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22일 박병석 국회의장이 내놓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중재안을 수용한 것은 정권 교체기 신구(新舊) 권력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재안에 따르면 오는 9월부터 검찰은 선거사범·공직자 수사는 할 수 없게 된다. ‘지는 권력’과 ‘뜨는 권력’ 모두 검찰에서 가장 껄끄러운 부분을 들어내는 결과가 나온 셈이다. 그동안 검수완박을 반대했던 국민의힘이 검수완박의 시행 시기만 늦추는 중재안을 수용하자 “검수완박 반대를 왜 한 것이냐” “결국 권력 입장에선 검찰이 불편한 존재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중재안의 핵심은 기존 검찰이 수사 개시권을 갖는 6대 범죄에서 부패·경제 범죄만 남고 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범죄는 제외된다는 대목이다. 정치권에서는 그간 민주당이 검수완박 입법에 속도를 낸 것은 문재인 정부 인사들과 이재명 전 경기지사를 보호하려는 목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등 현 정부의 ‘윗선’을 겨누게 될 수사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무소속 양향자 의원은 지난 20일 “법안을 처리하지 않으면 문재인 청와대 사람 20명이 감옥 갈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검수완박법이 처리되면 검찰은 4개월 내에 진행 중인 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관련 범죄 수사는 경찰에 이관해야 한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대장동 수사 등은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공직자 직권 남용 사안인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 등은 제대로 못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윤석열 정부도 출범 전부터 검찰 힘을 빼 놓으면서 향후 여권을 향한 검찰 수사를 미리 방어하는 효과를 보게 된다. 한 법조계 인사는 “각계 의견을 수렴하자던 국민의힘마저 결국 본인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법안이 나오니 바로 태도를 뒤집고 같은 배를 탔다”며 “국회와 청와대는 ‘방탄’이 됐고, 피해는 모든 국민에게 돌아가게 됐다”고 했다.
국민의힘이 중재안을 수용한 데는 172석을 차지한 민주당을 상대로 검수완박 처리를 막을 방법이 사실상 없는 현실적 처지를 감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필리버스터를 해도 민주당이 결국 법안 처리를 강행할 것이 확실시됐다”면서 “절충안을 찾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었다”고 했다. 검수완박법이 향후 헌법재판소에서 무효를 다툴 수 있다는 견해도 나왔지만, 현재 헌재가 친민주당 성향에 가까워 수용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했다고 한다. 윤석열 당선인도 중재안을 보고받고 수용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여야 모두 40일 앞으로 다가온 6·1 지방선거 민심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내부적으로는 ‘민형배 위장 탈당’에 대한 비판 여론 부담이 커진 것으로 전해졌다. 한 수도권 의원은 “지역에 가면 검수완박법보다는 민 의원 탈당에 대해 묻는 사람이 더 많다”면서 “꼼수에 신물이 난다는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선거를 치르겠냐는 지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민주당 원내 지도부가 내세운 ‘묘수’가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는 것이다. 이날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박홍근 원내대표는 민 의원 탈당 배경에 대해 시간을 들여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도 검수완박 강행 처리를 막지 못할 경우 불거질 수 있는 책임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정권 초기부터 거대 야당에 끌려다니는 상황을 만드는 게 전혀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내주 중 중재안을 반영한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한 뒤 법사위 논의를 거쳐 28~29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검수완박법은 5월 3일 문재인 정부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의결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