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7일 김현미(왼쪽) 국토교통부 장관과 김상조 정책실장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5년 임기 대부분 기간에 걸쳐 주택·소득·고용에 관한 통계를 조작·왜곡했다고 감사원이 17일 밝혔다. 조작은 청와대의 지시나 압박에 따라 이뤄졌고, 장하성·김수현·김상조·이호승 등 문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 전원이 연루됐다. 감사원은 ‘문 정부 통계 조작 의혹’에 대해 2022년 9월 감사에 착수했고, 2년 7개월 만인 이날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그래픽=김현국

감사원이 이날 공개한 903쪽 분량의 ‘주요 국가 통계 작성 및 활용 실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이 매주 조사해 작성하는 ‘전국 주택 가격 동향 조사’ 통계를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3년 10개월간 102차례 조작했다. 부동산원이 작성 중인 집값 상승률 통계를 공표 전에 불법적으로 미리 받아 보고, 수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압력을 넣어 집값 상승률을 낮추거나 아예 하락한 것으로 바꾸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협조하지 않으면 조직과 예산을 날려 버리겠다”는 협박도 가해졌다.

분기별 가계 소득 통계도 청와대의 압박을 받은 통계청 직원들이 산정 방식을 무단으로 바꿔 소득 감소를 소득 증가로 둔갑시켰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감사원은 문 정부가 조작·왜곡한 통계 중에서 특히 집값 상승률 통계는 원자료 입력 단계에서부터 조작돼, 정상적인 통계로 복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에 따라, 이 통계를 근거로 산정되는 재건축 초과 이익 환수금 부과를 둘러싸고 정부 상대 소송이 잇따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유경준 전 국민의힘 의원은 문 정부의 통계 조작으로 재건축 조합원들이 더 내게 된 환수금이 1조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靑·국토부까지 나서… 임기 내내 부동산·소주성 통계 대놓고 조작

그래픽=김현국

문재인 정부는 핵심 경제정책인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의 실패와 부동산 가격 안정 정책의 실패를 감추기 위해 통계를 조작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문 정부 청와대는 집값은 급등하고 가계 소득은 감소하며 비정규직은 늘고 있다는 통계가 잇따라 나오자, 한국부동산원과 통계청 등 통계 작성 기관들을 압박해 현실을 감추는 ‘좋은’ 통계를 내놓게 했다.

부동산 통계 조작은 사실상 문 정부 출범 때부터 시작됐다.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청와대는 2017년 6월 문 정부 들어 첫 부동산 대책 발표를 앞두고, 부동산 대책의 효과를 확인해보고 싶다며 부동산원에 작성 중인 집값 상승률 통계를 매주 가져오게 했다. 그러더니 이듬해 1월부터는 “수치가 잘못됐다” “시장을 똑바로 보고 있는 것이냐”고 질책했다. 부동산원과 소관 부처인 국토교통부에 통계 수치를 ‘재검토’하게 했다. 통계를 조작해 집값 상승률을 낮춰 오라는 요구였다.

그 뒤로 문 정부 내에서 집값 상승률 통계 조작은 수시로 이뤄졌다. 감사원은 청와대 행정관들이 “진짜 다음 주는 ‘마사지’ 좀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메시지를 서로 주고받고, 다른 부서로 전보가 예정된 국토부 담당자에게 “가기 전에 마사지 좀 하고 가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 포착됐다고 밝혔다. 국토부에서도 “부동산원에 (집값 상승률) 마이너스로 조정해 달라고 해봐” “이번 주는 0.05%보다 낮게 나와야 한다” 등의 이야기가 일상적으로 오갔다. 2021년 6월에는 국토부 고위 관계자들 간의 단체 대화방에서 “차관님 생각에는 이 정권의 명운이 주택 가격 동향 조사에 달려 있다. 지금도 (집값이) 오르는데 (통계 수치를) 두 배로 올리면 현 정부는 실패한 정부가 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매일같이 통계 조작 요구를 받은 부동산원 직원들끼리 “얘들아 국토부에서 (집값 상승률) 낮추란다. 낮추자” “폭주를 하네요. 갑질 시전. 최근에는 대놓고 조작하네요” 등의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도 확인됐다.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통계청은 2017년 5월 25일에 ‘1분기에 국민의 소득 불평등이 심해졌다’는 통계를 내놨다. 문 전 대통령 취임 전의 일이지만,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보좌관은 통계청에 ‘수치가 나빠진 원인을 분석해 보고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통계청이 분석 결과를 가져가자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TF를 꾸려 ‘대응 방안’을 만들어 오라고 했다. 사실상 통계 수치를 좋게 만드는 방법을 개발해 오라는 의미였다.

문 정부 출범 후인 2017년 6월 이후 가계 소득도 감소했다는 결과가 나오자 통계청 직원들은 청와대의 질책을 의식해 산정 방식을 바꿔 가계 소득이 오히려 증가한 것처럼 숫자가 나오게 했다. 2017년 3분기와 4분기에도 가계 소득 중 근로 소득이 계속 줄어드는 것으로 나왔지만, 통계청 직원들은 같은 방식으로 감소를 증가로 둔갑시켰다.

2018년 1분기에는 소득 불평등이 역대 최악으로 악화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려 계층 간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고, 이들의 소비를 기반으로 경제 성장도 하겠다는 소주성 정책과 반대의 결과였다. 그러자 통계청 직원들은 역시 통계 산식을 바꿔, 소득 분배 악화 통계를 축소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렇게 왜곡한 결과도 만족스럽지 않다고 봤다. 홍장표 당시 경제수석은 “뭐라도 분석해야 한다”며 통계청 담당자들에게 원자료를 갖고 오게 했고, 이 자료를 강신욱 당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등에게 다시 분석하게 했다. 이들은 ‘가계 소득은 감소했지만 저임금 근로자 개개인의 임금은 많이 올랐다’는 설명을 만들어냈다. 홍 전 수석은 여기에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근거 없는 해석을 덧붙였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문 전 대통령은 이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2018년 5월 국가 재정 전략 회의에서 “소득 주도 성장은 최저임금 증가의 긍정적 성과이고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자찬했다.

감사원은 앞서 2023년 9월 이 감사 중간 결과를 발표하면서 청와대 정책실장 4명과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등 청와대·국토부·통계청·부동산원 관계자 22명을 검찰에 수사 요청했고, 검찰이 이 가운데 하급자를 제외한 11명을 기소해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감사원은 이날 감사 최종 결과를 발표하면서, 수사·재판과 별도로 통계 조작 관련자 31명에게 징계 등의 조치를 해야 한다고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