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일 회사 이사가 충실(忠實)해야 하는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에 대해 국회에 재의를 요구했다.

한 대행은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열어, 상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한 대행은 “정부는 일반 주주 보호를 위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 및 주주 환원 제고에 노력해 왔고, 법안의 기본 취지에 깊이 공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 법안이 대다수 기업의 경영 환경과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라며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 대행은 “이 법안의 취지는 이사가 일부 집단의 이익뿐 아니라 모든 주주의 이익을 공정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되나, 현실에서 어떤 의사 결정이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는 것인지 이 법안의 문언만으로는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불명확성으로 인해, 이 법안은 본연의 목적을 넘어, 기업의 경영 의사 결정 전반에서 이사가 민·형사상 책임과 관련한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된다”며 “적극적 경영 활동을 저해해 국가 경제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한 대행은 “이번 재의 요구권 행사는 상법 개정안의 기본 취지에 반대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는 상장 기업의 합병·분할 등 자본 거래에서 일반 주주를 보호할 수 있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며 국회에 “오늘 재의 요구하는 법안(상법 개정안)과 정부가 제시한 대안(자본시장법 개정안)을 함께 놓고, 다시 한번 심도 있게 논의해 바람직한 방안을 모색해 달라”고 했다.

한 대행이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이번이 일곱 번째,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마흔한 번째다. 정부는 상법 개정안을 국회로 돌려보내 재의결을 요구할 예정이다. 국회는 법안을 재표결에 부쳐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법률로 만들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법안은 폐기된다.

◇한덕수 권한대행의 관련 발언 전문

지난 3월 13일 주식회사의 이사에게 주주 충실 의무 등을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정부로 이송돼 왔습니다.

정부는 지금까지 일반 주주 보호를 위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 및 주주 환원 제고에 확고한 의지를 갖고 일관되게 노력해 왔습니다. 이에 동 법률안의 기본 취지에 깊이 공감합니다.

다만, 이 법률안이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을 포함한 대다수 기업의 경영 환경 및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에서, 보다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돼, 고심을 거듭한 끝에 국회에 재의를 요구하고자 합니다.

이 법률안의 취지는 이사가 회사의 경영 의사 결정 과정에서 지배 주주 등 일부 집단의 이익만이 아니라 모든 주주의 이익을 공정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어떤 의사 결정이 총주주 또는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는 것인지, 동 법률안의 문언만으로는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이에 기업의 다양한 의사 결정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혼란이 일어날 우려가 있습니다.

이러한 불명확성으로 인해 동 법률안은 일반 주주의 이익이 부당하게 침해당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본연의 목적을 넘어, 기업의 경영 의사 결정 전반에서 이사가 민·형사상 책임과 관련한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됨으로써, 적극적 경영 활동을 저해할 소지가 높습니다. 이는 결국 일반 주주 보호에도 역행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국가 경제 전체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법 과정에서 입법 취지를 명확히 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충분한 협의 과정이 부족했습니다.

정부는 이러한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상장 기업의 합병·분할 등 일반 주주 이익 침해 가능성이 큰 자본 거래에서 보다 실효성 있게 일반 주주를 보호할 수 있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대안으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이를 통해 상장회사 중심으로 일반 주주 보호와 기업 지배 구조 개선 관행이 정착되고 관련 판례도 축적돼 가면서, 단계적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에 더욱 적합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번 재의 요구권 행사는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의 기본 취지에 반대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대내·외 경제 여건이 매우 불확실한 상황에서, 기업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지 않으면서도 투자자 보호와 기업 지배 구조 개선을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을 다시 한번 모색해 보자는 취지입니다. 오늘 정부가 재의 요구하는 법안과 정부가 제시한 대안을 함께 놓고 국회에서 다시 한번 심도 있게 논의해 바람직한 방안을 모색해 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아울러, 기업들도 상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표출된 시장의 기업 지배 구조 개선 요구를 엄중히 받아들이고, 합리적 대안 마련을 위한 논의에 전향적으로 참여하는 한편, 주주 가치를 최대한 보호하는 방향으로 기업 관행을 개선해 나가줄 것을 당부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