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새로운 대일·대북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일본과의 현안인 위안부, 강제징용 판결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일 강경 발언도 없었지만 해법도 제시하지 않았다. 남북 관계에서도 북한 비핵화 촉구나 최근 북한의 대남 강경 발언에 대한 비판도 없었다. 임기 중 마지막 광복절 경축사였지만 남북 및 한일 관계에 대한 매듭을 짓지 못하고, 경제와 방역에 대한 자화자찬성 평가가 주를 이뤘다. 문 대통령은 각계각층에서 요구했던 이명박·박근혜 전직 대통령의 광복절 사면도 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제76회 광복절 경축식에서 “역사 문제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와 기준에 맞는 행동과 실천으로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에 “우리 정부는 대화의 문을 항상 열어두고 있다”고 했다. 특히 독립운동가로 조선일보 주필·부사장·사장 등을 지낸 민세(民世) 안재홍 선생을 거론하며 “우리 선조들은 해방 공간에서 일본인들에 대한 복수 대신 포용을 선택했다”고 했다. 과거 여러 차례 반일 감정을 자극하며 강경 발언을 이어왔던 것과는 달라진 발언이었다. 위안부, 강제징용 판결 등도 언급하지 않았다. 여권 관계자는 “임기 말 한일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지 않겠다는 뜻 아니겠냐”고 했다. 그러나 징용이나 위안부 문제에서 대일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대안 제시도 없었기 때문에, 이대로면 문 대통령 재임 중 한일 관계는 역대 최악인 상태로 끝나게 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북한 문제도 짧게만 언급했다. 남북 화상회의, 이산가족 상봉 등 구체적인 제안 없이 “비록 통일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라도 남북이 공존하며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통해 동북아시아 전체의 번영에 기여하는 ‘한반도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했다. 최근 북한이 한미 연합 훈련에 반발해 남북 간 통신선을 복원 2주 만에 다시 끊은 상황 때문에 수위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임기 말 남북 간에 ‘깜짝 이벤트’가 있더라도 현 상황에선 북한의 비핵화나 남북 관계 모두에서 진전이 없는 빈손으로 끝날 가능성이 커졌다. 여권 관계자는 “코로나로 남북 관계 개선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사실상 빈손 처지가 된 대일·대북 메시지 비중을 줄인 대신 방역과 경제에 자신감을 보였다. “우리는 지난날의 대한민국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새로운 꿈을 꿀 차례다” “개발도상국 중 최초로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격상했다” “코로나 위기 역시 어느 선진국보다 안정적으로 극복하고 있다” 등의 발언을 이어갔다. 논란이 됐던 소득 주도 성장 등 정책 문제에 대해선 “주 52시간제와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노동기본권을 확대했다”며 “고용보험 확대와 기초연금 인상,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 우리 사회의 포용성을 높이고 있다”고 자평했다. 부동산이나 탈원전 등에 대한 성찰적 언급은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들은 대통령과는 다르게 반일 감정을 자극하는 구호를 쏟아냈다. 당내 경선에서 강성 지지층의 표를 얻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우리는 친일 기득권 세력의 반발로 광복 직후 친일 청산의 기회를 놓쳤고, 이 실패를 자양분 삼아 과거사 망언과 역사 왜곡이 반복된다”고 했다. 정세균 전 총리는 “친일파의 자손들이 떵떵거리며 일제 만행 과거사 청산에 발목을 잡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임기를 9개월여 앞둔 이번 광복절에도 종교계 등이 요구한 전직 대통령 특별 사면을 하지 않았다. 여권 관계자는 “청와대와 여당 모두 사면을 검토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국민 여론이 부정적이라고 판단했다”며 “아직 성탄절 사면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했다. 정치권에선 “문 대통령이 두 전직 대통령 사면 부담을 차기 대통령에게 넘기려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