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인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1일 “우리도 영민한 토끼를 닮아서 플랜2, 플랜3 이렇게 대안을 많이 마련하는 그런 해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문 전 의장은 이날 민주당사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토끼는 민첩하고 영민한 동물로 굴을 3개 판다고 해서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는 말도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인사회는 새해 토끼의 해를 맞아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참석해 ‘이재명 체제’의 굳건함을 강조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당 원로가 ‘플랜B’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단순한 덕담 차원을 넘어 이 대표 체제를 겨냥한 작심발언으로 풀이됐다. 사법 리스크로 인한 ‘당 대표 유고’ 상황에 대한 우려가 당 안팎에서 나오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문 전 의장은 또 “교수협의회의 2022년 사자성어가 과이불개(過而不改·잘못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였다.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한다”며 “정부·여당에도 해당하지만 우리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문 전 의장은 “우리가 가진 모든 문제에 잘못이 있으면 고치면 된다”며 “우리의 DNA에는 그간 화려한 (잘못을 고친) 경력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당의 금년 사자성어는 화이부동(和而不同·남과 화목하되 똑같아지지 마라)이라고 생각해봤다”며 “각자 다른 생각을 갖는 건 민주주의의 기본이고 다양성은 민주주의의 기초”라고 했다. 친명·비명으로 나뉜 당의 화합을 강조한 뜻이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를 중심으로 한 ‘개딸’ 등 팬덤 정치의 폐해를 우회적으로 지적한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에 대해 문 전 의장은 본지 통화에서 “어느 누구, 진영을 특정한 게 아니라 여도 야도 시대의 대전환기를 맞아 대응 전략을 짜야 한다는 취지에서 한 말”이라며 “여야 모두 이런 교훈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이날 일제히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며 ‘하나의 민주당’을 강조했다. 이 대표는 “안타깝게도 타협과 조정을 통해 희망을 만드는 일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며 “폭력적인 일방적 지배가 난무하는 시대이나 그래도 민주당이 새로운 희망의 길을 국민과 함께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경제와 민생도, 민주주의도, 한반도 평화도 위기라고 불릴 만큼 상황이 어렵긴 하나 새로운 길을 만들고 새 희망을 만드는 것이 정치”라며 “국민과 당원 동지와 함께 새로운 한 해에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길과 희망을 만들어나가겠다”고 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현 상황을 민주주의·인권 후퇴, 어려운 민생·경제, 불안한 한반도 평화의 위기로 규정하며 “역사 발전의 승리, 국민, 민주당의 저력 등 3가지를 믿고 간다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며 “이 대표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함께 승리의 역사를 만들면 좋겠다”고 했다. 박찬대 최고위원은 “민주당이 지치면 진다”며 “뭉치면 이긴다”고 했고, 정태호 신임 민주연구원장도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우리 모두 힘을 모아 위기를 잘 극복해 나가면 좋겠고, 그 중심에 민주당이 있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날 신년 인사회 이후 국립 서울현충원의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과,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김 전 대통령 묘역에서는 최근 복당한 박지원 전 국정원장을, 봉하마을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를 만났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2일 평산마을에서 예방할 예정이다. 새해를 맞아 친명·비명 간의 갈등을 수습하고 사법 리스크에 흔들리는 ‘이재명 지도부’를 굳건히 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