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기본소득당 등 야(野) 3당은 21일 대통령실을 조사 대상으로 적시한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계획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계획서에는 ‘참사의 근본적 배경에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 있다’는 취지의 내용도 포함됐다. 정부뿐 아니라 대통령실의 대응과 후속 조치, 나아가 용산 대통령실 이전 문제까지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연계해 다루겠다는 것이다. 여당은 이들의 국정조사 요구를 ‘정치 공세’로 규정했지만, 과반 의석을 갖고 있는 야 3당은 여당의 의사와 상관없이 오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계획서를 채택할 방침이다.
야 3당은 이날 계획서에서 “3년 만에 사회적 거리 두기가 없이 열린 핼러윈 축제로 인하여 평소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집중될 것으로 예상되었음에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사전에 안전 관리 대책을 세우지 않았고, 참사 당일 112 신고 등에도 관계 당국의 즉각적인 대처가 없었다”고 조사 목적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참사의 근본적 배경에는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따른 경호·경비 인력의 과다 소요, 참사 당일 당국의 마약 범죄 단속 계획에 따른 질서 유지 업무 소홀 등이 작용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으로 치안 공백이 발생했고, 참사의 한 원인이 됐으니 이를 규명하겠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본지 통화에서 “막무가내로 이태원 참사를 정쟁화하겠다는 것이고, 이재명 지키기를 위해 국민적 비극을 이용하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라며 “대통령실 이전이 참사의 근본 배경이라는 발상 자체가 비이성적”이라고 했다. 국정조사 특위 위원장으로 내정된 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국정조사에 정략적으로 접근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이러한 사회적 참사가 있었는데 대통령부터 그 아래까지 너무 무책임하게 보이는 것은 따져보겠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이태원 참사 초반 당 일각에서 거론한 ‘대통령실 이전 책임론’을 부정한 바 있다. 남영희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참사 직후 “백 번 양보해도 이 모든 원인은 용산 국방부 대통령실로 집중된 경호 인력 탓”이라고 했는데, 논란이 되자 지도부 차원에서 “그런 내용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민주당의 기류는 바뀌었다. 공공연히 대통령실 책임론을 거론했고, 국민의힘이 국정조사에 회의적 반응을 보이자 당 차원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으로 인한 용산경찰서의 민생 치안 업무 공백이 참사의 한 원인으로 드러나는 것이 두렵느냐”는 논평을 내기도 했다. 최초에 부적절하다고 잘라냈던 주장에 지도부가 조금씩 호응하더니, 급기야 국정조사 계획서에까지 명시한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대통령실 이전은 직접 원인은 아니더라도 이태원 참사의 한 간접 요인으로는 볼 수 있다”며 “윤석열 정부 관계자들이 이번 참사에 대해 미안한 기색을 비추지 않고 지나치게 당당히 나오는 걸 두고 볼 수 없다는 당내 기류가 반영된 측면도 있다”고 했다.
민주당 등 야 3당의 국정조사 계획서에는 대통령실 이전 문제뿐 아니라 그동안 야권이 제기했던 각종 의혹이 망라됐다. 야 3당은 이태원 참사를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2014년 세월호 참사와 비교하며 조사 대상 기관으로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 대통령경호처를 포함했다. 여기에 ‘마약 수사’에 집중하느라 참사를 방지하지 못했다는 취지에서 법무부도 조사 대상이 됐다. 용산구청장의 책임을 묻겠다는 뜻으로 용산구청은 물론 박희영 구청장이 참사 당일 축제를 다녀왔다고 밝힌 경상남도 의령군까지 조사하겠다고 했다. 야 3당은 계획서에 “정부와 관련 기관·단체·법인·개인 등은 수사와 재판을 이유로 조사에 응하지 않거나 자료 제출을 거부할 수 없다”고 적시했다. 조사 기간은 11월 24일부터 내년 1월 22일까지 60일이며 이 기간 기관 보고 네 차례, 청문회 다섯 차례, 현장 조사 세 차례를 실시하기로 했다. 특위는 총 18인으로 민주당 9명, 국민의힘 7명, 비교섭단체 2명(정의당 1명, 기본소득당 1명) 등으로 배분했다. 야당은 국민의힘이 국정조사에 동참하지 않아도 오는 24일 본회의에서 국정조사 계획서를 채택할 방침이다.
선(先) 수사 후(後) 조사 방침이었던 국민의힘은 야 3당의 무력시위에 일부 변화된 입장을 내놨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 후 “국정조사는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수사 결과를 봐서 부족하면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기자들에게 전했다. 그러나 주 원내대표는 국회의장 주재로 열린 원내대표 회동에선 “예산 처리 이후 국정조사 협의에 응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결과를 보고 국정조사를 한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지만, 이와 관련된 협의는 예산 처리 후 시작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 원내대표는 회동에 앞서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국민의 상당수가 국정조사를 찬성하는데 우리 당이 계속 반대할 수 있느냐”며 “윤석열 예산은 다 죽이고 이재명 예산은 다 살리면 어떻게 할지 나도 머리가 아프다”고 고민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민주당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는 “우리는 24일 본회의에서 국정조사 계획서를 그냥 처리하면 된다”고 했다. 국민의힘의 제안과는 별개로 예고한 국정조사 계획서 채택 계획은 변함없음을 확인한 것이다. 여야의 타협이 이뤄지면, 국정조사 계획서는 24일 채택되고 실제 국정조사는 예산안 처리(12월 2일) 이후로 미뤄지게 된다.
국정조사와 별개로 국민의힘은 자체적으로 꾸린 ‘이태원 사고 조사 및 안전대책특별위원회’ 활동은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은 이날 국회에서 이태원 참사자 유족들과 비공개 면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일부 유족은 정부의 대응 미숙 등을 강하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면담에 참석한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유가족 분들 절절한 말씀을 듣는 시간이었다”며 “여당으로서 너무나도 송구하다는 말씀드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