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지사(왼쪽 세번째)가 3일 오전 경기 김포시 일산대교 요금소 앞에서 일산대교 통행료 무료화 추진 계획 현장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종환 파주시장, 정하영 김포시장, 이 지사, 이재준 고양시장. /뉴시스

경기도가 일산대교 통행료 무료화를 위해 전국 지자체 최초로 ‘공익처분’ 방침을 밝히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경기지사가 8일 언론 보도에 대해 “맥쿼리가 걱정되는 것이냐” “해 먹어도 적당히 해 먹었어야지 악덕 사채업자냐”고 반박했다. 이재명 캠프 홍정민 대변인도 성명을 내고 “공익을 위한 결정”이라며 “국민연금 수익률을 낮춰 국민에게 손해를 끼친다는 지적은 적법한 처분에 대한 발목잡기에 불과하다”고 했다.


◇ 일산대교와 맥쿼리는 무슨 상관이 있나

일산대교 전경. /조선일보DB

이 지사가 트위터에서 언급한 ‘맥쿼리’는 도로·터널·교량 같은 사회기반시설(SOC) 민자사업에 투자하는 맥쿼리인프라투융자회사(MKIF)를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2002년 12월 호주 맥쿼리그룹과 대한민국의 신한금융지주가 합작해 설립한 회사로 굵직한 인프라 사업에 투자해왔고,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선 배당주로도 유명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일산대교와 맥쿼리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일산대교는 경기도와 대림산업·현대건설·대우건설·금호산업 등 5개 주체가 2038년 4월까지 30년 동안 최소 운영수입을 보장하는 민간투자방식(MRG)으로 건설됐다. 우리은행 등으로부터 1300억원대 대출을 받아 공사금액을 조달해 2003년 착공, 2008년 1월 개통했다. 운영사업법인인 ‘일산대교(주)’는 2002년 경기도로부터 민간투자시설사업 사업시행자로 지정받아 설립된 회사다.

국민연금은 2009년 11월 최대주주인 대림산업(26%) 등 5개사 출자지분을 100% 인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분 인수를 포함해 선순위 및 후순위 대출에 투입한 자금은 2500억원이 넘는다. 경기도에 일산대교를 기부채납하는 대신 2038년까지 30년간 유료 운영권과 협약 상의 추정 운영수입을 보전해주는 권리를 확보했다. 연간 목표수익률은 8%로 설정됐다.

세계 27개국에 진출한 맥쿼리그룹은 인프라 투자라는 틈새시장을 개척해 성장했다. 호주 시드니에 있는 맥쿼리 본사 사진. /맥쿼리 홈페이지

맥쿼리는 인천대교와 우면산터널,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등 굵직한 인프라 민자사업에 투자해 대규모 수익을 내왔다. 하지만 민자사업 특성상 건설·인수한 시설의 이용료 관련 무리한 인상을 시도하다 시민사회와 마찰을 빚었다. 서울 지하철 9호선 건설 당시 재무 투자자(FI)로 참여해 24.53%의 지분율 소유했지만 요금 산정 방식과 최저 수익률 보장율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왔고 결국 서울시가 9호선 공영화를 추진하면서 2013년 지분을 매각하고 철수한 바 있다.

이 떄문에 이 지사가 외국 민간 자본의 인프라 사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의식해 일산대교를 둘러싼 논란 국면에서 맥쿼리를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코스피(KOSPI) 시장에 상장된 맥쿼리인프라의 외국인 지분율이 15% 내외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논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 국민연금은 정말 ‘악덕사채업자’가 맞나

이재명 경기지사가 8일 일산보도 논란을 둘러싼 보도 관련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게시글. /트위터 캡처

국민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이 일산대교를 운영하고 통행료를 징수하며 ‘악덕사채업자’가 됐다는 이 지사 주장도 사실일까. 이 지사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폭리를 취하고 그 피해를 국민이 감당하는 구조”라며 “국민 연금이 스스로 공표한 ESG 원칙과도 맞지 않다”고 했다. 대통령을 희망하는 이 지사가 지적한 ‘폭리’ ‘악덕 사채’를 취하는 것이 결국에는 국민 노후 보장을 위한 것임은 아이러니다.

경기도와 파주·일산 등 지역 정치권은 높은 통행료의 원인을 1600억원 수준의 국민연금 대출에서 찾고 있다. 국민연금은 ‘일산대교(주)’에 연 8% 수준의 선순위대출(1250억), 2014년부터 20%씩 적용되고 있는 후순위대출(360억원)을 실행했다. 연간 이자 수입이 160~170억원으로 추정된다. 또 계약에 따라 실제 수입이 예상 수입보다 적을 경우 세금으로 보전해 주는 최소운영수입보장(MRG) 권리도 갖고 있어 매년 50억원 상당의 보전금도 도민의 세금으로 나가고 있다. 그래서 이 지사가 국민연금을 “현대판 ‘봉이 김선달’과 같다”고 표현한 것이다. 경기도도 그동안 사업재구조화를 위해 갖은 노력하다 이번에 공익 처분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일방 매도가 민자사업 투자 구조에 대한 무지(無知)에서 비롯됐다는 시각도 있다. 지역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사회기반시설이라 하더라도 국비·지방비 등 예산에 제약이 있기 때문에 교통수요가 상대적으로 적거나 특정 지역민 이용에 국한되면 우선 순위가 밀리기 마련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게 민간 자본 중심의 SOC 건설이다. 수혜자가 보편적이지 않아 ‘수익자 부담’ 원칙에 맞춰 짓다보니 이용요금이 불가피하게 정부 사업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 일산대교가 1km당 652원의 통행료를 받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이재명(맨 오른쪽) 경기지사가 3일 경기 김포시 일산대교 요금소 앞에서 일산대교 통행료 무료화 추진 계획을 브리핑하고 있다. /뉴시스

