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감사원이 특별감사에 착수하기 전 국회 승인을 받도록 하는 ‘감사원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감사원이 문재인 정부 때의 각종 문제에 대한 감사를 하자 국회 다수당이 이를 통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여당은 “169석 다수당의 횡포”라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이은 ‘감사완박’”이라고 반발했다. 감사원 안팎에서는 “특별감사는 신속, 은밀이 핵심인데 국회 승인을 먼저 받으라는 건 감사를 하지 말라는 얘기”라는 말이 나왔다.
민주당 원내 선임부대표인 신정훈 의원은 14일 감사원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신 의원 등 민주당 의원 60명이 개정안에 이름을 올렸다. 이 개정안에는 감사원이 특별감찰을 할 때 감찰계획서를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제출해 승인을 얻도록 하고 감사 결과를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감찰 금지 사항에 ‘정부의 중요 정책 결정 및 정책 목적의 당부(當否)’를 추가했다. 예컨대 문재인 정부 핵심 정책이던 탈원전과 관련한 감사를 못 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또 감사 대상자에게 감사 사유를 사전에 통지하고, 감사원 공무원 임면권자를 대통령에서 감사원장으로 변경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감사원 직원이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했을 때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겠다고도 했다. 감사원 최고의결기구인 감사위원회의 의결을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신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감사원의 전현희 권익위원장을 둘러싼 특별감사 연장에 대해 “전(前) 정부에서 임명한 기관장에 대한 사퇴 목적의 신상털기식 표적 감사”라며 “감사원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지원하는 일개 행정기관으로 전락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는 본지 통화에서 “감사원의 정치 개입을 입법으로 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당론으로 추진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재명 대표도 최근 비공개 회의에서 “윤석열 정부가 감사원까지 동원해서 야당에 대한 무리한 공격을 벌이고 있다”며 “검찰이 저를 기소한 것도 그렇지만 감사원 감사도 보면 도대체 정치를 하겠다는 것인지, 뭘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민주당이 당론으로 추진하는 감사원법 개정안은 사실상 국회가 감사원을 통제하겠다는 내용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감사원은 특별감사 이전 국회 승인을 받아야 하고, 감사 결과도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또 감사위원회의 의결은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의결 합의는 비공개이나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가 요구하는 경우에는 의결 내용을 보고해야 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감사원의 국회 이전이 필요하다는 의견까지 나왔지만 이는 개헌 사안이라 우선 입법을 통해 감사원의 정치 행위를 막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여권에선 “검수완박에 이어 감사완박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민주당이 방탄 정당임을 자인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현재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 당시 일어났던 북한 어민 북송 및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코로나 백신 수급 지연 문제, 2022년 3월 대선 선관위의 ‘소쿠리 투표’ 논란,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 등과 관련한 감사를 진행 중이다.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됐던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전현희 권익위원장 등과 관련한 기관 감사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이 밀어붙이려는 감사원법이 통과되면, 감사원은 이 같은 감사에 착수하기 전 감찰계획서를 국회에 제출하고 감사 개시 여부를 승인받아야 한다.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법이 통과되면 결국 민주당 마음대로 (특별감사를) 승인할지 결정할 수 있다”고 했다.
여당과 감사원은 “감사원마저 국회 하위 기관으로 전락시키겠다는 뜻이냐”며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감사원법 개정안을 제2의 ‘검수완박’ 시도로 보고, 민주당의 ‘입법 독재’를 저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본지 통화에서 “감사원은 완전히 독립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기관으로, 헌법상 감사원이 소속된 대통령조차도 감사원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감사원으로부터 감찰 내용을 보고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 법안은 이런 감사원을 의회가 통제하겠다는 발상으로, 앞서 ‘시행령 통제법’을 통해 행정부 권한을 침해하려 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감사원도 “헌법기관인 감사원의 고유 기능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의 부정행위에 대한 단속과 처벌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직 고위 감사원 관계자는 “특별 감찰은 오랜 기간 축적된 감사원의 감사 노하우를 통해 입수한 공공기관의 비위 정황 등을 바탕으로 착수하는 것”이라면서 “신속·기밀성을 요하는 특별감찰을 국회의 절차를 밟아 승인받고 하라는 건 사실상 국회가 시키는 것만 하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감사원 감사위원회의 역할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감사원장을 포함해 감사위원 6명 등 총 7명으로 구성된 감사위원회는 감사 사항의 최종 심의·의결뿐 아니라 임직원의 징계·문책 등도 결정하는 감사원 최고의결기구다. 그런데 ‘감사완박’ 법안대로 할 경우 국회가 감사위원의 역할을 대신하는 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감사원 관계자는 “감사원 임직원의 정치적 중립성 유지 의무는 이미 기존 법으로 규정된 것인데, 굳이 이와 유사한 법안을 추가로 만들면 어떤 실효가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전직 감사위원은 “감사완박법은 독립적인 감사원의 결정 사항을 국회가 가져가겠다는 것으로 권력의 견제 기능이 무너지게 될 것”이라며 “이 법이 시행되면 문재인 정부 당시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이나 산업부 공무원들의 원전 비리 문서 증거 인멸 같은 범죄를 감사원이 감사할 수 없게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