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이 한국 드라마를 봤다는 이유로 10대 소녀들을 수갑 채워 체포하고, 가족 신상까지 공개하며 비판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한국 문화 확산을 생사의 문제로 규정하면서 강력하게 단속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4일 KBS는 2021년 5월 이후 북한에서 제작된 주민과 군인 교육용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앳돼 보이는 모습의 여성들이 맨 앞줄에 줄지어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이후 한 여학생이 마이크 앞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화면에는 ‘김○○ 송신기술고급중학교 학생(16살)’이라며 신상이 담긴 자막이 삽입됐다.
여학생 여러 명이 마이크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 “괴뢰(한국) 텔레비전극(드라마)을 비롯한 불순 출판 선전물을 시청‧유포시킨 여러 명의 학생을 법적으로 엄하게 처벌했습니다”라는 내레이션이 흘러나왔다. 10대 여학생들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는 장면이 이어졌다.
심지어 처벌받은 당사자 외에 가족이 사는 곳, 아버지와 어머니 이름, 어머니의 직업까지 공개됐다. 문덕고급중학교 교원인 어머니를 두고는 “딸자식 하나 바로 교양하지 못해서 범죄의 구렁텅이에 굴러떨어지게 한 자신(모친)이 맡은 학생들에 대한 교육, 교양을 했으면 얼마나 잘했겠습니까?”라고 비판했다.
북한 군인들 사이에서도 한국 영화와 드라마 시청이 보편화됐음을 짐작할 수 있는 영상도 있었다. 한 북한군 병사는 “나는 내가 이용하던 손전화기로 미국 영화 15편과 남조선 괴뢰 영화 17편에 괴뢰 노래 160여 곡을 시청했다”고 자백했다. 또 다른 병사의 어머니는 “(아들이) 불순 녹화물을 보다가 단속 체포되었다고 말해줬다. ‘내가 아들이 아닌 역적을 낳았구나!’하며 또다시 통곡했다”며 오열하기도 했다.
영상은 “군인, 종업원, 가족들에 이르기까지 이 악성 종양과의 투쟁을 자기 생사 문제로 여겨야 한다”며 한국 문화 확산을 생사의 문제로 보고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0년 탈북한 장미씨는 한국의 고등학생에 해당하는 친구들이 처벌받는 사례는 처음 봤다고 했다. 수갑을 채운다는 것 역시 그에게는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코로나 시기 중국과의 교역 중단 이후 경제난이 심화하자 북한 당국이 주민 동요를 막기 위해 통제를 강화하면서 인권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는 분석이다.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 관리 출신인 리정호의 아들로 2014년 탈북해 미국에 정착한 이현승 글로벌평화재단 연구원은 지난 7월 워싱턴DC의 허드슨연구소 주최 대담에서 최근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를 본 중학생 30여명이 공개 처형됐다고 했다. 이 연구원은 “저는 김정은이 세계가 북한에 정보를 보내는 것을 단념하게 하려고 일부러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학생들을 처형한다고 믿는다”며 “북한 주민에게 정보는 물과 같다. 북한 주민이 진실과 정보를 추구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