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전 대한적십자사 국제남북본부장은 16일 북한의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철거에 대해 “이산가족의 마지막 희망을 짓밟는 잔인한 행위”라며 “건물 외벽 타일만 교체하는 수준에서 멈추길 바란다”고 했다.

2015년 10월 북한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 모습. 사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김성근 전 한적본부장. /본인 제공

김 전 본부장은 이날 전화 통화에서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는 금강산 지역 내 다른 시설물과는 성격이 다르다”며 “단순한 콘크리트 시설물이 아니라 이산가족의 염원을 담아 남북 합의하에 함께 올린 건물”이라고 했다. 김 전 본부장은 “이산가족면회소는 남북 합의하에 함께 지었고 인도주의적 염원이 담긴 건물이기 때문에 북측이 면회소만큼은 마지막까지 손을 안대고 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면회소까지 손을 댄다는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되는 일이고 북한이 갈데까지 가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산가족면회소는 이산가족들이 언젠가 한번은 헤어진 북측 가족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는 그런 건물”이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9년 금강산 지역을 방문한 자리에서 말한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이 아니다”고 했다. 이산상봉 행사 이외 몇번 사용하지 않아 내부 시설물은 새 건물이나 다름없고 정기적 보수 작업만 해주면 된다는 것이다.

이산가족면회소는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위해 지하 1층, 지상 12층 규모로 2008년에 완공된 시설이다. 우리측 남북협력기금 약 550억이 투입된 우리측 자산이다. 5만㎡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12층 규모로 600명 수용 가능한 행사장과 회의실을 비롯해 206실의 객실이 갖춰져 최대 1000여 명 수용 가능한 규모로 지어졌다. 객실 206실 가운데 128실은 콘도구조로 되어 있다. 김 전 본부장은 “이산가족들이 만났을 때 하룻밤 같이 잠 자면서 라면이라도 같이 끓여먹는 시간을 꿈꾸며 설계한 공간”이라며 “면회소 건물은 양쪽이 마주보고 있는 건물 디자인으로 두 동이 딱 붙어있다”며 “왼쪽은 남쪽, 오른쪽은 북쪽 가족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해서 남북 양쪽 가족들이 중앙에서 만나는 모습을 담은 것으로 이산가족의 염원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김성근 전 대한적십자사 국제남북본부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2014년 2월 '폭설 상봉'을 앞두고 금강산이산가족면회소 앞에서 관계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한 모습. 면회소의 좌우 원형 기둥이 쌍둥이처럼 붙어 있다. 남북 이산가족이 중앙 통로에서 만나는 모습을 담은 설계라고 한다. /본인 제공

김성근 전 본부장은 대한적십자사(한적)에서 남북 적십자회담 대표와 적십자 실무회담 대표를 맡아 남북 간 이산상봉을 비롯한 인도주의적 현안을 해결하는 현장에 있었다. 이산가족팀장, 회담지원팀장, 남북교류팀장과 남북교류국장·국제남북본부장으로 근무하며 남북 적십자회담 등 25년간 실무 업무를 총괄한 이산상봉의 산 증인이다.

김 전 본부장은 “이산상봉은 이산가족들의 고령화를 생각하면 시간을 더 끌수 없는 당장의 과제”라며 “이산가족 문제를 풀지 않고 다른 남북 간 교류 협력 사업들은 진전을 이루기 어렵다”고 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작년 12월말 기준 1988년부터 현재까지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한 인원은 총 13만4291명이다. 이 가운데 생존자는 3만6941명뿐이다. 이 중 90대가 1만1349명, 80대가 1만2845명으로 각각 전체의 약 30.7%와 34.8%를 차지할 정도로 고령화가 심각하다.

김 전 본부장은 김대중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25년간 평양, 금강산, 개성, 신의주, 남포, 해주, 원산 등 북한 지역을 30여차례 방문했다. 북한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북측과 인도적 현안들에 대해 협의했다. 이런 경험을 담아 작년 12월 퇴임 이후 올해 1월 ‘경계에 선 나날들’이란 책을 펴냈다. 이 책에는 ‘애환과 희망의 남북 교류 현장 30년 분투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김성근 전 대한적십자사 국제남북본부장이 2015년 남북 이산상봉 행사를 위해 금강산을 찾았을때 모습. /본인 제공

김 전 본부장은 이 책에서 “내가 1990년대 후반부터 25년 동안 관여한 대북 관련 업무는 (남북 간) 협력보다 대결의 시간이 더 길었다”며 “그 만큼 대화가 어렵다는 사실이 방증되는 시간이었고 대화 단절기에 북한을 상대했던 경험은 힘들고 어려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소한 비상 상황에 대비해 남북 연락 채널은 있어야 한다”며 “정부가 나서기 어렵다면 적십자사를 통해서라도 대화 창구를 열어둬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