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cel
Cancel
live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3차 코로나19 대응 특별방역점검회의에 참석해 기모란 방역기획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정부의 판단 잘못으로 코로나 4차 대유행이 현실화하고 있지만 청와대와 정부 어디서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정부는 지난달 말만 하더라도 백신 접종이 속도를 내고 있는만큼 5인 이상 모임 금지를 풀고 소비진작을 위한 대규모 재난지원금을 주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했다. 하지만 방역이 느슨해진 틈을 타 코로나 확진자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치솟아 1300명을 돌파했다. 놀란 정부는 갑자기 입장을 바꿔 방역을 사실상 셧다운에 가까운 최고 수준으로 올렸다. 코로나 4차 대유행이 정부 판단 잘못으로 인한 게 명백한데도 아무도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일각에선 질병관리청이 코로나 유행 조짐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던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성급하게 방역을 풀면 안 된다고 수차례 경고했는데 청와대와 정부가 이 말을 듣지 않았다. 질병청은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정은경 청장을 비롯한 질병청 전문가들이 그동안 수차례 청와대와 코로나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등에 경고 사인을 보냈다는 것이다. 인도발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고 7월 이후 백신 접종도 급감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성급하게 방역 기준을 완화하고 소비진작 메시지를 내면 안된다는 취지였다고 한다. 질병청 관계자는 “하지만 청와대나 정부 쪽에서 질병청과 전문가들 의견에 진지하게 귀기울이지 않았고 상부에 제대로 전달되지도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기모란 청와대 방역기획관,이진석 국정상황실장/조선일보DB

정은경 청장도 이런 우려를 청와대와 총리실, 관계장관 회의에 여러 차례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종 의사 결정 과정에서 정 청장과 질병청 전문가들의 입장은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고 한다. 청와대나 정부가 질병청의 방역 우려보다는 대선을 앞두고 경기를 살리고 민간 소비를 활성화 해야 한다는 정치권과 경제 부처의 입장을 더 중요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방역 차원에서 코로나 확산 위험에 대한 엄밀한 판단을 내리기 보다 정치적·경제적 요인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정치 방역’을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 청장의 스타일도 여기에 일조했다. 정 청장은 평소 차분하게 자기 소신을 얘기하지만 다른 부처나 다른 장관, 윗선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을 최대한 피하려 하는 스타일이다. 의견을 개진하되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물러선다는 것이다. 미국의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처럼 트럼프 전 대통령과도 끝까지 싸우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이번에 청와대나 정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려할 때 정 청장이 좀 더 강하게 의견을 개진하면서 싸움도 피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청와대 참모진과 보건복지부라는 평가가 많다. 총리가 주재하는 관계장관 회의에서 질병청의 입장을 반영해 가장 목소리를 냈어야 하는 부처가 보건복지부다. 그런데 복지부가 과연 그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에 대해 부정적 의견이 많다. 관계장관 회의에서는 오히려 기재부 등 경제부처나 정치권 출신 인사들의 목소리가 더 컸다는 것이다. 이러니 방역 보다는 정치적 이해나 경제 활성화에 더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청와대 참모진의 책임은 더 심각하다. 코로나 업무와 관련된 일부 참모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방역이 성공하고 있다” “백신 공급에 차질이 없다” “코로나 경기도 회복되고 있다”고 잘못된 보고를 해온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문 대통령이 걸핏하면 “코로나 터널의 끝이 보인다” “백신 수급이 원활하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말을 했겠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정부 안팎에선 “청와대 참모들이 대통령 심기만 살피면서 질병청 등에서 올리는 객관적 보고는 빼고 유리한 얘기, 듣고 싶은 얘기만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참모들이 왜곡된 보고로 대통령 판단을 흐리고 있다는 것이다.

기모란 방역기획관은 이전까지 ‘코로나 차르’로 불렸던 정 청장을 대체하는 인물로 발탁됐다. 하지만 그는 임명되기 전부터 “코로나 백신 도입이 급하지 않다”고 주장해 우리나라가 백신 후진국이 되게 한 원인 제공자로 지목받았다. 그가 취임한 이후에도 백신 공급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고 방역 상황은 갈수록 나빠졌다. 그래서 문 대통령에게 듣기 좋아하는 말만 하는 ‘코드 차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진석 국정상황실장도 또 다른 책임자로 꼽힌다. 이 실장은 울산시장 선거 공작 사건의 핵심 인물로 기소됐다. 선거 공작은 국가 중대 범죄 행위로 기소와 함께 사퇴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이 실장이 코로나 대응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유임시켰다. 하지만 이후에도 우리 코로나 대응은 낙제점을 면치 못했고, 청와대가 이번 4차 대유행을 오히려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핵심 책임자인 이 실장을 계속 유임시키고 있다. 결국 4차 코로나 대유행의 핵심 책임자 두 명을 청와대가 감싸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청와대 내부에선 기 기획관과 이 실장이 앞으로 계속해서 방역 사령탑 역할을 맡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한번 자기 사람이라고 여기면 끝까지 쓰는 인사 행태를 보여왔다. 문 대통령이 자기 잘못을 인정한 경우도 드물다. 두 사람을 경질하면 문 대통령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결코 두 사람을 내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문 대통령은 12일 특별방역대책회의에서 “국민들에게 조금 더 참고 견뎌내자고 당부 드리게 돼 대단히 송구하다”고 했다. 사과 아닌 송구함만 표시한 것이다. 정부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하기를 원했던 국민들 바람과는 거리가 있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참석한 상황에서 “우리가 방역에 실패한다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책임이 있다”고 했다. 본인만의 잘못이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 전체의 잘못이라고 한 것이다. 결국 문 대통령이 본인과 청와대 참모, 정부 부처의 잘못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모두에게 떠넘겼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