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 전 법제처장이 12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 전 처장은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밑에 직언하는 참모들이나 정치인이 있어야 한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직면한 어려움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곁에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이태경 기자

이석연(69) 전 법제처장은 노무현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법을 비롯한 법률 30여 건에 대한 위헌 결정을 이끌어냈고, 이명박 정부에선 법제처장을 지냈다. 당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법령이 아니라 장관 고시(告示)로 진행하는 것이 위헌 소지가 있다고 주장하는 등 ‘정부 내 야당’ 노릇을 했다. 이 전 처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밑에 직언(直言)하는 참모들이나 정치인이 있어야 한다”며 “윤 대통령이 직면한 어려움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곁에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헌법상 국회 동의 없이 시행할 수 있는 법률이나 큰 정책은 없다”며 “야당이 국정을 발목 잡는다고 말하기 전에, 대통령이 야당을 설득하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했느냐”고 물었다.

- 윤석열 정부에 대한 민심은 어떤가.

“국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대통령 취임 몇 달 만에 중도층은 물론 보수층 일부까지 지지를 거뒀다. 지금 대통령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강성 보수층과 고령자들이다. 지방선거도 대선 직후여서 국민들이 ‘기왕 윤석열을 당선시켰으니까 일할 수 있게 도와주자’고 해 이긴 것이지, 작년 10월 정도에 치러졌다면 패했을 것이다.”

- 왜 이렇게 됐다고 보나.

“대통령이 핵심 지지층에만 주안점을 두고 국정을 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을 때 민심의 흐름을 읽고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갔어야 하는데, 오히려 ‘지지층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태도가 강화됐다.”

- 구체적인 오류를 지적해 달라.

“가장 중요한 것은 인사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자기 지지층만 보고 인사를 독선적으로 해서 국민들이 엄청나게 비판했었다. 그런 점이 싫어서 정권을 교체시켰는데, 윤 대통령이 비슷해지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극단적인 사람들을 기용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은 유튜버로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국정에 참여하면 국민들이 돌아선다. 그런데 이에 대한 비판이 있으면 윤석열 정부에서는 ‘전 정권 때문’이라는 말부터 한다. ”

- 어떻게 바꿔야 하나.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포용과 타협을 통해 국민을 이끌어가는 능력이다. 추진력은 그다음이고, 지적 능력은 그보다도 다음이다. 윤 대통령이 ‘강단 있게 밀어붙인다’는 점을 내세우는데, 밀어붙이기만 하는 것은 추진력이 아니다. 추진력은 국민적 동의, 국회의 동의에서 나오는 것이다. ”

-국민에게 대통령 이미지가 어떤가.

“대통령은 생각하는 대로 말씀하시고 행동에 옮기는, ‘무서운 순결성’을 가진 것으로 비친다. 국민들이 볼 때는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도 있다. 그래서 아무리 대통령이 약자와의 동행을 강조해도 무서움이 앞서는 것 같다. 대통령이 이걸 알아야 한다. "

- 지금 국회는 야당이 다수다.

“헌법상 국회 과반수의 의결 없이 시행할 수 있는 법률이나 큰 정책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170석 가까운 의석을 갖고 있다. 윤 대통령이 헌법상 권한을 행사해서 대통령 역할을 수행하고 있듯이, 야당도 헌법상 권한을 행사해서 국회를 통해 정부 정책에 반대나 찬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현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 대통령의 야당 설득이 부족하다는 뜻인가.

“대통령이 임기 1년 반이 지나도록 국회 다수당인 야당 대표를 안 만났다는 것은 우리 정치사에 없었던 일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여러 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고 해서 안 만나고 있는데, 이 대표의 죄는 법원이 판단할 것이다. 자연인 이재명을 만나라는 게 아니다. 국회 제1당 대표 이재명을 만나라는 것이다. 그걸 이 대표가 어떻게 이용하건 관계없다. 야당 대표를 만나서 이야기하고 야당과 협치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 민주당의 입법 독주가 도를 넘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월 1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윤석열 대통령의 부친 고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윤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민주당이 ‘의회 독재’를 한 것은 사실이고, 그것은 민주당 책임이다. 하지만 그런 야당을 포용할 수 있는 것은 대통령뿐이다. 대통령이 야당을 설득하려고 노력했는데도 야당이 의석수로 밀어붙이면, 국민들이 다 평가한다. 그때는 야당을 지지했던 국민들까지 ‘반대만 하는 저 사람들을 선거에서 다 떨어뜨리겠다’고 나올 수 있다.”

- 협치를 위해 포퓰리즘 정책까지 수용하라는 건가.

“협치는 포퓰리즘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다. 포퓰리즘은 국민을 상대적 박탈감에 빠뜨리고 편을 갈라서 표를 얻는 것이다. 그런 요구는 무시해도 된다. 다만 헌법이 정한 다수결 절차를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 여당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여당은 대통령 의중만 보고, 누구 하나 대통령에 대해서 이야기를 못 했다. 여당 대표가 정말로 소신껏 했다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공천 안 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여당이 야당과 이런저런 것들을 적당히 주고받으면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총선 공천과 관련해서도 대통령이 지금처럼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여당 대표는 장식품에 불과하게 된다. 그러면 총선은 완패하고, 윤 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정말 어려운 국면으로 갈 것이다.”

- 여당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대통령 의중만 살피는 사람들로는 여당에서 비대위를 만들건 말건 의미가 없다. ‘제2의 이준석’을 찾아야 한다. 이준석을 다시 데려오라는 게 아니라, 대통령에게 자기가 나름대로 바른 소리라고 생각하는 말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면서도 궁극적으로 대통령과 끝까지 같이 갈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자기 주장대로 당을 밀고 갈 수 있어야 한다.”

- 그런 사람을 어디서 찾나.

“여당과 정부가 ‘쓸 사람이 없다’며 인물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국민들의 역량을 무시하는 것이다. 자기들 주변에서만 사람을 찾으니까 좋은 사람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일종의 ‘패거리 의식’에 빠져 있으면 절대 좋은 인물을 찾을 수 없다. ”

- 여당이 내년 총선에서 이기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총선에서 이기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첫째가 공천을 잘하는 것, 둘째가 혁신하는 것, 셋째가 연대하는 것이다. 혁신은 대통령에게 직언을 할 사람을 찾고 젊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연대는 국민의힘이 버린 자식처럼 내버려 둔 사람들을 다시 끌어들여서 같이 가는 것이다. 당내에서도 연대하지 못하면서 외부 세력과 연대가 가능하겠는가. 배신자를 왜 받아들이냐고? 배신도 기준 나름이다. 그런 사람들을 과감히 공천하고 자기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

- 당원들이 그런 연대를 바라지 않으면 어떡하나.

“선거는 당원들끼리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하는 것이다.”

-민주당에 하고 싶은 말은 없나.

“자신들만이 정의를 독점하고 구현할 수 있다는 천박한 영웅주의에 빠진 운동권 세력들이 있다. 민주당이 제대로 나가려면 그 사람들의 득세를 막아야 한다. “

☞이석연

1954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전북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와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1989년 갓 문을 연 헌법재판소에서 1호 헌법연구관으로 일했다. 국내 시민운동 1세대로 참여연대 운영위원, 경제정의실천연대 사무총장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의 법제처장을 지냈고, 문재인 정부 때에는 ‘임대차 3법’과 9·19 군사 합의 등 주요 정책의 위헌성을 지적했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는 자유한국당 공천관리위원회 부위원장, 위원장 권한대행을 맡아 ‘영남권 물갈이’를 추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