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를 위협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저의 ‘무지’라고 생각했습니다.” IT기업에서 일하는 한상도(33)씨는 스스로를 바꾸기 위해 정치 공부에 뛰어들었다. 더 이상 ‘느낌 가는 대로’ 투표하지 않고, ‘정치 어젠다를 잘 파악하고 제대로’ 투표하기 위해서다. 그는 “그동안 청년임에도 불구하고 정치를 너무나 오래 방치했던 점이 부끄럽고, 지금부터라도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 정치학교에 입학했다”며, 정치를 ‘인간이 비로소 인간으로 완성되는 길’이라고 표현했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노경민(33)씨는 아직 결혼 전인데다 연애도 하고 있지 않지만, 미래에 있을 ‘가족’을 건강하게 이끌고 싶다. 그는 가족이 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공동체이자 조그마한 국가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만나 그들만의 ‘언어’를 주고받고, 일주일에 한 번씩만 외식하자는 ‘법’을 만들기도 하고, 자녀가 학교에서 싸움을 했을 때는 상대 부모와 협상하는 ‘외교’도 필요하다. 이 모든 걸 아우르는 정치를 배우고 싶었고, 그래서 노씨는 정치학교에 입학했다. “좋은 아빠, 좋은 남편 수업 등은 인성 차원의 조언에 머무는 것 같아 정치를 배우기로 했어요. 아파트 동대표 정도까지는 진출하고 싶어요.(웃음)”
대학생 유준상(20)씨는 산재해 있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고 싶어서 정치인을 꿈꾸고 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다면 스스로 못 견디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살률, 저출산, 교육문제 등 그의 머릿속은 항상 직접 경험한, 혹은 주변의 부조리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하다. 이러한 열정을 증명하듯 준상씨는 정치학교 교실의 맨 앞자리에 앉아 질문공세를 펼쳤다.
이들을 만난 것은 지난 10월 4일 저녁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아카데미홀에서 열린 한국의희망 정치학교 ‘서울 콜로키움 1기’의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다. 한국의희망 창당을 주도한 양향자 대표는 오리엔테이션에서 “2027년에는 서울 콜로키움이 국가지도자를 배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금태섭 새로운선택 창당준비위원회 대표는 “모든 정당이 청년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정치를 하겠다는 청년들을 함께 성장시키지는 못했다. 나 또한 이 같은 교육기관을 만들고 싶었다. 부럽고 많이 배우겠다. 한국의희망과 여러모로 계속 협력해나가겠다”며 새로운 시작을 축하했다. 오리엔테이션이라는 표현이 무색하게도 이날 행사는 입학생들의 대한민국 SWOT(강점, 약점, 기회, 위기) 분석 발표로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서울콜로키움 입학생들이 정치를 배워 적용하고 싶은 범위는 나 스스로부터 가족, 주변 공동체, 그리고 한국 사회에까지 각양각색이었다. 그 가운데 공통점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었으며, 변화를 점점 확장해나가겠다는 가능성이었다. 한국의희망은 지난 9월 서류전형과 면접심사를 거쳐 35명의 서울콜로키움 1기 입학생을 받았다. 연령, 성별, 지역, 학력, 경력 등 제한은 없었지만, 유일한 지원 자격은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기를 희망하는 사람’이었다.
정치학교 제도는 정치인재 육성 혹은 시민 정치교육을 목표로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정치학교로는 바른정당의 산하기관에서 시작해 사단법인으로 자리 잡아 7년간 지속되고 있는 ‘청년정치학교’가 꼽힌다. 정당 소속이 아니기에 강사풀이 넓으며 정치인 양성보다는 시민 정치교육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거대양당의 경우 ‘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청년당원이나 신참 정치인들을 상대로 일회성 강연을 연다. 보통 전·현직 국회의원이나 장관 등 스타 정치인들이 경험담을 푸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김성식 전 의원이 초당적 선출직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표로 청년정치학교 ‘반전’을 설립하고, 정치 스타트업 ‘뉴웨이즈’가 정치 학습 플랫폼인 ‘뉴웨이즈 메이트’를 만드는 등 그 주체가 다양해지기도 했다.
“지금 한국의 정치인들은 대부분 권력 그 자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사적 동기가 아닌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봉사와 희생이라는 덕목을 실천할 수 있는 정치철학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서울콜로키움은 철학을 갖춘 좋은 정치인이 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다만 답을 제시하는 방식이 아닌 스스로 터득하도록 질문하고 토론하는 방식이다.” 한국의희망 정치학교 교장을 맡은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서울 콜로키움만의 차별점으로 ‘철학과 토론’을 강조했다. 서울콜로키움의 교육과정은 기초입문, 중급, 고급·특별, 고급 워크숍 총 4가지로 나뉜다. 최 교장은 기초입문 과정에서 ‘기초 민주제도의 이해’ ‘소통의 기초’ ‘설득능력’ 등 건강한 시민의 롤모델과 실천 방법을 배우게 된다고 설명했다. 다음 단계에서는 좋은 정치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두 가지 정책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응용동작들을 배우게 된다.
