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소관 기관으로 하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 전원이 21일 성명서를 내고 “노정희 중앙선관위원장은 대선 사전 투표 부실 관리 책임을 지고 즉각 자진 사퇴하라”면서 “거부 시 탄핵 소추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행안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 전원이 지난 19일 노 위원장의 사퇴 반대 성명을 내자 야당에서 탄핵 소추 가능성을 꺼낸 것이다. 정치권뿐 아니라 선관위 내부도 노 위원장의 거취를 두고 의견이 반으로 쪼개진 것으로 알려졌다. 노 위원장은 이날 한 시민 단체에서 “사전 투표 혼란 당일 출근도 하지 않았다”면서 직무 유기 혐의 등으로 추가 고발당했다.
행안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성명에서 “민주당은 왜 이번 대선 관리 실패의 최종 책임자인 노 위원장의 사퇴를 반대하고 끝까지 지키려 하느냐”면서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또다시 국민의 신성한 참정권을 침해하겠다는 의도냐”고 했다. 그러면서 “선거 관리 부실 참사의 책임을 지고 노 위원장은 즉각 자진 사퇴하고, 박찬진 사무차장 등 실무진도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노 위원장이 사퇴하지 않으면 국회 탄핵 소추안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들은 성명에서 “이번 선거 관리 실패의 근본적 원인은 선관위의 잘못된 의사 결정에서 비롯됐고, 이에 따라 국민의 참정권이 침해돼 헌법에 반하는 결과가 나왔다”면서 “헌법 제65조 제1항에 따라 위원장을 탄핵 소추 의결할 수 있다”고 했다.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는 이날 “노 위원장이 최종 책임자로서 선거 관리를 엄중히 해야 할 직무가 있는데도 사전 투표 선거일에 출근조차 하지 않았다”며 직무 유기 혐의로 그를 검찰에 고발했다.
민주당은 노 위원장 사퇴는 과도한 요구라는 입장이다. 민주당 행안위 관계자는 “사전 선거 부실 관리는 중대한 문제이긴 하지만 불법을 저지른 게 아니라 전례 없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발생한 사고였다”며 “선관위를 비판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건 타당해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위원장 사퇴·탄핵까지 거론하는 건 정치적 공세일 뿐”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지난 19일 성명에서도 “노 위원장 사퇴 요구는 선관위 업무를 마비시키는 처사”라고 했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6·1 지방선거를 ‘노정희 체제’로 치르기로 결론 내고 방어전에 나섰다”는 말이 나왔다. 노 위원장은 민주당 측과 가까운 법조 서클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이런 가운데 노 위원장은 이날 선관위원 회의를 열고 사전 투표 부실 관리 사태 수습을 위한 태스크포스(TF) 총괄단장에 조병현 선관위원을 선임했다. 판사 출신인 조 위원은 국회 추천 몫 3명(여 1·야1·여야 합의 추천 1명) 가운데 여야 합의로 임명된 비상근 선관위원이다. 조 위원은 그간 노 위원장 사퇴 시 위원장 대행 또는 후임 위원장이나 현재 공석인 중앙선관위 상임위원 후보로 거론돼왔다. 노 위원장이 그런 조 위원에게 이번 사태 수습을 맡기며 자신에 대한 사퇴 압박을 돌파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런 조치로 선관위 내부 혼란이 줄어들지는 미지수다. 선관위 직원 2900여 명이 사용하는 내부 익명 게시판에는 노 위원장이 수장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 등이 분출하고 있다. 반대로 노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던 중앙선관위 소속 상임위원단이 오히려 선관위를 망치고 있다며 이들이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전직 선관위 고위 관계자는 “문재인 대선 캠프 출신 조해주 상임위원 논란에 이어 대선 부실 관리, 그리고 노 위원장 문제까지 불거져 선관위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면서 “이대로는 6·1 지방선거를 제대로 치르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