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적 국정 쇄신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입장 천명 등을 요구하며 시작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단식이 20일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당 원로들은 물론 의료진조차 단식 중단과 입원을 권유했지만, 시작 명분이 명확하지 않으니 단식을 중단할 명분을 찾기도 힘든 상황이다. 그러자 야당은 갑자기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고 여당은 “막장 투쟁”이라고 맞대응했다. 제1 야당 대표의 단식이 우리 정치의 극단적 대립만 더 악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은 이 대표의 단식이 한계 상황에 다다랐다고 판단하고 있다. 단식 18일째를 맞은 17일 오후 의료진은 “당장 입원시켜야 한다”고 진단했고, 강제 병원 이송을 위해 구급차까지 동원했다. 하지만 이 대표가 완강히 거부해 무산됐다. 이 대표는 최후의 순간까지 단식을 풀지 않겠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지도부와 의원단은 이날 밤늦게까지 이 대표의 상태를 살피며 설득을 이어갔다. 당 지도부 의원은 “언제든 쇼크가 올 수 있어 위험한데 이 대표의 의지가 확고하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토요일인 전날 국회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전체 의원들의 결의로 단식 중단을 요청하기도 했다. 또 윤석열 정권의 전면적 국정 쇄신과 내각 총사퇴를 촉구하며 국무총리 해임 건의안 즉시 제출, 고(故)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한 특검법 절차 돌입, 정권의 부당한 정치 수사에 대한 검사 탄핵 절차 추진, 정권의 실정과 폭압에 맞선 국민 항쟁에 나서기로 결의했다. 이날 5시간 동안 진행된 의총에서는 “의원직 총사퇴를 하자” “인사 청문회를 보이콧하자” 등의 강경 주장이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요구 사항도 백화점식 나열로 점점 늘어나고 투쟁 강도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에 대해 “막장 투쟁의 피해자는 결국 국민”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표는 3~4일 전부터는 아침 10시가 넘도록 기상하지 못하고, 대화를 이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쇠약해졌다고 한다. 물을 조금씩 마시는 것도 힘들어해 의료진 진찰도 수시로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의원들의 만류에도 이 대표는 단식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은 분명히 밝히고 있어 강제 조치는 못 하는 상황이다. 이 대표와 가까운 지도부 인사는 “이 대표가 이제는 ‘자기와의 싸움’에 들어간 것 같다”며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강제로 중단해야 하는 시점이 언제일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민주당 내부적으로도 이 대표가 애초 출구 없는 단식에 들어가 퇴로를 찾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가 단식에 들어가며 제시한 조건들(대통령 사죄, 일본 핵 오염수 방류 반대 입장 표명, 전면적 국정 쇄신 등)은 여권이 수용하기 어려운 사안이고, 자신의 체포동의안 처리 문제와 연결되면서 정치적 오해를 살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단식 시작 시점에는 당내에서도 일부 회의론이 나왔지만, 단식이 장기화하면서 야당 내부에선 딴소리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한 중진 의원은 “과거에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등이 단식할 때는 우리 당 지도부가 찾아가서 사적인 대화도 하고 요구 사항을 일부 수용하는 등 퇴로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했었다”며 “지금 정부·여당은 지도부까지 나서서 이 대표 단식을 조롱하고 희화화하니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한 지도부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전화하거나, 김기현 대표가 찾아오는 등 명분을 만들어줄 선택지는 분명히 있지만 별로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주당 최고위원들은 이날 성명에서 “군사정권도 야당 대표가 단식을 하면 존중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을 갖췄다”며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도 없는 인면수심의 윤석열 정권에 분노한다”고 밝혔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전날 페이스북에 재차 이 대표의 단식 중단을 요청하며 “건강을 회복하시는 대로 즉시 여야 대표 회담을 열고 민생에 대해 치열한 논의를 하자”고 했다. 하지만 직접 이 대표를 찾아가거나 적극적인 단식 만류에 나선다는 계획은 당장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핵심부는 강경 분위기가 우세한 상황이다. 국민의힘 핵심 당직 의원은 “당내 견해를 수시로 듣고 있는데 절대다수 의견이 ‘명분 없는 단식’에 보조 맞춰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라며 “야당이 국무총리 해임 건의 등 계속 터무니없는 주장을 이어가는 마당에 당대표가 단식장을 찾아가거나 하면 거꾸로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도부 인사도 “김기현 대표도 인간적으로는 이 대표가 단식을 빨리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이전의 정치인 단식과 성격과 내용, 과정이 너무 판이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덕수 총리도 내각 총사퇴 요구에 대해 “오로지 국민 잘 살게 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고 일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총리실 간부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여야 모두 해법 마련에 대한 의지가 약한 상황이라 출구 전략을 찾기는 더 어려워 보인다. 일각에선 오는 19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리는 ‘9·19 평양 공동선언’ 5주년 행사 참석차 상경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이 대표를 직접 만나 단식 중단을 설득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문 전 대통령 측과 이에 대한 어떤 대화가 오가고 있진 않다”며 “윤석열 정권과 싸우는 중인데 문 전 대통령이 말린다고 어떤 명분이 되겠나”라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정부·여당이 퇴로를 만들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문 전 대통령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멀지 않은 시점에 강제로라도 이 대표의 단식은 중단되겠지만, 단식 전후의 상황은 크게 바뀔 것 같지 않다”며 “명분이 약한 단식 투쟁, 무책임한 정부·여당의 악순환으로 정치 혐오만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