됐거나 공개된 사항을 담고 있고, 여당이 요구한 자료라서 여당에만 제출된 것”이라며 “이 문건 작성·제출 행위에 대해 위법·부당하다고 단정하기는 곤란하다”고 판단했다.
감사원의 결론은 야당이 문제 삼은 지점들에 대해 방통위의 잘못이 없거나,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감사원이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사실상 감사를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감사원은 감사관 5명을 투입해 방통위 현장 감사를 진행하는 등 4개월 넘게 이 사건 처리를 위해 자원을 투입했다. 이는 국회법이 국회가 본회의 의결로 요구한 사안에 대해서는 감사원에 무조건 감사를 해 5개월 안에 결과를 보고하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22대 국회 출범 이후 야당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해 감사원에 보낸 감사 요구는 45건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