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4일 “하루이틀 사이에 알래스카 LNG(액화천연가스)와 관련해 한미 간 화상 회의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한국에 일방적으로 부과한 관세율을 낮추기 위한 한미 통상 협상이, 트럼프 행정부가 1기 때부터 추진해 온 알래스카 LNG 사업을 매개로 시작되는 것이다.

한 대행은 이날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경제안보전략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주재하고 “한미가 조선(造船), LNG, 무역 균형 개선·회복 등 3대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고, 양국 간에 논의를 이어가기 위한 우호적인 모멘텀이 형성됐다”며 “(알래스카 LNG 사업 협의를 계기로) 정부는 앞으로 관세로 인한 부담을 최소화하는 노력을 하겠다”고 했다.

한 대행은 협상 틀과 관련해서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중심으로 협상단을 구성해, 빠른 시일 내에 방미해 본격 협상에 착수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양쪽의 관심 사항을 고려해서, 장관급 등 각급에서 협의를 신속히 추진해 상호 모두 이익이 되는 합의점을 찾아나가도록 하겠다”며 미국 측과 논의할 현안이 있는 모든 부처가 미국 측 상대 부처와 협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전 정부 차원에서 협상에 임하겠다는 뜻이다.

한 대행은 경제안보전략 TF를 통해 대미 협상을 총괄 조정한다. 한 대행은 “필요한 경우에는 (제가)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소통해서 해결점을 만들어 나가도록 하겠다”고 했다. 한 대행은 앞서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도 “저는 그간의 통상 경험을 바탕으로, 관련 네트워크 등을 충분히 활용해, 저에게 부여된 마지막 소명을 다하겠다”고 했다.

◇日·인도와도 협상 서두르는 美… 한국, 트럼프 관심사부터 공략

한덕수 대행이 이날 미국과 통상 협상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것은 지난 8일 한 대행과 트럼프 미 대통령의 통화 이후 벌어진 상황 변화와 관련이 있다. 미국이 지난 2일(현지 시각) 한국 등 57국에 ‘상호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대미 수출 비율이 높은 한국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 요청으로 지난 8일 한 대행과 트럼프 대통령이 통화했고, 한 대행이 먼저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선·LNG 사업과 ‘무역 균형’ 문제를 협상으로 풀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을 포함해서 “원스톱 쇼핑”을 할 수 있다고 시사하면서 여기에 호응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대행은 14일 “지난주 협상을 어떻게 진행해갈 것인가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상세히 설명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매우 만족해하면서 ‘한국·일본·인도 등 3국과는 즉각 협상을 진행하라’고 밑에 지시한 것 같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 대행과 통화 직후 국가경제위원회(NEC)에 “무역 협상에서 한국·일본 같은 동맹을 우선하라”고 지시했고, 9일 상호 관세 발효를 90일 유예하면서 한미 간에 협상할 시간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한 대행이 언급한 일본과 인도도 최근 미국과 본격 협상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이날 트럼프의 관세 조치에 대해 “더는 없을 정도로 정밀하게 분석해 임하고 싶다”며 차분하게 미국을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미·일 관세 협상 책임자로 지정된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은 16일 미국을 방문해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과 만날 예정이다. 지난 12일 힌두스탄타임스 등에 따르면, 인도의 통상 담당 당국자는 “우리는 미국과 무역 협상에서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앞서 있고, 90일 동안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다”며 90일 안에 무역 협정 관련 잠정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마이크 왈츠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오는 21일 인도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인도 언론이 보도했다.

한국 정부는 협상 전략과 관련해 트럼프 행정부가 1기 때부터 알래스카 LNG 사업에 큰 관심을 보여온 것에 주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업은 알래스카 최북단에서 천연가스를 생산하고, 이를 1300㎞에 이르는 가스관을 만들어 알래스카 남해안으로 운송한 뒤 LNG선에 실어 한국·일본 등 아시아 시장에 파는 사업이다. 사업은 알래스카 공기업이 추진하는데, 들어갈 돈이 440억달러(약 64조원)다. 미국은 해외 투자를 통해 사업을 추진하려 한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지난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하자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대미 협상 카드로 쓰는 방안을 검토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행은 지난해 11월 기자들과 만나 ‘미국산 에너지나 농수산물을 수입해 대미 무역 흑자를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는 질문을 받자 “미국에서 (그런 물품을) 사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천연가스나 원유처럼 어차피 수입해야 하는 에너지원의 수입처를 중동에서 미국으로 돌리면, 한국과 ‘무역 불균형’이 생기는 데 대한 미국의 불만을 상당히 잠재울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다만 정부가 이번 협의를 계기로 알래스카 LNG 사업 투자를 확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업성이 확실하지 않고, 실패 때 자금 손실이 막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사업 직접 참여보다는 알래스카산 LNG를 구매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또 미국 정부 부처와 동시다발로 협상에 나서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원스톱 쇼핑’ 구상에 호응하는 모양새를 보일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부는 관세 등 경제 현안과 방위비 분담금을 연계하는 데는 거리를 두고 있다. 한 대행은 이날 TF 회의에서 “조선 협력, LNG, 무역 균형”을 협상 과제로 제시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통화에서 언급한 분담금 문제는 거론하지 않았다. 정부에선 한미 정상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분담금 증액 요구가 예상한 만큼 직접적이지는 않았다고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은 50일 뒤면 대선으로 대통령이 바뀌고, 미국은 무역 정책이 하루하루 달라지는 상황”이라며 “협상을 무작정 서두르는 것은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라는 이유로 협상을 미루고 있다가는 새 대통령이 취임 후 한 달 만에 협상을 매듭지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며 “한 대행 임기 중에 협상 윤곽을 잡아놓아야 한다”고 했다.

☞알래스카 LNG

알래스카 LNG(액화천연가스) 사업은 미국 알래스카주 북부의 천연가스전을 개발하는 에너지 인프라 사업이다. 알래스카주 북부 가스전에서 생산한 천연가스를 1300㎞ 길이 파이프 라인을 통해 남부 해안의 니키스키 지역으로 운송한 뒤 LNG로 가공해 수출하는 게 목표다. 총사업비는 44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