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대통령을 존경하는 제 마음에 비하면 작은 돈입니다. 하지만 평범한 할머니로 사는 형편에선 큰돈입니다. 함께 기증하는 사진도 이 대통령의 기념관을 빛내기를 바랍니다.”
전북 부안 출신의 신단여(75)씨는 지난 13일 ‘(재)이승만대통령 기념재단’ 후원 계좌에 500만원을 쾌척했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 모금 소식을 조선일보를 통해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면서 “천국에 계신 아버지가 이런 날을 손꼽아 기다리셨을 것이다. 딸인 제가 아버지를 대신해 동참할 수 있어 가슴이 벅차다”고 했다.
신씨의 부친 고(故) 신영상(1910~1985)씨는 전주북중(현 전주고) 재학 때 독립운동을 하다가 퇴학당하고 서대문형무소에 1년간 투옥됐다. 광복 후엔 애국청년회 활동을 활발히 했다. 이 때문에 6·25 전쟁 초기엔 호남을 장악한 북한 인민군으로부터 우익 인사로 분류돼 사형될 뻔하는 고초도 겪었다. 그가 맞서 싸웠던 일제와 공산주의는 이 대통령이 평생에 걸쳐 투쟁했던 대상이기도 하다. 신씨는 “아버지가 ‘이승만 대통령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오늘은 없었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며 “이 대통령의 가르침이 우리 집안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제가 딸이어도 원없이 공부할 기회를 누렸던 것도 남녀평등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던 이 대통령의 말씀 덕분”이라고 했다.
신씨는 특별한 사진 한 장도 재단에 기증했다. 애국청년회 회원이었던 신씨의 부친이 1946년 6월 5일 전북 전주를 방문한 이 대통령 부부와 함께 찍은 단체사진이다. 사진을 살펴본 김정민 박사(연세대 이승만연구원)는 “처음 공개된 데다 역사적 맥락도 남달라 학술 사료로서 가치가 뛰어나다”고 평했다.
사진은 이 대통령이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 가능성을 처음 언급한 ‘정읍 발언(6월 3일)’ 직후 전북 전주를 찾았을 때 촬영됐는데 당시 호남 지역 애국청년회원들이 정장과 한복 등을 차려입고 큰북과 트럼펫·튜바 등 여러 악기를 동원해 이 대통령의 방문을 뜨겁게 환영했던 분위기가 읽힌다. 신씨는 “가보처럼 소중하게 보관해왔던 사진이 드디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아 기쁘다”면서 “저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이 대통령 기념관 건립에 더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