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이 30일 민주화 유공자의 배우자와 자녀에게 교육·취업·의료·대출 지원을 하는 내용의 ‘민주 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정을 철회했다고 밝혔다. 설 의원 등 여권 의원 73명이 지난 26일 법안을 발의한 지 닷새 만이다. ’86 운동권 셀프 특혜'를 지적하는 각계 반발이 이어지고, 민주당 내에서도 “보궐선거를 앞두고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지 말자”는 지적이 나오는 것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설 의원은 이날 “법안에 대한 논란을 감안해 국회 의안과에 법안 철회 요구서를 제출했다”고 했다. 이 법은 지원 대상에 민주화 운동 관련 사망·부상자뿐 아니라 관련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까지 포함해 ‘운동권의 셀프 특혜’라는 지적이 나왔다. 기존에 국가유공자로 인정받던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외에 6·10 민주항쟁 등 1980년대 운동권을 수혜 대상에 포함시켜 논란이 커졌다.
이 법 발의 사실이 알려지자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대학 때 몇 년 학생 운동 한 경력으로 국회의원 된 자들이 자기 자식들에게 유공자 특혜를 세습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특히 민주화 운동에 관여했던 사람들조차 “돈과 보상을 바라고 민주화 운동을 한 것이냐” “유공자 지위를 반납하겠다”며 법안 철회를 요구했다. 김영환 전 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이럴려고 민주화 운동을 했냐. 나와 내 가족은 특별법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며 “민주화 운동 유공자 지위를 오늘부로 반납하겠다”고 했다. 김 전 의원은 연세대 치대에 재학 중이던 1977년 유신헌법 철폐를 촉구하는 민주화 운동으로 구속됐다. 출소 이후 다시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수배를 당했고, 본인과 배우자가 함께 구속돼 부부 모두 5·18 유공자로 인정받았다.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해 정치 인생 대부분을 민주당에서 보낸 그는 “무엇을 더 이상 받겠단 말인가. 이럴려고 민주화 운동을 했는지 부끄럽다”고 했다.
김윤 국민의당 서울시당위원장도 “민주화 운동을 팔아 사리사욕만 채우는 이들과 한때 동지(同志)였다는 사실이 한없이 부끄럽다”며 설 의원 법안을 비판했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81학번인 김 위원장은 1994년까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했다. 그는 “일말의 양심과 나라를 생각하는 애국심이 털끝만큼이라도 남아 있다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도 했다.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는 “나도 민주화 운동을 했지만 이것이야말로 운동권 귀족 계급의 탄생이고, 민주화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흐리는 일”이라고 했다. 박 후보는 고려대 사회학과 78학번으로 학생 운동 당시 오른쪽 눈에 최루탄을 맞아 시력의 상당 부분을 잃었다. 서울대 운동권 출신인 원희룡 제주지사는 설 의원 법안에 “결단코 반대한다”며 “말이 민주 유공자 예우법이자 민주화 특권법이다. 민주화 정신을 짓밟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설 의원 법안에 이견이 적지 않았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초 100인 이상 발의를 목표로 했지만 당내 의원들의 호응이 저조해 70여명이 서명하는 데 그쳤다”고 했다. 재·보궐선거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들도 ‘발의 시점이 적절치 않다’며 재고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LH 사태 같은 연이은 악재로 2030이 반문(反文)으로 돌아선 상황에서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