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같은 편에게는 천하제일 기획자란 칭송을 듣지만 상대 진영으로부터는 대통령 행사를 화려한 쇼로만 만든다는 비판을 받는다. 의전 전문가는 ‘탁현민 표’ 의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이강래 전 대통령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월간조선

이강래 전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은 “최고의 의전은 VIP(대통령)를 띄우고, 감동시키는 게 아니라 VIP가 만나는 사람, 더 나아가 그걸 뉴스를 통해 보는 국민을 감동시키는 것”이라며 “탁 비서관이 만들어 낸 작품(행사)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했던 ‘국민이 주인공’이 아닌 늘 ‘대통령이 주인공’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전 선임행정관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나로우주센터 발사통제동에서 대국민 메시지 발표 행사에 대해 “주인공(과학자)들을 불편하게 만든 작품이었다”며 “올림픽 결승 직전 선수존에서 대통령이 생방송 연설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 최근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기획한 누리호 행사에 대해 ‘과학자들을 병풍으로 만들었다’는 등의 말들이 많았는데요.

“대통령의 방문이 예정된 곳은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경호구역으로 지정하고 경호구역 내에서 질서유지, 교통관리, 검문·검색, 출입 통제, 위험물 탐지 및 안전조치 등을 위해 방지에 필요한 안전 활동을 하게 됩니다. 당연히 구역 내에 있는 사람들은 평소처럼 생활하기 어렵죠. 심지어 행사 통제구역으로 설정한 지역은 ‘진공상태’가 됩니다. 당연히 과학자들에게 피해가 갈 수밖에 없죠.”

- 행사가 생방송으로 진행됐는데, 그럼 더 피해가 갑니까.

“그럼요. 보통 정해진 행사는 사전답사와 리허설 등을 이유로 여러 차례 방문합니다. 특히 생방송이면 더 준비할 게 많지요. 방송중계차에 연결되는 케이블을 포함한 여러 방송 장비를 옮기고 또 많은 관계자가 수시로 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다는 이야기입니다.”

- 탁 비서관은 누리호 발사 당시 ‘이벤트 기획사 직원들이 뛰어다니고 방송 카메라 중계를 위한 무대를 설치하느라 시장통 같았다’라는 지적에 대해 “역사적인 현장과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방송하고 그 준비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라고 반문했습니다.

“왜 하필 생방송 시점이 발사 당일, 그것도 발사통제동 내부일까요. 예를 들어, 올림픽 결승전 시합 바로 전, 선수 존에서 대통령이 생방송 연설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분명히 비난받았을 겁니다. 그야말로 선수들에게는 1분 1초가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누리호 발사의 주인공이 누구입니까. 대통령입니까, 과학자들입니까. 행사 때문에 신원이 확실한 과학자들도 MD(금속탐지기) 통과하고 행사와 관련된 회의 참석 또는 지시사항을 전달받고 숙지하는 등 정신없었을 겁니다. 상황이 이런데, 주인공인 과학자들이 발사에 전념할 수 있었겠습니까. 주인공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행사가 어디에 있습니까?”

- 과학자 병풍 보도에 대해 탁 비서관은 ‘악마 같은 기사’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대통령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했던 한 사람으로서 행사에 대해 평가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죠. 탁 비서관도 엄청나게 고생할 겁니다. 실무자들은 ‘행사는 잘해야 본전’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완벽한 준비를 했어도 현장에서 예상하지 못한 돌발변수가 발생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행사가 끝나면 리뷰(평가)를 통해 점검하고 다음 행사에 참고합니다. 언론의 지적도 귀담아듣고요. 그런데 언론 보도에 대한 탁 비서관의 대응을 보고 할 말을 잃었습니다. 없는 사실을 허위로 보도한 것도 아닌데 ‘새빨간 거짓말’ 또는 ‘악마 같은 기사’와 같은 상스럽고 저급한 표현으로 언론 보도에 대해 반박하는 걸 보면서 성찰의 자세는 ‘1′도 없구나라고 생각했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는 발사 현장에 대통령이 오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보냈다는데 굳이 왜.

“저도 강행 이유가 참으로 의아합니다. 대통령이 방문하면 어쩔 수 없이 통제가 이뤄지고, 이로 인해 실무자들은 큰 불편을 느낄 수밖에 없죠. 과연 탁 비서관이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요. 탁 비서관의 행사가 ‘쇼’, 여기의 주연인 문 대통령이 ‘쇼통령’이란 비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닙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죠.”

- 6·25 전사자 유해 송환식도 레이저 쇼로 만들었죠.

“행사의 기본은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철저히 주인공 입장에서 준비해야 하죠. 이런 점에서 6·25 전사자 유해 송환식은 기본적인 것을 검토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검토하고서도 영상쇼를 위해 모르는 척했는지 의문이 드는 행사였다고 생각합니다.”

- 유해가 도착한 시점은 2020년 6월 24일 오후 5시인데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기념식 때 ‘복귀 신고’를 하기 위해 27시간을 대기시켜 유해를 ‘쇼 소품’ 취급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유해는 하와이에서 운구 때 사용된 공군 공중급유기에서 꺼내져 다른 항공기에 옮겨 보관됐는데, 청와대는 방역 때문에 유해를 이송해온 기체를 행사에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런데 경위야 어떻든 6·25 기념식 ‘밤 이벤트’를 위해 유해가 이리저리 옮겨지고, 대기한 것은 팩트죠. 7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유해 봉환을 만 하루를 넘겨 한 것은 호국 혼(魂)에 대한 모독이었다고 봅니다.”

