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간부들의 자녀 ‘특혜 채용’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감사원의 직무 감찰을 받는 것을 거부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1일 전해졌다. 국가공무원법상 인사 감사를 선관위 사무총장이 하게 돼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선관위가 또다시 법 조문 뒤에 숨어서 외부 기관 감찰을 피하는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그동안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임을 내세워 외부 감찰을 피해왔다.
선관위 관계자는 이날 “국가공무원법 17조 2항에 따라 감사원은 선관위 인사에 대한 감사는 할 수 없다. 사태 수습도 법에 따라 해야 한다”며 “2일 회의를 열고 감사원 감사를 받을지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국가공무원법 17조 2항은 국회·법원·헌재·선관위 소속 공무원에 대한 인사 사무 감사는 국회 사무총장, 법원행정처장, 헌재 사무처장, 선관위 사무총장이 각각 실시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런데 선관위 1·2인자인 박찬진 사무총장(장관급)과 송봉섭 사무차장(차관급)은 자녀 특혜 채용 의혹으로 면직됐다. 선관위는 두 사람을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하기로 한 상태다. 선관위가 자체 인사 감사를 한다고 해도, 이를 실행해야 할 장·차관급 책임자가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선관위는 “사무총장이나 사무차장이 공석이면 기획조정실장이 직무 대리를 하게 돼 있다”고 했다. 어떤 식으로든 직무 대리가 하면 된다는 것이다.
앞서 선관위는 지난 대선 당시 ‘소쿠리 투표 논란’을 부른 확진자 사전 투표 관리 부실 의혹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를 거부했다. 이때는 선거의 중립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있어 감사원도 감사를 추진하지 않았다.
그러나 감사원은 이번 자녀 특혜 채용 논란은 직무 감찰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감사원법 24조 3항에 직무 감찰을 받지 않는 기관으로 국회·법원·헌재만 명시됐다는 것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자녀 특혜 채용은 선거의 중립성과도 전혀 관련이 없다”며 “선관위가 이 사안까지 직무 감찰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날 선관위 특혜 채용 관련 전수 조사를 선관위와 합동 조사를 하지 않고 단독으로 하기로 했다. 정승윤 권익위 부위원장은 이날 “소극적·방어적 행태로 일관한 선관위에 많은 국민이 실망했고, 선관위가 함께 참여하는 합동 조사로는 국민적 신뢰를 얻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고 했다. 전날 임기를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전현희 권익위원장이 내부 조율 없이 갑자기 기자회견을 열고 “합동 조사”를 언급했지만, 이를 뒤집고 단독 조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권익위는 부패방지권익위법 12조, 청탁금지법 12조, 이해충돌방지법 17조 등을 근거로 선관위 특혜 채용 전수 조사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수사기관처럼 강제 조사 권한이 없기 때문에, 선관위가 주는 자료를 가지고 조사해야 한다. 권익위 관계자는 “선관위가 자료를 주지 않으면, 조사할 방법이 없긴 하다”면서도 “선관위가 일부 자료를 권익위에 제출하고 있어, 앞으로도 협조해 줄 것이라 본다”고 했다. 권익위는 조사 결과 비리 혐의가 짙은 이들은 검경에 수사를 의뢰할 예정이다.
애초 합동 조사를 예상했던 선관위는 권익위가 단독 조사 방침을 이날 발표하자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선관위 관계자는 “합동 조사를 협의하던 중 갑자기 단독 조사 방침을 발표해 당황스럽다”며 “어떻게 할지 논의해 봐야 한다”고 했다.
여당은 선관위의 자녀 특혜 채용 비리에 대해 국회 국정조사를 예고한 상태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선관위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를 통해 특혜 채용과 승진, 북한 해킹에 대한 안보 불감증이 발생한 근본적 이유를 밝히고 제도적 허점을 보완할 필요가 분명해 보인다”고 했다. 노태악 선관위원장도 전날 국회 국정조사를 받겠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