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신임 금융감독원장

윤석열 대통령은 7일 금융감독원장에 이복현(50) 전 서울북부지검 부장검사를 금융위 제청을 통해 임명했다. 검찰 출신 금감원장은 1999년 금감원 설립 이후 처음이다. 정부와 대통령실 요직에 검찰 출신이 전면 배치된 데 이어 금융 당국 수장직에까지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되는 이 원장이 발탁되면서 검찰 편중 인사 논란이 거세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이 원장은 공인회계사 출신으로 검찰 내 대표적인 금융·조세 범죄 수사 전문가로 꼽힌다. 윤 대통령과 2006년 현대차 비자금,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비롯해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2016년 박영수 특검팀의 국정농단 수사 등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다. 삼성그룹 관련 수사를 자주 맡아 업계에선 ‘삼성 저승사자’로도 불린다.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이 이른바 ‘검수완박 입법을 당론으로 채택한 것에 반발하며 사표를 내 주목받았다.

윤 대통령은 이날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정부 요직을 검찰 출신이 독식한다는 비판이 있다’는 질문에 “우리 인사 원칙은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물을 쓴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윤 대통령 측은 금감원 내부 인사나 기획재정부 출신 등을 금감원장 후보로 물색했지만, 전문성 면에서 이 원장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검찰 편중 인사’ 논란이 불가피할 거라는 고민이 컸지만, 금감원 본연의 기능을 되찾는 데 방점을 뒀다”며 “이 원장이 조직 쇄신을 하면서 금융 비리에 제대로 대응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때도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 지난 정부에서 발생한 대형 금융 사건과 관련해 “금감원의 감독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을 가졌다고 한다.

한동훈(오른쪽) 법무부 장관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 재직 시절 최측근인 한동훈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한 데 이어, 이날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되는 이복현 전 서울북부지검 부장검사를 금융감독원장에 임명했다. /연합뉴스

그러나 민주당은 “이 전 부장검사는 ‘윤석열 사단’으로 손꼽힌다”며 “’검찰 편중’ ‘지인 찬스’ 비판에도 마이웨이 인사를 고집하고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인재 풀을 넓히는 문제에 대해 내부적으로 고민을 해보겠다”고 했다.

금융권에선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우선 현대차 비자금 사건 등 굵직한 경제 사건 수사 경험이 풍부한 이 원장이 주가 조작이나 횡령 등에 대해 엄정한 법 집행으로 금융시장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반면 금감원이 자칫 사정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금융업계 고위 관계자는 “금감원은 소비자 보호뿐 아니라 금융 산업의 건전성을 확보하는 정책적 역할도 수행한다”며 “그럼에도 검사 출신을 원장으로 앉힌 것을 보면 새 정부가 금융사를 단순히 검사하고 징계하는 쪽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고 했다. 핀테크업체 관계자는 “금감원이 ‘금융 검찰’로 불리는 것은 은유적인 표현이지 실제 검찰이라는 뜻은 아니다”며 “금융 감독 방향이 처벌 쪽으로 흐르지 않을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금융권은 ‘여의도 저승사자’라는 금융·증권범죄합수단이 서울남부지검에 부활한 것과 맞물린 이번 인사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 ‘금융사 군기 잡기가 심해질 것 같다’는 공포가 빠르게 퍼지는 것이다. 이 원장은 이날 취임사에서 “금융시장의 선진화와 안정 도모에 우선을 둬야 한다”면서도 “시장 교란 행위에 대해서는 종전처럼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업계에선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등 전 정권에서 벌어진 펀드 사기 사건에 대한 재조사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전 정권 유력 인사가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디스커버리 펀드 사태 대책위 관계자는 “금융사에 호의적이었던 역대 금감원장과 달리 원칙에 따른 재조사 결정을 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했다.

일각에선 “상급 기관인 금융위원장보다 입김이 센 ‘실세 금감원장’이 될 것”이란 반응도 나온다. 김주현(64)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정통 경제 관료 출신으로 정치적 색채가 옅다는 평이다. 하지만 김 후보자와 이 원장이 서울대 경제학과 선후배에, 나이 차도 열네 살이나 나기 때문에 불협화음을 내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