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2개월을 남긴 현(現) 정부의 탈원전 핵심 인사들이 잇따라 직책을 맡는 ‘알박기 인사’가 계속되고 있다. 탈원전 정책 백지화는 국민의힘 윤석열 당선인의 핵심 공약이다. 탈원전에 앞장섰던 인사들이 주요 직책을 유지하면서, 정치권과 관가에서는 새 정부 주요 정책이 초반부터 난항을 겪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에 임기 말은 없고 인사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달 이사회를 열고 정재훈 사장의 1년 연임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정 사장은 작년에 이미 3년 임기를 마친 뒤 1년을 연임했는데, 추가로 1년 연장이 결정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재가만 거치면 정 사장은 내년 4월까지 사장직을 유지하게 된다. 2018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반대했던 이관섭 전 사장이 사임한 뒤 취임한 정 사장은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한국수력원자력이라는 회사 이름에서 ‘원자력’을 빼려고도 했다. 주한규 서울대 교수는 “탈원전을 이행하며 월성 1호기 폐쇄 등을 추진했던 인사가 탈원전을 백지화하려는 새로운 정부에서 주요 직책을 연임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산하 한국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으로는 김제남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지난 2월 임명됐다. 시민단체인 녹색연합 사무처장 출신의 김 전 수석은 대표적 탈원전 인사다. 정의당 시절 탈핵에너지전환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문재인 정부에서도 대통령비서실 기후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원자력안전재단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연구·개발 자금을 집행하는 기관이다. 국민의힘에서는 “대놓고 차기 정부의 주요 정책을 막겠다는 심산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민주당은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전 경기지사가 탈원전 대신 ‘감원전’이라는 공약을 내세웠었다. 탈원전 정책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크자 이를 변형해 내세운 정책이었다. 하지만 대선 패배 직후부터 다시 탈원전 백지화에 대한 비판이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다. 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은 지난 15일 윤 당선인이 신한울 3·4호기 공사 조기 재개를 약속하자 “당선인 말 한마디면 원전 건설이 뚝딱 시작될 만큼 우리나라 행정·법 체계가 허술하지 않다”고 했다.
정부 곳곳에서는 현 정권의 ‘알박기’ 인사가 계속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정책방송원(KTV) 성경환 원장은 4월 퇴임 예정이었지만 지난달 임기가 1년 연장됐다. 문체부 관계자는 “인사권자인 장관이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한국농어촌공사는 대선을 6일 앞둔 지난 3일 친문 인사인 이병호 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을 신임 사장으로 선임했다. 윤도한 전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지난달 한국IPTV방송협회장에 취임하기도 했다.
정부·산하기관의 각종 위원회 위원과 상임감사, 이사 등도 알박기 논란이 한창이다. 한국가스안전공사는 지난 10일 임찬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을 상임감사로 임명했다. 임 상임감사는 민주당 제주도당 사무처장과 전략기획국장 등을 지냈다.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인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는 지난 7일 정무경 전 조달청장을 비상임이사로 임명했다.
관가에서는 이와 같은 ‘알박기’ 인사가 이례적이라는 말이 나왔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다른 정권 때는 임기 6개월 미만의 기관장 인사 등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하지만 이번 정권은 임기 말에도 여전히 인사가 계속되고 있어 정권이 바뀐 게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말이 많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