민자 인프라 사업에서는 운영기간이 한정되있고, 매년 안정적인 배당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통상 지분 투자와 함께 선순위·후순위 대출을 실행한다. 원리금 상환 방식으로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게 해야 민간 투자자가 높은 리스크를 감당하고 돈을 넣을 유인이 생기기 때문이다. 한 인프라 투자·금융업계 관계자는 “후순위 대출 금리만 갖고 투자자에 고리대금업 프레임을 씌울 것이 아니라 전체 투자금 대비 수익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국민연금의 투자 대비 수익률이 고리대금업자 소리 들을 정도로 과도한가”라고 했다. 국민연금도 이번 논란 관련 “실시협약상 정해진 적정 이자율 범위 내에 투자 수익을 회수하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 국민연금이 일산대교 운영권을 인수했을 2009년 당시만 하더라도 일산대교가 연 100억원이 넘는 당기 순손실이 발생하는 부실한 회사였다는 점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 금융회사 임원은 “일반 대기업 같았으면 투자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일산대교 감사보고서 10년치를 보면, 운영사는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순이익을 실현하지 못했다. 2009년 국민연금이 인수한 뒤에도 8년간 누적 적자가 557억원에 달했다. 순이익을 내기 시작한건 2017년부터다. 작년에는 매출 294억원·순이익 43억원을 올렸다.

주사용자층인 일산·김포·파주시민이 늘어난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측면도 있지만, 꽤 괜찮은 회사를 만들어 10년만에 턴어라운드(흑자 전환) 시켰는데 이제와서 ‘악덕 업자’로 매도당하며 운영권을 회수 당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페이스북에서 이렇게 비유했다. “이십 년 전에 금리 높을 때 든 보험 약관인데 지금 금리가 너무 내려버리니 보험업자가 ‘탐욕스럽다’ ‘도저히 감당 못 하겠다’며 계약을 없던 걸로 하자는 상황이다.”


◇ 소송 등 논란은 계속… 李 지사 떠나고 없을 수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 후보가 지난 9월 5일 오후 충북 청주시 서원구 CJB컨벤션센터에서 치러진 '충북·세종 민주당 순회 경선'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지사측은 일산대교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돼자 도민(道民)의 교통 기본권을 강조하면서 ‘공정 프레임’을 내걸었다. 이재명 캠프 대변인인 더불어민주당 홍정민 의원은 8일 성명에서 “일산대교 공익처분은 불공정을 개선하고 공적인 책임을 다하는 조치” “국민연금 수익률을 낮춰 국민에게 손해를 끼친다는 지적 역시 적법한 처분에 대한 발목잡기에 불과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지사 측은 국민연금에 지급할 수천억원의 보상금을 일산대교를 평생 이용할 일이 없는 경기도민들이 함께 부담하게 된다는 사실은 제대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경기도가 희망하는 대로 보상금을 2000억원대 수준에서 관철시키더라도, 일산·김포·파주시민이 아닌 도민이 부담해야 할 금액이 최소 1000억원이다. 또 사용자 통행료에 전가시켰던 유지·보수 비용도 이제는 도민 세금으로 부담해야 한다. 2038년까지 기대 수익이 7000억원에 이르는 만큼 향후 손실보상금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경제 부처 관료 출신인 한 야당 의원은 “손실 보상은 도민에게 떠 넘기면서 본인은 전면에 등장해 교통 통행료 무료화라는 생색만 내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손실보상금을 둘러싼 잡음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지사는 “국민연금공단의 주주수익률을 존중하여 정당하게 보상하겠다”고 했지만, 경기도와 국민연금의 입장 차이가 커서 보상금 협상을 놓고 소송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같은 당 소속인 민주당 이용우 의원도 “소송 없이 매각되면 국민연금 관리자가 ‘선량한 관리자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을 질 가능성이 있다”며 “소송을 통한 해결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외에도 향후 공익처분이 확정되면 전국 지자체 첫 사례인만큼, 일산대교 직원들 처우 등을 놓고 또 다른 논란이 예상된다.

그런데 기자회견까지 열어가며 일산대교 무료화를 대대적으로 홍보한 이 지사는 다음 달에 여권 대선 후보로 확정되면 지사직에서 사퇴할 가능성이 크다. 일만 벌여 놓고 송사 등 뒷처리는 차기 도정(道政)을 맡는 사람이 떠안게 되는 모양새다. 이 때문에 일부 언론들과 전문가, 야당 의원들은 “포퓰리즘의 교과서” “지사 찬스를 활용한 매표용 포퓰리즘”이라 지적하고 있다. 향후 다른 지자체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지난 4일 페이스북에서 “빼먹을 게 따로 있지, 국민연금을 빼먹냐”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