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최근 주호영 대표 권한대행(원내대표)을 비롯한 국민의힘 인사들에게 연일 막말에 가까운 말폭탄을 쏟아내고 있다. 이번 서울·부산시장 선거 승리를 이끈 김 전 위원장이 주 대표 등에게 이처럼 화가 난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 관계자에 따르면, 김 전 위원장은 서울·부산시장 선거 승리 후 열린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주 대표의 말에 상당히 기분이 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일부 비대위원은 “김 위원장님이 이대로 떠나시면 안될 것 같다”면서 “기회가 되는 대로 다시 돌아오셔서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전 위원장 퇴진을 아쉬워 하면서 조만간 다시 선대위원장 등 핵심 직책으로 모셔서 대선을 치르고 싶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주 대표는 곧이어 “김 위원장님 수고하셨다. 우리가 잘 해서 다시 모시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표면적으론 김 전 위원장이 말한대로 당을 쇄신하고 자강(自强)해서 비대위 체제가 다시 오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김 전 위원장을 다시 모실 일은 없으니 그냥 물러나시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 주 대표는 김 전 위원장에게 “당 상임고문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김 전 위원장과 사전 상의 없이 이뤄진 제안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김 전 위원장은 “난 그런 자리 맡을 생각도 관심도 없다”며 거절했다. 국민의힘의 체질을 바꾸고 선거 승리까지 이끌었는데 뒷방으로 물러나 상임고문이나 하라는 건 가당치 않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주 대표는 다음날 언론에 상임고문 제안 사실을 공개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런 상황에 대해 상당히 기분 나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위원장이 20일 “주 원내대표는 안철수를 서울시장 후보로 만들려던 사람이다. 나한테는 차마 그말을 못하고 뒤로는 안철수와 작당했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한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다.
김 전 위원장이 주 대표를 비롯한 중진들을 공격하는 것은 서울시장 단일화 당시 오세훈 시장에 대한 중진들의 압박설과도 관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일부 중진들이 “오 후보가 용단을 내려서 안철수 후보에게 양보하라. 그렇게 단일화해야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압박했다는 것이다. 당 관계자는 “이에 오 시장이 김 전 위원장에게 SOS를 쳤고, 김 전 위원장이 나서서 안철수 대표를 때리고 중진들과 정면으로 맞섰다”며 “거기에 주 대표도 관여한 것 아니냐고 김 위원장은 의심하는 것 같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을 비롯한 친김종인계 의원들 사이에선 전당대회를 하지 말고 김 비대위원장 체제로 그대로 가자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김 전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에서 물러나겠다고 하면 정식 당대표로 추대하자는 말도 있었다고 한다. 김 전 위원장을 앞세워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영입해서 대선을 치르자는 얘기였다. 김 전 위원장 측도 이 같은 기류를 전해듣고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주 대표를 비롯한 당권주자들과 상당수 중진들은 김 전 위원장이 유임하거나 대선에서 킹메이커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일부 중진들은 “김 전 위원장이 노욕을 부린다”고 했다. 당 관계자는 “김 전 위원장 취임 이후 중진들과 갈등이 심했고 중진들을 불신해서 아무런 역할도 주지 않았다”며 “이 때문에 중진들 상당수가 김 전 위원장에 대한 불만이 컸다”고 했다. 김 전 위원장과 국민의힘 중진들 간 뿌리깊은 불신과 불화가 이번 날선 공방전의 배경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국민의힘과 김 전 위원장이 윤석열을 두고 벌이는 쟁탈전의 성격이 짙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김 전 위원장은 자신이 윤석열의 킹메이커가 되길 원하고, 국민의힘 중진들은 김종인을 배제한 채 윤석열을 직접 국민의힘으로 영입하고 싶어 한다”고 했다. 결국 윤석열을 누가 끌어안느냐를 두고 김종인과 국민의힘 간 본격적인 힘겨루기가 시작됐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