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 서대문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열린 제23대 광복회장 선거에서 선출된 이종찬 신임 회장이 축하 꽃다발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광복회 신임 회장에 이종찬(87) 전 국가정보원장이 25일 당선됐다. 독립 유공자 후손 단체인 광복회는 지난 4년간 김원웅 전 회장의 ‘정치 편향’ ‘비자금 조성’ 논란, 후임 회장들의 잇따른 직무 정지·소송전 등으로 내홍을 겪다 이번에 새 회장을 선출했다.

광복회는 이날 서울 서대문구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에서 개최한 정기총회에서 “이종찬 후보가 총 209표 가운데 98표(46.9%)를 얻어 제23대 광복회장으로 선출됐다”고 밝혔다. 신임 회장의 임기는 내달 1일부터 2027년 5월 31일까지 4년이다. 부회장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손자인 김진 대의원(전 주택공사 사장)이 선임됐다. 이번 회장 선거에는 총 6명이 출마했으며 장준하 선생의 아들로 전임 회장이자 유력한 경쟁자였던 장호권 후보는 74표를 얻었다. 선거권을 가진 사람은 광복회 각 지역 지부장, 대의원 181명 등 총 209명으로, 이날 모두 선거에 참여했다. 광복회 관계자는 “각 지역에 흩어진 선거인이 전원 참여한 것은 그만큼 각종 논란으로 위기에 빠진 광복회를 다시 살리기 위한 열의가 컸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 신임 회장은 1936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로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제11~14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장을 지냈다. 이 회장은 이날 당선 수락 연설에서 “광복회는 현재 설립 이후 최악의 위기 상황에 있다”면서 “당장 시급한 발등의 불을 끄고 자구책을 마련해 특단의 각오로 운영 쇄신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광복회가 그간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면서 “여러 후보가 나왔고 이견도 있었지만 한 가족으로 모시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여섯 다섯 단체로 나눠진 상태로 2차 대전을 맞았지만 결국 화합의 길을 걸었다”면서 “그 길을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으로 같이 걸어나가자”고 했다. 이어 “광복회 예산을 투명하게 집행하는 등 원칙을 바로잡아 광복회가 국가 중추 원로 기구로 위상을 갖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독립 유공자와 그 후손들이 회원으로 참여해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선양 사업 등을 하는 광복회는 국가유공자단체설립법에 따라 1965년 설립됐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김원웅 전 회장이 선출되면서 잇단 논란에 휩싸였다. 김 전 회장은 공식 행사에서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 등을 ‘친일’로 규정해 ‘편향된 역사관’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다 광복회 공금 횡령·비자금 조성 의혹이 터져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게 되자 지난해 2월 자진 사퇴했다. 취임 2년 8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한 것이다. 광복회장이 개인 비리에 연루돼 자진 사퇴하기는 창립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광복회는 이후에도 회장 자리를 놓고 백범 손자 김진씨 측과 장준하 선생 아들 장호권 후보 측의 갈등이 벌어지며 내홍을 겪었다. 김 전 회장 사퇴 3개월 만인 5월 보궐선거에서 장 후보가 회장으로 선출됐지만, 5개월 만에 법원 가처분 결정으로 직무가 정지됐다. 장 후보가 선거 당시 담합 의혹을 제기한 광복회원을 모형 권총으로 위협한 혐의로 조사를 받는 일 등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후 김진씨가 직무대행을 맡았지만 그 역시 총회 소집 절차 등이 문제돼 올 1월 3개월 만에 물러났다. 이에 관선 변호사 직무대행 체제가 4개월간 지속되다 이번에 회장 선거가 치러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