단순 배움 아닌 토론이 핵심
이 같은 진심을 알아본 듯 수강생들은 하나같이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서울 콜로키움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상도씨는 “올해 청년정치학교를 다니다 자퇴했다. 좋은 학교였으나 경험, 실무 위주의 교육이었고 나는 정치를 보다 학문적으로 접근하고 싶었다. 학문적인 이해가 모든 지적작업의 기초라고 생각해 서울 콜로키움에 지원했다”고 밝혔다. 청년정치학교 7기 졸업생인 준상씨 또한 깊이 있는 리더십 교육을 받고 싶어 서울콜로키움 수업에 참여했다. “청년정치학교에서 다양한 지식이나 노하우 습득 등 보편적이고 광범위한 내용을 배울 수 있었다면 서울콜로키움의 커리큘럼은 굉장히 깊게 들어간다는 인상이었다”고 말했다.
콜로키움(colloquium)은 ‘특정 주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발표나 토론을 통해 해당 주제를 공동으로 연구하는 모임 방식’을 뜻한다. 이러한 정치학교의 이름 그대로, 수업 방식은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을 띠고 있었다. 지난 10월 7일 토요일 6시간 동안 진행된 첫 수업부터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질문해 인지적 역량을 기르고, ‘정치 리더십과 기업가·부모·관료 리더십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 토론했다. 최 교장은 답을 제시하는 것을 최대한으로 미루고, 나만의 답을 찾도록 도와주는 모습이었다. 학생들의 열의도 대단했다. 쉬는시간, 점심시간에도 응용법을 질문하는 학생들이 최 교장과 양 의원 뒤로 줄을 이었다.
입학생들이 가장 기대하는 수업도 다름 아닌 ‘토론’이었다. 국회에서 비서관 일을 하는 강예은(가명·24)씨는 “국회공무원으로서 철학을 가지고 올바른 사회를 만들어나가고 싶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토론을 통해 논리력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앞서의 경민씨, 상도씨, 준상씨 또한 “동기들과 치열한 지적 토론을 통해 동반상승하는 경험을 가장 원한다”고 했다.
정치학교에서 강조하는 철학과 토론이 한국 정치에는 없다고 비판하는 입학생도 많았다. 노경민씨는 “한국 정치의 문제점은 명확한 국가관이 확립되지 않았고, 따라서 반성도 없다는 점”이라며 “어떤 국가가 될것인지 그 방향을 건설적으로 토론하고 이를 국민에게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예은씨는 “이념도 정당도 철학도 없이 특정 인물에게만 충성하는 정치인들의 행태”를 가장 변화해야 할 부분으로 꼬집었다.
“정치인들의 전문성이 가장 떨어진다”
이 같은 정치학교 제도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던 인물들이 정치에 입문하는 데 도움이 된다. 대학에서 역사교육과를 전공한 윤훈탁(24)씨는 한때 교사를 꿈꿨다. 그러나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정책을 고민하던 중 대변인을 맡게 되면서 지금은 국회에서 비서관 일을 하고 있다. 부동산 등 한국 사회의 문제 대부분이 결국 교육으로 귀결된다는 생각에 교육을 바꾸는 것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그는 비서관 일을 하며 처음 접하는 정치에 스스로 부족함과 어려움을 느꼈고 기본을 배우기 위해 서울 콜로키움에 입학했다. “국회보좌진, 입법공무원, 별정직공무원 등등 소위 말해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정치학교를 추천하고 싶어요.” 전성흥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인들이 전문성이 가장 떨어진다. 국회의원, 대통령, 장관이 처음 되더라도 누구에게도 배우지 못한다. 일하면서 배우고, 시행착오를 겪는 방식인데 국민들은 그동안 비전문가가 정책을 구사하도록 맡기게 된다. 정치인이 되기 전에 어느 정도 민주주의와 정치의 기능 등 기초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국가에서 정치학교를 시민교육기관의 일환으로 활용하고 있다. 정치학교의 종류가 다양할수록 정치 생태계가 풍부해지고 시민이 성숙해지기 때문이다. 최연혁 교장은 “스웨덴에서는 청년정치클럽, 평생교육, 시민학교 등 다양한 주체가 다양한 방식으로 민주주의 교육을 하고 있다”며 시민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회 보좌진 교육 강의를 열고 청년정치학교의 경제 강의 강사로도 참여했던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초·중·고급 레벨별, 스킬·역사 등 내용별, 하급·상급 보좌진 등급별로 정치학교를 유형화하는 등 교육 생태계가 풍부할수록 정치 유입 경로도 다양해진다”고 설명했다.
“정치교육 필요하나 필수 단계는 아냐”
그러나 정치학교 졸업이 정치인의 필요조건이 될 필요는 없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최병천 소장은 ‘정치는 몸으로 익혀야 하는 분야’라고 강조했다. “정치는 자전거 타기에 비유할 수 있다. 자전거 타기를 책으로 배운 사람은 없다. 머리로 배워야 하는 부분이 3이라면 몸으로 익혀야 하는 부분이 7이다. 정치학교는 정치인으로서의 동기유발, 커뮤니티 형성에는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결국 각 정당에 연계된 청년, 대학생 위원회에 소속되어 직접 토론도 해보고 선거도 뛰면서 배워야 한다. 정치학교의 강사도 실제 정치 경험이 있어야만 한다”고 밝혔다. 청년정치학교에서 선거 분석 강의를 한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또한 “일본은 마쓰시타정경숙이라는 정치학교가 있는데, 중의원, 참의원 등 주요 정치인 대부분이 이곳 출신이다. 이는 문호를 오히려 막는 케이스다. 정치학교가 정치인이 되는 데에 필수적인 엘리트 코스로 자리 잡을 필요는 없다”며 정치교육이 다양화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필수적인 단계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