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월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유홍림 서울대 총장 임명장 및 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위촉장 수여식을 마친 후 이동하고 있다./뉴시스

국민의힘 3·8 전당대회는 ‘당정 분리’라는 정치권의 오랜 논쟁을 다시 한번 촉발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전당대회 과정에서 특정 후보를 비판하거나 견제하는 모양새를 취하며 사실상 김기현 후보 지지 의사를 표출했다. 대통령의 당무 개입은 당정 분리 위반이라는 비판이 커지자, 대통령실은 “1호 당원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과거 3김 시대까지 대통령은 당 총재를 겸임했다. 공천 등 모든 정치 과정을 좌지우지했고, 행정부까지 장악해 대통령이 권력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러나 행정부 소속 대통령이 입법부의 주축인 정당의 당무까지 간섭해 삼권분립에 어긋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당정 분리가 정치권에 부상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부터였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대통령 당선 뒤 “대통령이 당을 장악해 의회를 지배하는 것은 유신 잔재”라며 당정 분리를 선언했다.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도 2006년 당권·대권 분리를 공식화했다. 그러나 한국의 당정 분리는 출발부터 삐거덕댔다. 이론과 실제가 어긋하는 부조리 현상이 벌어졌다. 말이 당정 분리지 국정의 뒷받침이 필요했던 대통령은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공천과 당내 선거에 영향력을 발휘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7년 “당정 분리, 저도 받아들였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만 재검토해 봐야 한다”며 “대통령 따로 당 따로 누가 책임지나. 책임 없는 정치가 돼 버렸다”고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아예 “정치의 중심은 정당이다. 당정 분리라는 것도 재검토해야 한다”며 아예 ‘당·정·청 일체’를 강조하기도 했다.

보수 정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친이(親李·친이명박)·친박(親朴·친박근혜)으로 나뉜 당 구도 아래 대통령들은 막후에서 공천과 전당대회에 적극 개입했다. 그 결과 18대 총선에선 친박계에 대한 이른바 ‘공천 학살’ 논란이 일었고, 20대 총선에선 ‘진박(眞朴·진짜 박근혜) 공천’이 이뤄지기도 했다. 지난 2014년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 전당대회에선 박 전 대통령이 서청원 전 의원을 지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실제 미국·프랑스 같은 오랜 대통령제 국가에서도 대통령의 당무 개입은 일정 정도 이뤄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각 정당의 상·하원 의원 후보 공천이 당원 등이 직접 뽑는 상향식으로 이뤄진다. 이 때문에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에게 편지를 써주는 등의 방식으로 공개 지지한다. 프랑스의 경우 대통령이 주도해 창당하고 측근들을 총선 전면에 배치하는 등 사실상 대통령과 여당이 한 몸으로 움직인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현 집권 여당을 창당했을 뿐 아니라 지금도 ‘명예 당수’란 직책을 갖고 당무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이승근 계명대 정치학과 교수는 “프랑스의 경우 이원집정부제라 내각에서 뽑는 총리를 야당에서 가져갈 경우 대통령의 권한이 반 토막 난다”며 “드골 정부 이후 대통령이 당의 중심이란 생각이 확고하다”고 했다. 반면 우크라이나 등 일부 국가는 대통령이 되면 정치적 중립을 위해 무소속이 되도록 강제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학자들도 우리의 정치 구조상 일정 수준 당무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점엔 어느 정도 동의한다. 문제는 어떤 방식이냐는 것이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정 운영의 안정성을 위해 대통령의 개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개입은 정당에 맡기는 세련된 방식이 돼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의 뜻을 당에서 당론으로 채택하고, 이를 당에서 주도적으로 밀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임성학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가장 중요한 건 대통령이 국회를 바라보는 시각”이라며 “대통령이 여당을 하위 조직이 아닌 파트너로 생각하는 인식의 전환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