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대비를 위한 퇴직연금을 중간에 끌어다 쓰는 직장인이 4년만에 배(培)가 된 것으로 나타났다. 집값 상승이 멈출줄 모르는 상황에서 정부가 주택 대출을 계속해서 옥죄자, 심리적으로 쫓긴 수요자들이 집을 사기 위해 퇴직금을 헐어 쓰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은퇴 준비를 시작해야할 40~50대가 이러한 추세를 주도했다.
◇40·50대가 부동산 사려 중도인출한 연금 총액, 4년새 3배
12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 4만91명이던 퇴직연금 중도인출자는 2020년 7만1931명으로 1.8배 수준이 됐다. 같은 기간 중도인출액은 1조2317억원에서 2조6341억원으로 2.1배 증가했다.
이 같은 흐름은 40·50대가 주도했다. 퇴직연금 중도인출 총액의 64.4%는 40~59세 직장인들의 돈이었다.
원인은 부동산 문제였다. 2020년 퇴직연금 중도인출 총액의 62.3%가 ‘부동산 구입’을 위해 인출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40·50 연령대가 부동산 문제로 중도인출한 총액은 2016년 3720억원에서 작년엔 1조37억원으로 3배 불었다.
부동산 문제에 가려졌지만, 40·50대가 ‘생활고’ 때문에 중도인출한 퇴직금도 2016년 3729억원에서 2020년 6703억원으로 79.8% 늘었다.
전재수 의원은 “퇴직연금까지 중도에 인출하지 않아도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 안전망 마련과 더불어 부동산 가격에 따라 좌우될 노후대비의 위험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주담대, 신용대출, 전세대출 다 줄인 결과가…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집값 상승의 원인을 다주택자·투기꾼으로 규정한 뒤, 분양권 전매 제한 등 조치를 취했지만 오히려 집값 상승세가 더 거세지자, 2017년 6월부터 주택 대출을 옥죄기 시작했다. 집값의 70%까지 내주던 담보대출비율(LTV)을 60%로, 다시 40%로 낮췄고, 9억원 초과 주택에는 그보다 더 낮은 LTV를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수요자들은 집 사기를 포기하는 대신, 주택대출 아닌 신용대출로 몰렸다. 작년 봄 이후 서울에서 집을 산 사람 중 15%가 신용대출로 1억원 정도를 조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자 신용대출을 옥죘고, 최근엔 전세자금대출도 축소하고 있다.
그래도 집값 오름세는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최근 2~3년 사이에는 ‘지금 당장 집을 못사면 영원히 못살지 모른다’는 공포에 따른 이른바 ‘패닉 바잉’이 집값 상승의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집값을 잡겠다며 내놓은 정책이 오히려 집값을 더욱 밀어올린다는 것이다.
대출 규제가 오히려 부익부 빈익빈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제된다. “대출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집을 살 수 있는 부자들에게 중산층·서민과 경쟁하지 않고 손쉽게 집을 차지할 기회를 줬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