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31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백선엽 장군이 전사자 명부를 보고 있다./조선일보DB

“이제 우리는 물러설 곳이 없다. 내가 앞장서겠다. 내가 두려움에 밀려 후퇴하면 너희가 나를 쏘라”

고(故)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 6·25 전쟁 당시 최후의 방어선이던 낙동강에서 다부동 전투를 앞두고 부하들에게 했던 말이다. 이 전투에서 결국 그는 국군 8000명을 이끌고 북한군 2만명 공세를 막아냈고, 한반도는 적화(赤化)를 면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백 장군을 상대로 문재인 정부가 찍어놓은 ‘친일반민족행위자’ 낙인에 대해, 현 정부가 삭제를 추진한다.

현재 국가보훈부와 국립현충원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백 장군을 조회하면 비고란에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2009년)’이라고 표시된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백선엽 장군 서거 3주기 추모식’이 열린 5일 조선닷컴과의 통화에서 “현재 국가보훈처와 국립현충원 홈페이지에는 백 장군 정보란에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문구가 명시되어 있다”며 “해당 조처 당시부터 법적 근거 등에 관한 논란이 있어온 문제였던 만큼, 보훈부 차원에서 해당 문구를 삭제하기 위해 관련 법령 검토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6·25전쟁 당시 백선엽 1사단장이 참모들과 작전을 협의하고 있다. /백선엽 장군 제공

박 장관은 홈페이지에 해당 내용을 기재하는 것이 법적으로 타당한지 따져 삭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백 장군 외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명시된 다른 11명의 현충원 안장 장성에 대해서도 문구 삭제를 검토하고 있다.

박민식 장관은 “이념과 진영에 따라 선대의 업적을 축소하거나 왜곡한다면, 우리에겐 기념할 그 어떤 역사도 남지 않는다”고 했다.

국립묘지 안장자 위치정보 검색 시스템. /국가보훈처 홈페이지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3월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는 이른바 ‘친일 장성’들의 안장 현황에 관련 정보를 넣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서울현충원과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장성 11명의 비고란에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문구가 명시됐다. 대전현충원은 2020년 7월 백 장군 안장식 다음날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2009년)’이라는 정보를 올렸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노무현 정부 시절 만들어졌다.

처음 표기를 넣을 당시에도 국방부와 보훈처의 조치가 자의적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됐었다. 논쟁적인 사안이라 법 개정도 되지 않았는데 국방부‧보훈처가 공식 홈페이지에 근거도 없이 백 장군을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명시하고 낙인 찍었다는 것이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공군호텔에서 열린 백선엽장군기념재단 창립대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국가보훈부 제공

백 장군은 6‧25 전쟁 영웅이자 창군(創軍) 원로다. 그는 1950년 8월 6·25 최대 격전지였던 경북 칠곡 낙동강지구 다부동 전투에서 병력 8000명으로 북한군 2만명의 총공격을 막아내 전쟁의 판도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낙동강 최후 방어선이었던 다부동 전투의 승리 덕분에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미국은 백 장군을 ‘한미 동맹의 상징’으로 예우했다. 전쟁 후기에는 육군참모총장으로 국군을 이끌었다.

그는 2020년 7월 10일 10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백 장군은 일제 강점기 만주군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다는 이유로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올랐다. 그러나 백 장군은 생전 “중공 팔로군과 싸웠고 독립군은 구경도 못 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