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9일 담화에서 비핵화에 대해 “사문화된 개념”이라며 “시대착오적”이라고 했다. 한·미·일 3국의 비핵화 촉구를 두고는 “뭐가 모자란다는 말밖에 듣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대화 의사를 공개적으로 여러 번 언급했으나 북한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는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발신했다는 분석이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조선중앙TV 화면 캡처

북한은 이날 김여정 담화를 북한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 2면에 실었다. 김여정은 담화에서 비핵화를 “실패한 과거의 꿈” “실현 불가능한 망상” “사문화된 개념” “시대착오적”이라고 했다. 김여정은 최근 한·미·일 외교장관이 나토 외교장관회의를 계기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강조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데 대해 “아직까지도 실패한 과거의 꿈속에서 헤매이며 ‘완전한 비핵화’를 입에 달고 다니는 것은 자기들의 정치적 판별 수준이 어느 정도로 구시대적이고 몰상식한가를 스스로 세상에 드러내 보이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끼리끼리 모여 앉을 때마다 아무리 애써 궁리하고 부르짖어 봤자 그 누구의 ‘비핵화’를 실현시킬 비책이 떠오르던가”라며 “진짜 그것을 믿고 ‘비핵화’를 열창하는 것이라면 뭐가 모자라다는 말밖에 듣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김여정은 이날 담화에서 “실제적이고 매우 강한 핵억제력의 존재와 더불어 성립되고 전체 조선 인민의 총의에 따라 국가의 최고법, 기본법에 영구히 고착된 핵보유국 지위는 외부로부터의 적대적 위협과 현재와 미래의 세계 안보 역학구도의 변천을 정확히 반영한 필연적 선택의 결과”라며 “그 누가 부정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이어 “그 누구의 부정도 인정도 우리는 개의치 않으며 우리는 우리의 선택을 절대로 바꾸지 않는다”며 “우리의 확고부동한 선택”이라고도 했다. 김여정은 한·미·일 3국을 향해 “직면한 안보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현 (핵보유국) 지위를 흔들어보려는 일방적인 현상변경 시도를 철저히 포기하고 정면충돌을 피하는 방법을 골똘히 더듬어 찾는 것뿐”이라고 했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비핵화 관련 공식 입장을 내놓은 건 이번이 네 번째로, 김여정 명의 담화는 대응 수위가 가장 높은 것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여정의 이번 담화는 일련의 북·미 접촉 전 ‘비핵화 불가’ 및 핵보유국 인정이라는 (협상) ‘문턱’을 확실하게 상기시키려는 의도를 띠고 있다”고 했다. 홍 연구위원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대화 시사, 핵보유 인식 발언 등 대북한 접근 가능성을 의식해 트럼프 행정부에 확실한 북한 입장을 전달하려는 의도”라며 “김여정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말한 ‘안보 우려 해소 차원의 접근’은 핵군비 통제를 의미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