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내 친명계(친이재명계)와 비명계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이재명 의원의 강성 지지층이 이 의원을 비판한 비명계를 대상으로 문자 폭탄 등 과격한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한 것이 발단이다. 친문·친이낙연계, 친정세균계 의원들은 “정치 훌리건을 방치하고 있다”며 친명계를 직격했고, 이른바 ‘수박’이란 단어를 놓고 주말 내내 계파 간 설전이 벌어졌다.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각 계파가 당권 투쟁을 본격 시작한 모습이다. 이에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12일 “’수박’ 단어를 쓰시는 분들 가만 안 두겠다”며 공개 경고했다.
‘수박 논쟁’은 친정세균계 3선인 이원욱 의원이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수박 사진과 함께 “수박 맛있네요”라고 올린 데서 시작됐다. 이재명 의원 지지층은 이 의원을 비판하는 민주당 인사를 겨냥해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의 멸칭으로 ‘수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를 비꼰 것이었다. 이에 친명 김남국 의원은 “국민에게 시비 걸듯이 비아냥거리는 글을 올려 일부러 화를 유발한다”며 이 의원을 비판했고, 이 의원은 다시 “친명 의원들이 훌리건의 편을 든다. ‘처럼회’가 해산해야 한다고 했다. ‘처럼회’는 민주당 강경파 초선 모임으로 김 의원과 최강욱·김용민·이수진 의원 등이 주요 멤버다.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주도했고, 대체로 이재명 의원을 지지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김남국 의원은 12일 “지금까지 계파 정치로 천수를 누렸던 분들이 느닷없이 계파 해체를 선언하고 영구처럼 ‘계파 없다’ 이러면 잘못된 계파 정치 문화가 사라지나”라고 했고, 이 의원은 다시 “가장 먼저 정치 훌리건을 없애기 위해 나서야 할 분들이 바로 이재명 의원과 측근 정치인들”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이 과정에서 이 의원을 겨냥해 “도둑”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모기’에 비유하는 듯한 글을 올렸다 삭제하기도 했다.
‘정치 훌리건’ 공방은 전당대회를 앞둔 계파 논쟁으로 번져가는 모양새다. 전당대회가 ‘이재명 대 반이재명’ 구도로 흐를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범친문 등 구주류 세력이 계파 해체를 선언하며 친명계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정세균계는 앞서 ‘광화문포럼’ 해체를 선언하며 당내 계파 해산을 주장했고, 이낙연계도 모임 해산을 선언했다. 민평련계인 이인영 의원도 이날 “새로운 출발에 장애라면 망설임 없이 (민평련을) 탈퇴하고 원점에서 임하겠다”며, 당내 조직을 전부 해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인 윤영찬 의원도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처럼회’ 소속인 이수진 의원(서울 동작을)을 겨냥해 “이런 분들과 같은 당으로 정치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허탈감이 들었다”고 했다. 이수진 의원이 한 유튜브 방송에서 윤 의원을 향해 “울면서 언론의 자유를 지켜달라고 했다”고 말했고, 이후 윤 의원은 모욕성 문자·댓글을 받았다는 것이다. 윤 의원은 “유튜브에서 아무 말이나 하면 그게 사실이 되나”라고 했다. 또 지방선거 이후 ‘수박들 다 죽어라’ 등의 내용이 담긴 팩스를 수백 장 받았고, 이낙연 전 대표에 대한 가짜 뉴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했다.
논란이 번지자 우상호 비대위원장은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인신공격, 흑색선전, 계파분열적 언어를 엄격하게 금지하겠다”며 “‘수박’이라는 단어를 쓰는 분들은 가만히 안 두겠다”고 말했다. 지방선거 패배 원인 중 하나로 ‘분열’을 꼽으며, 비대위의 극복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지난 대선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계파 간 갈등과 감정적 골을 지방선거에서 온전히 극복하지 못했다”며 “선거에서 진 정당이 겸허한 평가의 접근이 아니라 서로 남 탓하고 상대 계파 책임만 강조하는 방식으로 가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 위원장은 전당대회 룰과 관련, 대의원·당원 의사 반영 비율 조정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는데, 이를 두고도 계파 간 극한 충돌이 예상된다.
우 위원장은 검수완박법 처리 국면에 탈당한 무소속 민형배 의원의 복당을 요청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럴 계획이 없다”면서 “민 의원의 헌신을 평가하지만 이 문제는 헌재의 (검수완박 관련) 판결이 내려지는 것이 먼저”라고 했다.
☞수박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당내에 숨어있는 보수 인사’를 의미하는 멸칭이다. 겉이 초록이지만 속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과 같다는 것이다. 주로 이재명 의원 지지자들이 이낙연 전 대표 측의 인사들을 공격하는 용도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