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지사는 개인 순발력이나 감각이 높이 평가받는 정치인입니다. 대신 세력은 약합니다. 정성호 조정식 김영진 의원 등 이른바 계보 의원들도 있지만 소수입니다. 경기도에 포진한 인사들이 돕고 있지만 탄탄하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이 지사가 민주당 후보 경선과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세력을 확장해야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여당 후보가 되기 위해선 민주당을 장악해야 합니다. 결국 문재인 정권 주류 친문과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라는 과제가 놓여 있습니다.
이 지사와 친문은 지난 4년간 불편했습니다.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과 첨예하게 각을 세우면서 악연을 맺었습니다. 이 지사가 문 대통령을 공격한 기억을 갖고 있는 친문은 이 지사가 언제든 뒤통수를 칠 수 있다, 이런 불신이 강합니다. 민주당 경선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상당수가 친문입니다. 이 지사가 대선 1차 관문 경선에서 당심을 얻지 못하면 아무리 지지율이 높아도 소용 없습니다.
이 지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이 지사의 전략은 갈라치기입니다. 친문계 강경파와 온건파를 갈라놓은 후 온건파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을 구사하는 겁니다. 이 지사가 재보선 직후 국회 토론회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민주당 권리 당원이 80만 명, 일반당원이 300만 명에 달한다고 하는데 그중 강성당원이 몇 명이나 되겠나. 전화번호 1000개를 차단하면 된다” “(친문계 강경파가) 과잉 대표되는 측면이 있다. 과잉 반응할 필요도 없다”. 친문을 갈라쳐서 강경파는 버리고 온건파를 끌어안겠다는 속내가 엿보입니다. 친문계로 분류되지만 이른바 ‘찐문’ 아닌 의원들, 이들을 자기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이 지사측 물밑 작업이 재보선 이후 아주 활발하다고 합니다.
민주당 의원 174명 가운데 친문이라는 라벨을 붙일 수 있는 의원은 150명 이상입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찐문’은 70~80명 정도라고 합니다. 이 지사 측은 이들을 제외하고 계파 색이 옅은 ‘범친문’을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다는 겁니다. 무기는 역시 높은 여론조사 지지율입니다. 이걸 무기로 범친문 의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겁니다.
친문계 강경파는 이 지사의 갈라치기 전략에 속수무책 당하고만 있을까요? 관건은 친문계 제3후보입니다. 이 지사에 대항할 강력한 핵심 친문계 대선주자의 등장이야말로 이 지사에 대한 반격이자 제압 카드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남은 시간이 짧다는 겁니다. 당내 경선이 임박했습니다. 민주당 당헌에 따르면 대선 전 180일까지 후보 선출을 마쳐야 합니다. 내년 대선이 3월 9일이라 늦어도 9월 중에는 후보를 정해야 합니다. 불과 4개월여 뒤입니다.
지금이라도 혜성처럼 제3후보가 나타나야 하는데 보이지 않습니다. 유력 후보였던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최종심도 6월입니다. 무죄 판결을 받아도 경선을 준비할 시간이 촉박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경선 일정을 최대한 늦춰야 합니다. 그래야 판을 흔들 여지가 생깁니다. 뭐라도 해볼 수 있는 겁니다. 친문들 사이에 물밑 공유되던 ‘경선 연기’ 얘기가 어제 처음으로 공식화됐습니다. 민주당 친문 핵심 전재수 의원이 “대선 후보 경선 연기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선 후보 선출 시기를 당헌에 규정된 9월보다 뒤로 미루자는 취지입니다.
논리는 이렇습니다. 국민의힘은 대선 120일전까지 후보를 선출합니다. 민주당보다 두 달 여유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두달 먼저 후보를 뽑아놓으면 야당과 언론의 집중 공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후 벌어지는 국민의힘 후보 경선 과정을 멀뚱멀뚱 쳐다만 봐야 한다. 그러니 우리도 국민의힘 후보 선출 시점과 비슷하게 가야 한다, 이런 논리입니다. 또 코로나를 이유로 듭니다. 정권은 11월 집단면역을 얘기해왔습니다. 9월이면 집단 면역이 형성되지 않은 시점입니다. 그러니 경선도 집단 면역이 형성되는 시점과 맞춰 해야 한다는 겁니다. 야당과 코로나, 이 두가지가 친문들이 경선 연기를 주장하는 논리인 겁니다. 하지만 말하지 않는 진짜 이유가 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 이재명에게 쉽게 여당 후보 자리를 내줄 수 없다는 겁니다. 이낙연, 정세균 측도 대선 경선 연기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자기들로서도 손해 볼게 없습니다.
이 지사 측은 당연히 반발했습니다. 이 지사 측근은 “이재명이 싫어서 친문 후보 양육(養育)할 시간을 벌겠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 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후보들 지지율을 모두 합해도 이 지사에게 미치지 않는 상황인데, 국민 눈에 이 모습이 어떻게 비칠지 생각해보라”고 했습니다. 경선 연기론의 목적이 ‘이재명 견제’라는 겁니다. 이 지사측은 대선후보를 일찍 뽑아놓아서 상처를 입는다면 입을 상처는 빨리 털고 가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자신 있다는 거죠. 그리고 9월이 지나면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정기국회가 열리기 때문에 야당이 국정감사로 정부를 몰아세울 것이다. 여당은 전당대회만 준비해서는 안 된다, 이런 논리도 폅니다. 이재명 지사측이 내세우는 가장 무서운 반박 논리는 이거 같습니다. “원칙대로 가야 한다” 게임 룰을 유불리만 따져 이랬다 저랬다 바꾸면 안된다는 거죠.
이 문제는 앞으로 눈덩이처럼 커질 겁니다. 이재명 대 친문, 친문 대 이재명, 양측 입장에서 봤을 때 경선 시기 문제는 서로 양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민주당 내전이 시작됐습니다. 포성이 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