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김어준씨가 차린 여론조사업체의 여론조사 질문지 전문(全文)이 중앙선관위에 등록됐다. 확인 결과, 전체 문항 10개 가운데 6개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 관련 질문이고, 1개가 김건희 여사 관련 질문이었다. 또 여러 질문에 특정 답변을 유도하는 문장이 숨어있었다. “답정너 여론조사” “김어준의 뇌 구조도” 등의 지적이 나왔다.
16일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따르면, 김어준씨 회사는 지난 11·12일 이틀에 걸쳐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꽃 정례 ARS 여론조사’를 진행했다.
문항은 총 10개였는데, 3개의 카테고리로 나뉘었다. 우선 ‘정치 지표’ 카테고리의 1~3번 문항은 일반적 여론조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일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잘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식이었다. 이 질문에 응답자 41.9%가 ‘잘하고 있다’를 선택했다.
두 번째 카테고리는 제목이 ‘한동훈 장관’이었는데, 세부질문이 6개였다. 직무수행 평가, 개인 호감도, 국민의힘 당대표 출마 적절성, 답변 태도, 정치인 자질, 10억 손배소 청구 등이었다. 나머지 1개 카테고리는 ‘정치 현안’이었는데, 주제는 단 하나 ‘김건희 소환조사 필요성’이었고, 질문도 1개였다.
여권 관계자는 “김씨가 머릿속 공격 목표로 설정한 타깃의 중요도만큼 질문 숫자가 배정된 거 같다”며 “한동훈 스토킹 식으로 만들어진 질문지 자체가 ‘김어준 뇌 구조도(圖)’ 같다”고 했다.
김씨 조사에서, 민감한 질문엔 유도성 문구(文句) 또는 문장이 숨어있었다. 예컨대 한동훈 장관의 10억원 손배소 청구와 관련한 질문은 이랬다.
‘한동훈 장관은 청담동 술자리 의혹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과 더탐사 관계자 등을 상대로 허위사실 명예훼손으로 형사 고소와 10억 손배소를 제기했습니다. 검찰사무를 관장하는 법무부 장관으로서 한 장관의 대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 김건희 여사 관련 질문은 이렇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법정에서 통정거래로 의심되는 주문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씨 전화로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김건희씨를 소환조사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문가들은 “유도성 질문을 통한 답정너 여론조사”라고 평가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유도성 질문을 통해 정해진 답으로 향해가도록 설계된 여론조사는 아주 나쁜 조사”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재경 정치학 교수는 “해당 여론조사의 일부 문항은 여론조사 질문의 원칙을 무시하고 선동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는 익명을 요구한 이유에 대해 “김어준씨 극성팬들의 온라인 집단공격이 피곤해서”라고 답했다.
또 다른 여론조사 전문가는 “질문지를 보면, 정당이나 선거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항은 별다른 문제 없이 만들고, 자기가 필요한 일부 문항만 답정너로 만들었다”며 “김어준씨가 선거여론조사심의위 규정을 너무 잘 알고서 규제를 피해나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관련법규상 중앙선관위의 여론조사 심의 대상은 ‘선거 관련 질문’에 한하며, 선거와 관련되지 않은 일반적인 정치·사회 현안은 심의 대상이 아니어서 이런 식의 질문이 가능했다는 설명이었다.
김씨는 지난 대선에서 자신이 공개 지지를 선언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윤석열 대통령에 패한 지 20여일만에 딴지일보 홈페이지를 통해 “여론조사 기관을 설립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만든 회사가 이번 조사를 시행한 ‘여론조사꽃’이다. 김씨는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선 “(대선 기간에) 여론조사로 가스라이팅을 했다. 그것이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며 “그래서 언론사와 정당 등의 의뢰를 안 받고 자체 조사만으로 매주 기획 조사해 정기 리포트를 회원들에게 보내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