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반기문재단에서 반 전 UN 사무총장을 예방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범야권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주 52시간 근로제를 “실패한 정책”이라고 비판하며 주 120시간 근무를 언급해 논란이 일고 있다. 여권에서는 이 같은 윤 전 총장의 노동관을 두고 “18세기식 노동관”이라며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윤 전 총장은 20일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현 정부는 주52시간제로 일자리가 생긴다고 주장했지만 일자리 증가율이 (작년 중소기업 기준) 0.1%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며 “(이는) 실패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이어 “스타트업 청년들을 만났더니, 주52시간 제도 시행에 예외조항을 둬서 근로자가 조건을 합의하거나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토로하더라”라며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또 노동시장 개혁과 규제 완화도 언급했다. 윤 전 총장은 “우리나라는 고용 보호가 과하다”면서 “마음대로 해고하자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유연성은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윤 전 총장의 ‘주 120시간 근무’ 발언을 두고 논란이 확산하면서, 여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의 장시간 근로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윤 전 총장의 발언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다.

실제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근로시간이 긴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2019년 기준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OECD 평균(1626시간)보다 300시간 이상 긴 1957시간으로 나타났다.

◇ 강병원 “尹 퇴행적 노동관…쌍팔년도에서 오셨나”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최고위원은 이날 ‘윤석열의 노동 공약은 대한민국을 OECD 노동시간 1위로 만드는 것?’이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내고 “윤 후보는 타임머신을 타고 쌍팔년도에서 오셨냐”고 말했다.

강 최고위원은 “노동을 바라보는 윤 후보의 퇴행적인 인식에 입을 다물지 못하겠다”며 “윤 후보가 ‘오래 일하지 못하면 어떡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이미 우리 국민은 많이, 길게 일한다. 무려 OECD 2위다”라고 말했다.

이어 노사 합의에 따라 법정노동시간의 테두리 안에서 자율적으로 노동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탄력 근로제를 언급하며 “대선에 나온다는 사람이 이런 것도 모르냐”고 했다.

그러면서 “대선에 나온 사람이라면 어느 한쪽의 입장에 서서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기초한 통합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누가 ‘윤석열의 1번 노동 공약은 대한민국을 OECD 노동 시간 1위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조롱해도 할 말이 없게 된다”고 덧붙였다.

◇ 김영배 “아우슈비츠가 주 98시간 노동…어처구니 없는 상황”

김영배 민주당 최고위원은 “윤석열 예비후보의 시대착오적 노동관에 경악한다”며 “사람은 공장 부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최고위원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19세기 초에나 있을 법한 120시간노동을 말하는 분이 대통령하겠다고 나서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진짜 대한민국인지 헷갈릴 정도”라며 “영국 산업혁명 시기 노동시간이 주 90시간, 나치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주 98시간 노동”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노동시간 단축은 사람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정말 최소한의 조치”라며 “윤석열이 꿈꾸는 나라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라고 했다.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0월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대법원, 감사원, 헌법재판소, 법제처 종합감사에서 질의를 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 김남국 “주 5일 24시간 근무? 가능하지 않아”

김남국 민주당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주 120시간을 일하려면) 주5일 일하면 매일 24시간을, 주6일 일하면 매일 20시간을, 주 7일 일하면 매일 17시간을 일해야 한다”며 “어떻게 일주일에 120시간을 바짝 일할 수 있나”라고 했다.

김 의원은 “연구나 개발 업무의 특성을 고려해도 이렇게 일하는 것은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며 “가능하더라도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는 여전히 ‘과로 사회’, ‘일 중심 사회’로 불리며 장시간 근로로 악명이 높다”며 “대통령이 되고자 하시는 윤 후보님, 대한민국 이렇게 계속 과로하면서 일해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 이수진 “18세기 생각으로 21세기 대통령 꿈꿔…한심하다”

이수진 민주당 의원(비례대표) 또한 “오늘도 정리해고라는 이름으로 여러 노동자들이 거리에 나앉고 있는데 이것이 IMF를 겪으면서 만든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조차도 경영계의 입맛대로 바꾸고자 하는 윤석열의 공정이냐”며 “수많은 근로조건이 계약서라는 합의로 노동자의 숨통을 잡아채는 현실을 모르는 것인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합의는 어느 일방의 희생일 뿐”이라고 했다.

이 의원은 “윤 전 총장이 18세기의 생각으로 21세기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꿈꾸고 있다는 것이 한심할 뿐”이라며 “과거의 고루한 생각으로 미래의 대한민국을 이끌 수는 없다. 대통령 후보로 나가겠다면 그 18세기식 생각 당장 바꾸라”고 덧붙였다.

◇ 조국 “대량 과로사 지평선 여는 제안”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대량 과로사의 ‘지평선’을 여는 제안”이라며 윤 전 총장의 발언을 비판했다.

조 전 장관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120시간÷5(주 5일 근무제)=하루 24시간 노동”이라며 이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만화를 공유했다. 만화에는 ‘헉..헉..방금 120시간 바짝 채웠어..이제 놀러 가볼까’라고 말하는 해골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