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8일 국회 법사위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 개정안을 군사작전 펼치듯 강하게 밀어붙여 2시간 만에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법안 강행을 막기 위해 국민의힘이 신청한 법사위 안건조정위는 밀실에서 77분 만에 끝났다. 여당은 30분 뒤 법사위 전체회의를 열어 공수처법 개정안을 ‘기습 상정’했다. 야당 의원의 반대 토론도 막은 채 6분 만에 처리했다. 국민의힘은 “명백한 입법독재”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느냐”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거여(巨與)의 폭주에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윤호중(오른쪽에서 둘째)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8일 오전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 통과를 위해 의사봉을 왼손으로 잡고 두드리려 하자 국민의힘 주호영(오른쪽에서 셋째) 원내대표가 저지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①언론 쫓아내고 ‘밀실 날치기’

민주당은 이날 오전 9시 15분 안건조정위를 열고 민주당 백혜련 의원을 위원장으로 일방 선출한 뒤 곧바로 회의를 비공개로 돌렸다.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이 “뭐가 무서워서 비공개로 하느냐. 부끄러운 줄 아는 모양”이라며 따졌지만, 백 의원은 “이런 모습을 보이려고 언론을 부른 것이냐. 여러분의 모습이 부끄럽다”고 했다. 비공개 조치에 현장에 있던 취재·카메라 기자들은 모두 회의실에서 밀려 나왔다.

‘밀실 회의’에서 민주당은 56분 만에 공수처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야당이 계속 이의를 제기하며 반발했지만 백 의원은 “토론을 종결하겠다”며 표결에 부쳤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이렇게 권력의 앞잡이가 돼서 무슨 영화를 누리려는 것이냐”, “역사가 두렵지 않나. 하늘이 두렵지 않나. 자신이 부끄럽지 않나”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 3명과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의 찬성으로 공수처법은 통과됐고, 안건조정위는 오전 10시 32분 종료됐다.

민주당의 공수처법 개정안 법사위 강행 처리 과정

②野 토론 요청엔 “그럴 상황 아냐”

민주당은 30분 뒤 법사위 전체회의를 기습적으로 열어 공수처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당초 이 회의에선 낙태죄 관련 공청회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국민의힘 의원들이 한숨 돌리는 틈에 공수처법을 첫 안건으로 올린 것이다. 야당 의원들은 법사위원장석으로 몰려가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이 이래도 되느냐”, “날치기도 정도껏 해야 한다”며 강하게 항의했다.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은 반대 토론을 신청했다. 그러나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지금 토론을 진행할 상황이 아니니까 토론을 종결하겠다”고 했다. 그는 항의하는 야당 의원들에게 “지금 토론을 진행할 수 없잖아”라고 고함을 친 뒤 곧바로 기립 표결을 시작했다. 민주당 의원 전원과 최강욱 의원이 일어났고, 상정 5분 만에 공수처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③비용 추계, 法 통과 후 ‘날림 처리’

민주당이 야당 반발을 무시한 채 공수처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황당한 실수도 벌어졌다. 법안을 표결하기 전에 공수처에 예산이 얼마나 들어가는지가 담긴 ‘비용 추계서’를 의결해야 했다. 하지만 윤 위원장이 다급하게 법안부터 처리하다 이를 건너뛴 것이다. 윤 위원장은 뒤늦게 “옆에서 시끄럽게 해서 제가 (의결을) 생략했다. 비용 추계서를 생략하는 데 이의가 없으시냐”며 생략 여부까지 표결에 부쳤다.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은 “날치기를 하니까 실수하지”라고 했다.

윤 위원장은 공수처법 개정안 통과를 공표할 땐 의사봉을 왼손에 들고 책상 위를 3번 두드렸다. 주호영 원내대표가 오른손을 잡자 급하게 의사봉 받침대가 아닌 책상을 친 것이다. 다만 의사봉을 두드리는 것은 법적 효력은 없는 관행적 행위다. 야당은 “온 종일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장면까지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회의장에 놓여 있던 자신들의 명패를 윤 위원장 앞에 던지듯 반납하고 회의장에서 나왔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이를 지켜보다 말없이 국회를 떠났다.

④與는 “야당이 국회법 위반”

민주당은 공수처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뒤 오히려 “야당이 국회 선진화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법사위원인 김남국 의원은 “법사위원이 아닌 의원이 들어와서 의사봉을 빼앗거나 의사 진행을 못 하게 소리를 지르는 것은 명백한 국회 선진화법 위반”이라고 했다. 또 “윤 위원장이 질서유지권을 행사해주셔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국민의 눈과 귀까지 막아가면서 의회 폭거를 저질러놓고는 적반하장으로 법 위반을 운운하고 있으니 이게 바로 입법독재 아니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