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5일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역점 추진하는 전략다자안보협의체 ‘쿼드(Quad)’와 관련,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미국이 중시하는 ‘쿼드’와 관련해 우리 정부 고위 관계자가 공개적으로 부정적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특히 다음 달 초로 예정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한을 앞두고 이 같은 발언을 해 그 의도가 주목된다. 외교가에선 “한국 정부가 미·중 사이에서 미국의 동맹보다는 ‘중립국’을 자처하기로 작심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강 장관은 이날 미 비영리단체 아시아소사이어티가 개최한 화상회의에서 ‘한국은 쿼드 플러스에 가입할 의향이 있느냐’는 사회자 질문에 “다른 국가들의 이익을 자동으로 배제하는 그 어떤 것도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쿼드는 미국, 일본, 인도, 호주의 4자 안보 협의체이다. 미국은 쿼드에 한국을 비롯해 자유민주주의 등을 주요 가치로 공유하는 아시아 주요 나라를 참여시키는 ‘쿼드 플러스’ 구상을 언급해왔다. 전문가들은 ‘쿼드 플러스’가 ‘아시아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미국이 냉전 시기 ‘나토’로 소련에 맞섰듯이 신(新)냉전이라 불리는 ‘미·중 전쟁’에는 ‘쿼드 플러스’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포위 전략’을 구사하려 한다는 것이다.

강 장관은 이날 “우리는 쿼드 가입을 초청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앞서 미국이 여러 채널을 통해 쿼드 등 대중 정책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하며 사실상 지지와 협조를 요청하긴 했지만, ‘쿼드 가입’이라는 정식 초청은 없었다는 것이다. 강 장관은 또 “우리는 특정 현안에 대한 대화에 관여할 의사가 있지만, 만약 그것이 ‘구조화한 동맹’이라면 우리의 안보 이익에 도움이 되는지 심각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화한 동맹’은 한미 동맹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 강 장관은 “그러나 구체적인 현안에 대해서는 우리는 포용적이고 개방적이며 국제규범에 따르는 접근을 보유한 이들과는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강 장관은 사회자가 ‘미·중 양국과 동시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게 현실적이냐’고 질문하자 “(특정 국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은 도움이 안 된다”고 답했다. 이어 “우리는 한미 동맹이 우리의 닻(anchor)이라는 점을 매우 분명히 하고 있다”면서도 “중국은 우리의 가장 큰 교역·경제 파트너로, 우리 기업인과 시민들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것이다.

강 장관의 발언을 놓고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가 다른 국가 이익을 배제해선 안 된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힌 쿼드는 미국이 동맹국의 적극적 동참을 기대하는 핵심 안보협의체이기 때문이다. 복잡하게 연계된 안보와 경제를 무 자르듯 분리해 각기 대응하려는 듯한 태도도 비현실적이란 지적이다. 미국은 중국 통신 기업 화웨이 등에 대해 경제 제재를 가하면서 주요 근거로 통신 기술력을 통한 안보 위협을 든다. 경제와 안보가 실타래 꼬이듯 복잡하게 상호 연관돼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외교 수장이 미국 단체가 주최한 회의에서 미 국무장관의 방한을 앞두고 미 정책에 비판적인 발언을 한 것도 부적절했다는 지적이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 한미 현안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앞서 미 국무부는 지난 6월 주미 한국 대사가 미·중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한 입장을 밝히자 이례적으로 “한국은 수십년 전 이미 (미·중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설지 선택했다”는 논평을 냈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지난달 말 방한한 양제츠(楊潔篪) 중국공산당 정치국 위원이 ‘미국 편에 서지 말라’고 압박한 것이 우리 정부의 미·중 전략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