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9일(현지 시각) 나토 정상회의가 열리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프랑스, 네덜란드, 폴란드, 덴마크와 연쇄 정상회담을 하며 세일즈 외교에 나섰다. 윤 대통령은 이번 나토 정상회의 기간에 총 7국 정상과 양자 회담·회동을 한다. 대부분 한국의 새로운 수출 시장이거나 공급망 구축, 미래 기술 협력이 긴요한 유럽 국가들이다.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통해 중국에 의존한 수출 시장을 유럽으로 넓히겠다는 구상을 구체화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나토 정상회의 참석과는 별개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와 양자 정상회담을 했다. 나토 정상회의장에선 회의 중간에 유럽연합(EU)과 캐나다, 루마니아 정상과 약식 회동도 했다. 모두 서방 집단 안보 동맹인 나토 회원국들이다. 윤 대통령은 안보가 주제인 나토 회의와 경제에 초점을 맞춘 양자 정상회담·회동을 하는 투 트랙 전략을 택했다. 최상목 대통령 경제수석은 현지 브리핑에서 “이번 나토 정상회의 참석은 새로운 수출 주력 산업에 대한 정상 세일즈 외교의 시작”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효율적 탄소 중립 실현을 위해 원자력 발전이 갖는 중요성에 인식을 같이하고, 원전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양국 간 협력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올 초 ‘원자력 르네상스’를 선언하고 2050년까지 14기의 원전을 건설하기로 했다. 양국은 중소형 위성 개발 등 우주산업 협력도 논의했다. 최근 누리호 발사 성공 여세를 몰아 우주산업 강국인 프랑스와의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폴란드는 한국의 원전 및 방산 수출 대상국으로 꼽힌다. 러시아에 인접한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전쟁 탓에 안보에 더 큰 위협을 느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한국 방산 수출 문제를 논의했다. 윤 대통령은 두다 대통령에게 “두 나라가 상호 우호와 신뢰를 바탕으로 교육과 인프라투자, 에너지, 방위산업에 이르는 다방면에서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심화돼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폴란드는 또 작년에 신규 원전 6기 건설 계획을 세웠다. 사업비 40조~50조원 규모로 원전 생태계 복원을 내건 윤 대통령은 원전 수출을 위한 협력을 논의했다. 윤 대통령이 30일 정상회담을 하는 체코도 신규 원전 1기 입찰에 들어가 사업자 선정이 임박한 상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폴란드, 체코 원전 수주에 총력을 기울일 생각”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동안 이창양 산업부 장관이 폴란드, 체코를 방문해 원전 수주 지원전에 들어간 것도 이런 차원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이날 정상회담·회동을 한 네덜란드와 루마니아, 30일 정상회담을 하는 영국도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한 나라들이다. 이런 나라들과 미리 우호 협력 관계를 맺어 놓겠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반도체·배터리·핵심 광물 등 공급망 강화 외교에도 나섰다. 이날 정상회담을 한 네덜란드는 핵심 반도체 생산 장비 제작 업체인 ASML이 있는 나라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얼마 전 네덜란드 ASML을 찾았다. 윤 대통령은 뤼터 네덜란드 총리에게 “ASML과 같은 기업의 한국 내 투자가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30일 정상회담을 하는 캐나다는 핵심 광물 공급망 강화를 위해 협력 수준을 높이겠다는 게 윤 대통령 구상이다. 윤 대통령은 또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선 재생에너지 관련 상호 투자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윤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세일즈 외교에 나선 것은 안보뿐 아니라 경제 협력의 외연도 유럽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최상목 경제수석은 “경제적 측면에서 왜 유럽인가라고 묻는다면 성장 동력의 확충 때문”이라고 했다. 최 수석은 “중국의 성장이 둔화하고 내수 중심 전략으로 전환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지난 20년간 우리가 누려 왔던 중국을 통한 수출 호황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그래서 우리가 중국의 대안인 시장이 필요하고 다변화가 필요한 실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