- 2009년 10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도버 공군기지에서 새벽 4시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도착하는 전사자의 유해를 거수경례로 맞은 것과는 차이가 있어 보이네요.

“오바마 대통령은 거수경례하고 유가족들을 진심으로 위로해줬습니다. ‘미국이라서 그렇다’는 것은 말이 안 되고요. 오바마 대통령은 주인공 입장에서 생각한 것이죠. 6·25 전사자 유해 송환식의 주인공은 당연히 전사자와 유족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행사를 기획했다면 유해가 도착하는 당일 대통령이 미리 공항에 마중 나가 전사자 유해를 맞이하고 유가족을 위로했어야 합니다. 아마 그랬다면 어떤 화려한 영상 투사 이벤트(미디어 파사드)보다 더 큰 감동과 의미로 국민에게 다가갔을 겁니다.”

- 결국, 대통령만 돋보이게 하려다 탈이 난 것이네요.

“6·25전쟁 70주년 행사와 유해 봉환을 따로 분리해서 했다면 아무 문제 없지 않았겠습니까. 무리하게 쇼를 위한 행사를 진행하려고 하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죠. 행사마다 ‘쇼통’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이 전 선임행정관은 지난 2월 전남 신안군 임자대교에서 열린 ‘세계 최대 풍력단지 48조 투자 협약식’ 행사를 보면 “탁 비서관은 의전의 기본 원칙도 없는 것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이 행사는 뭐가 잘못된 겁니까.

“행사장에 거대한 크기의 풍력발전기 여러 대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모두 모형으로, 이를 위해 3억원 가까운 예산이 투입됐더군요. 원래 ‘의전’의 기본 원칙은 기존 시설물을 이용하는 친환경입니다. 친환경을 강조하는 정부가 행사를 위해 모형 풍력발전기를 큰 예산을 들여 설치한 것은 의전의 기본 원칙도 지키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죠. 더욱 놀란 것은 풍력발전기를 돌리기 위해 발전기를 투입한 겁니다. 도대체 어떻게 풍력발전기로 전력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리는 행사에 발전기로 풍력발전기 모형을 돌리는 발상을 할 수 있는지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지난 5월 30일, 31일 이틀 동안 서울에서 열린 P4G 서울 녹색 미래 정상회의 때 사고가 있었죠?

“개막식 영상에 서울 아닌 평양 위성사진이 들어갔잖아요.”

- 이런 행사를 개최할 때 리허설 영상을 시사(試寫)하지요.

“당연하죠. 지겨울 정도로 보고 또 봅니다. 행사 취지에 맞게 제작이 되었는지, 영상 시간은 적당한지, 다른 문제는 없는지 등에 대해 확인합니다.”

- 청와대 의전비서관실은 문책 대상에서 빠졌던데요. 여긴 잘못이 없나요.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담당자들도 기획단과 함께 영상을 여러 차례 돌려 봅니다. 그리고 영상을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를 회의도 하지요. 상황을 보니까, 결국 영상을 제작한 업체와 외교부 공무원들에게만 책임을 떠넘긴 꼴입니다. 민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공무원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죠. 실무자의 단순 실수에서 끝난 해프닝이 아닙니다. 그렇게 준비를 많이 하고 정부가 자랑한 국제행사에서 행사의 목적은 사라지고 능라도 영상이 주목받은 것은 행사의 실패이자 국제적인 망신입니다.”

- 탁 비서관이 영상을 봤다는 이야기죠.

“이런 행사의 경우 업체와 준비 기획단이 준비 단계서부터 의전비서관실에 보고하고 컨펌을 받습니다. 논의를 거쳐 행사 전체의 시나리오가 완성되면 의전비서관은 대통령에게 보고하지요. 제 경험에 비춰보면 많은 관련자가 이 영상을 시사했을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단 한 명도 이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는지 믿기지 않아요. 봤는데 못 발견한 게 아니라 별 관심을 갖지 않았거나 안 본 거라면 직무유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전 선임행정관은 “탁 비서관은 P4G 행사가 그간 우리가 만들었던 국제회의 중에 가장 규모가 크다고 했다”며 “규모가 컸으니 당연히 망신살도 월드클래스였을 것”이라고 했다.

- ‘탁현민 표’ 의전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최고의 의전은 VIP(대통령)를 띄우고, 감동시키는 게 아니라 VIP가 만나는 사람, 더 나아가 그걸 뉴스를 통해 보는 국민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초청 인사가 감동하고, 국민이 감동하면 그 신뢰와 지지는 결국 대통령에게 돌아옵니다. 그러나 대통령만을 위한 행사를 하면 기획자와 대통령 본인은 좋겠지만, 참석자는 힘들고 이를 바라보는 국민은 불편하죠.”

-대통령만 돋보이게 하려다 보니, 참석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말씀인가요.

“얼마 전 서울의 모 호텔에서 100여 명이 참석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경호구역에 화장실이 제외됐다고 합니다. 참석자들은 행사 중 화장실을 다녀올 때마다 MD를 통과하고, 주머니 속 소지품을 모두 꺼내 경호관으로부터 검사를 받는 번거로움을 겪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는 경호처의 잘못도 있지만, 행사를 총괄하는 의전의 최종 책임입니다. 대통령만 생각하는 탁 비서관의 자세로 인해 행사에서 더 중요한 부분(참석자들에 대한 배려)을 간과한 것이죠.”

※ 더 자세한 내용은 《월간조선》 12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