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코로나19 위기대응 특별위원회 1차 회의에 참석한 이재명 대선후보가 윤호중 원내대표와 이야기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가 19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에 이어 ‘공시가격 현실화’에 대한 속도 조절을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와 정책 차별화를 하겠다는 구상이지만 정부는 이 후보 주장에 “비현실적” “검토한 바 없다”고 했다. 이 후보 주장의 실현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여당은 “부동산 민심을 고려한 반성적인 행보”라고 했지만, 야당은 과거 이 후보가 공시가격 현실화를 주장했던 점을 들어 “정권 교체 여론을 의식한 선거 전략”이라고 했다.

이 후보는 이날 서울 효창공원에서 열린 ‘윤봉길 의사 순국 89주기 추모식’ 뒤 기자들과 만나 “부동산 가격이 예상외로 많이 폭등해 국민들의 부담이 매우 급격히 늘고 있다”며 “(공시가격 관련 제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전날 페이스북에서 내년 3월 급등이 예상되는 아파트 공시가격에 대해 “재산세와 건강보험료 등 서민의 세 부담을 현재와 유사한 수준이 되도록 전면 재검토를 해야 한다” “당정이 신속하게 제도 개편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했다. 공시가는 재산세·종부세뿐만 아니라 기초연금과 각종 장학금 등 정부 제도 68개와 연계돼 있다. 이 후보는 오후에 열린 서울시의원단과의 비대면 간담회에서는 “국민이 부동산 문제로 고통스러워하는데 여기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민주당 관계자는 “공시가에 연동되는 각종 세금 부담이 급격하게 커지는 것은 막아야 한다”며 “다양한 옵션을 열어놓고 당정이 열린 태도로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내년도 재산세의 경우 과세 기준 금액을 올해 공시가를 기준으로 부과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단독주택은 작년 12월, 공동주택은 올해 3월 발표된 공시가를 토대로 세금을 책정하겠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사실상 재산세를 동결하는 효과가 난다. 그러나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정부와 협의된 바도 없고 그렇게 검토할 계획도 없다”는 입장이다. 또 경우에 따라선 고가 주택 보유자나 다주택자의 세금 경감 폭이 중저가 1주택자보다 커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민주당은 재산세 동결에 맞춰 2030년까지 공시가를 시세 대비 90%로 올리는 공시가격 현실화율 목표도 1년 이상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이 경우 지난해 말 구체적인 로드맵까지 발표했던 정부가 ‘인위적 속도 조절’에 반대할 가능성이 있다. 또 현실화율 목표치 수정을 위해선 부동산공시법에 따라 공청회 등을 거쳐야 하는데, 향후 일정을 감안하면 비현실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밖에 이 후보는 공시가 상승에 따른 완충 장치가 없는 기초연금, 장애인연금 등과 관련해선 “억울한 탈락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 제도에 적합한 ‘조정계수’를 도입하자”고 했다. 집값 급등으로 연금 수급에서 탈락하는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는 일만큼은 없어야 한다는 취지다.

국민의힘은 이 후보가 과거 공시가격 제도를 비판하고 시세 반영률을 높이자는 취지의 제도 개선을 요구했던 점을 들어 “4년 내내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에 동조하다 선거철이 되자 표를 계산한 행보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후보는 경기지사 재임 시절인 지난 2019년 7월 언론 인터뷰 등에서 “현행 공시가격 제도가 시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심화하고 불로소득을 조장한다”고 했다. 김은혜 국민의힘 선대위 대변인은 “철학도 소신도 인형뽑기처럼 그때그때 고를 수 있다면 정치란 참 편한 일일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혼란스러울 것 같다”고 했다.

민주당도 그동안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와 징벌적 과세 등에 찬성하는 입장이었고, 지난해에는 ‘임대차 3법’ 등을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방 처리하며 정부 부동산 정책에 보조를 맞춰왔다. 지난해 11월 당 회의에선 김태년 당시 원내대표가 “공정 차원에서 공시지가 현실화는 더 이상 놓칠 수 없는 과제”라며 정부에 힘을 싣기도 했다. 국민의힘 윤희숙 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선거용 한 해(1년) 대책만 말하면서 청와대와 각 세우는 척하는 게 바로 ‘국민 상대로 밑장빼기’”라며 “국민이 모를 거라 믿고 알고도 날린 야바위 슛”이라고 했다. 이 후보가 “2022년 공시가 열람·확정까지 시간이 안 남았다”며 속도전을 주문했지만, 당정 갈등이 수면 위에 오를 경우 현실화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