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당선인이 13일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법무장관 후보로 지명하자 정치권에선 ‘측근 파격 발탁’ 인사란 평가가 나왔다. 한 후보자는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특검 등 주요 사건 수사 때 윤 당선인을 곁에서 보좌해온 최측근이다. ‘윤석열의 잘 드는 칼이자 한배를 탄 동지(同志)’란 평까지 들었다. 그런 한 후보자를 법무장관에 기용하려는 것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뜻이란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에선 “인사 테러이자 정치 보복 시도”라고 반발했다. 민주당의 검수완박 강행과 윤 당선인의 한 후보자 지명으로 정국이 여야 정면 충돌로 치달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날 한 후보자 지명 발표 전까지 윤 후보자 주변에서 그의 발탁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민주당도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 수사를 주도한 한 후보자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힐까 주시하는 상황이었다. 윤 당선인도 인선 발표 직전까지 측근에게 알리지 않을 정도로 극비에 부쳤다.
윤 당선인 측은 한 후보자 지명에 대해 “칼 대신 펜을 쥐여준 것”이라고 했다. 한 후보자를 서울중앙지검장 등에 발탁해 정치 보복을 시도할 것이란 민주당 진영의 의심과 달리 법무부 장관이라는 관리자 역할을 줬다는 뜻이다. 윤 당선인도 당선 직후 측근에게 “한동훈을 서울중앙지검장에 발탁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한 측근은 “당선인은 한 후보자가 더 이상 ‘칼잡이’로 손에 피를 묻히길 원치 않았다”고 전했다. 조국 전 장관 수사 이후 네 차례 좌천을 겪고 수사까지 받은 한 후보자에게 다른 길을 열어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후보자가 법무 행정가 역할에 머물 것이라고 보는 정치권 사람은 많지 않다. 문재인 정권 핵심 세력과 벼랑 끝 대치를 벌였던 두 사람 관계가 ‘정치적 동지’에 가깝다는 것이다.
‘특별수사통’이었던 윤 당선인과 한 후보자 인연은 대형 사건 수사로 맺어졌다. 두 사람은 2003년 불법 대선 자금 사건, 2006년 론스타 주가 조작 사건, 현대차그룹 비리 사건 수사에 함께 참여했다. 그러다가 2016~2017년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특검팀에 함께 참여해 다시 호흡을 맞췄다. 문재인 정부 들어 윤 당선인이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발탁될 때 한 후보자는 중앙지검 3차장,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핵심 참모 역할을 했다. 현 정권에 대해서는 ‘조국 사건’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친여 인사들과 매체가 ‘검·언 유착’ 의혹으로 몰고 갔던 채널A 사건으로 기소될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윤 당선인은 당선 직후부터 ‘한동훈 법무장관’ 카드를 머릿속에 넣고 있었던 것 같다고 측근들은 말한다. 조각 인선 작업에 관여한 한 측근은 “당선인이 법무장관 인선에 대해선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마라’고 했었다”고 전했다. 국민의힘의 한 인사는 “한 후보자를 국무위원에 지명한 것은 정치적 역할을 기대한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논란의 ‘한동훈 카드’는 민주당이 최근 ‘검수완박’을 다시 밀어붙이는 국면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검수완박 문제로 민주당과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이들과 대립해온 한 후보자는 최적의 메신저”라고 했다. 한 후보자가 이날 “검찰은 나쁜 놈 잘 잡으면 된다”고 언급한 것도 검찰 수사권을 박탈하려는 민주당 진영을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현재 검찰엔 ‘대장동 사건’과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 등 현 여권을 겨냥한 의혹 사건들이 쌓여 있다. 이에 대해 한 후보자는 “장관에 취임하더라도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에선 “측근을 내세운 전면적이고 노골적인 정치 보복 선언”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민주당이 ‘한동훈 낙마’와 ‘검수완박’을 목표로 결집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한 후보자가 검사 인사에 영향을 미치는 법무장관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수사 공정성 시비가 일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법조계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