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4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발언 중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photo 뉴시스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호남의 뒤숭숭한 민심은 지난 3월 4일 오후 광주광역시 서구의 더불어민주당 광주광역시당 사무실 내에서부터 엿보였다. 민주당 중앙당에선 직전 주에 광주 전체 선거구 8곳 중 5곳의 후보를 확정했는데, 그 후로 시당 사무실에는 당비 납부 약정을 해지해달라는 지역 당원들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고 한다.

지난 3월 5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토크콘서트에서 발언 중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photo 뉴시스
지난 3월 4일 광주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광주 출마를 선언하는 이낙연 전 대표. photo 뉴시스

시당에 “당비 납부 약정 해지” 요구 빗발

해당 경선 결과에 따르면, 친명계로 분류되는 광산을의 민형배 의원을 제외하면 여타 4개 선거구 현역 의원들은 모두 컷오프(공천배제)됐다. 당에선 “시스템에 따른 적법한 공천”이라는 입장이지만, 당원들 사이에선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우세한 분위기였다. 민주당 광주광역시당 한 관계자는 “내가 지지하던 후보가 경선에서 떨어졌으니 당비를 더 이상 내지 않겠다는 건데 그 연락의 빈도가 다른 업무를 못할 정도”라고 말했다. 당비 납부를 거부함으로써 사실상 탈당 의사를 밝히는 셈인데, 최근 탈당 추이는 명확히 집계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현재까지 민주당 광주 경선에서 컷오프된 현역 의원은 윤영덕(동구남구갑)·이병훈(동남을)·조오섭(북구갑)·이형석(북구을) 등 4명이다. 광주를 비롯한 호남은 민주당 텃밭인 만큼 매 선거를 앞두고 이와 같은 현역 ‘물갈이’가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다만 앞서 당원들의 이례적인 반발에는 이번 경선 결과가 통상적인 수준의 물갈이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들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광주 지역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정치공학적으로 보면 어느 당이든 선거 때면 권력을 지닌 당대표 측근들이 다수 공천을 받기 마련이다. 유권자들도 자기 지역에 힘 있는 관계인이 내려오길 바라는 것과 맞물리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이번에는 그 수준이 도를 넘었다는 데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듯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당의 불분명한 공천과정, 기준 등은 지역 안팎의 반감을 더 키우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광주 지역 경선에서 컷오프된 민주당 현역 의원들은 “경선 과정에서 불법 부정행위가 벌어졌다” 등의 의혹을 제기하며 공천 재심 및 경선 결과 무효화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이들은 아직 탈당 의사를 밝히진 않았으나 향후 당 재심위원회 판단 등에 따라 대거 거취를 옮길 가능성도 있다. 이번 광주 경선에서 컷오프된 이병훈 민주당 의원은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앞서 실시된 적합도 조사랑 실제 경선 결과의 차이가 크고, 공관위 등에서 흘러나오는 내용을 들어보면 의구심 들게 하는 지점이 많다”며 “산술적으로 계산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수치들”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컷오프 의원실 관계자는 “경선 결과 자체가 석연치 않은데 당장 이를 증명할 물증을 잡아내기가 어려우니 우리를 지지하는 당원들이 상대 후보 측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시당 사무실에 광주 지역 민주당 권리당원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친 것도 결국 이런 맥락에서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

광주는 민주당 권리당원이 밀집한 텃밭이다. 친명계 중심의 공천으로 이른바 ‘비명횡사’ ‘친명횡재’ ‘사천’ 등의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광주에서까지 당원들의 집단반발이 감지된다는 건 오는 총선서 민주당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것과 다름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3월 5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토크콘서트에서 발언 중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맨 왼쪽). 지난해 12월 4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발언 중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가운데). 지난 3월 4일 광주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광주 출마를 선언하는 이낙연 전 대표. photo 뉴시스

광주의 이 같은 분위기는 최근 지지율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다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최근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다 지난 2월 3주 차부터 국민의힘에 역전당하기 시작해 격차 또한 조금씩 커지고 있다. 여기에는 호남 지지율의 낙폭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국갤럽이 지난 2월 27~29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의 전국 지지율은 전주 대비 2%포인트 하락한 33%, 국민의힘은 3%포인트 오른 40%를 기록했다. 여기서 호남 지지율은 무려 14%포인트나 하락한 53%를 기록했다. 특히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답한 호남 무당층은 전주보다 10%포인트 오른 26%를 기록했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은 이번 총선에서 16년 만에 광주 선거구 8곳에 모두 후보를 냈는데, 민주당을 향한 호남의 이 같은 지지세가 그 배경으로 작용했을 여지가 크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들 말에 따르면, 광주를 비롯한 호남 지역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리스크다. 선거 당락과는 별개로 국민의힘 후보 출마만으로 ‘국민의힘 사람’이란 인식이 씌워져 지역에서 개인사업 등을 영위하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은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총선에서 전 선거구에 걸쳐 다양한 경력의 후보자들이 자발적으로 출마했다는 건, 앞서와 같은 지역 민심을 고려했을 때 어느 정도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광주광역시의회에서 유일한 국민의힘 소속인 김용임 의원은 “요즘 총선 유세를 지원할 때 보면 확실히 바닥민심이 달라졌음이 느껴진다”며 “명함을 우선적으로 요구하는 분들도 생겨날 정도”라고 말했다. 그만큼 민주당을 향한 광주 민심이 기존과는 다르다는 이야기다. 지난 3월 4일 광주 시내 곳곳에서 국민의힘 현수막이 민주당만큼 늘어난 점 또한 이런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의외의 ‘이낙연 비토’ 정서

앞으로 관건은 앞서 지지율 조사에서도 집계된 30%에 육박하는 호남 무당층이 총선에서 실제 어디로 향할 것이냐다. 이를 두고 지역 정치권 관계자들과 시민들은 여러 분석을 내놓는데, 공통적으로 거론되는 것은 이낙연 전 대표를 향한 ‘비토’ 정서다. 이 전 대표는 광주제일고등학교 출신에 전남도지사를 세 번 역임하는 등 이른바 ‘호남 적자’라 할 만하다. 이로 인해 그를 향한 지역 내 정치적 기대감은 컸지만 오히려 지금에 이르러선 그만큼 실망감이 앞선다는 것이 지역 내 주된 분위기다. 지난 3월 4일 오후 이 전 대표는 광주 지역 총선 출마를 선언했지만, 광주 표심의 바로미터로 평가되는 광주 양동시장에서 TV를 통해 관련 뉴스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마냥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시민들 사이에선 이 전 대표와 관련해 “지난 대선 당시 이재명 대표를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다” “당대표를 사법리스크에 휘말리게만 했다” “경선 이후 무책임하게 해외로 도망갔다” “당에서 버텨서 현 지도부를 이어받았어야 했다” 등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왔다. 양동시장의 한 화장품가게 사장은 이 전 대표에 대한 의견을 묻자 “어디 가서 이낙연 전 대표 이야기 잘못 꺼내면 몰매 맞는다”며 “이 전 대표가 민주당을 아예 해코지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지역 정치권에선 이런 비판엔 나름 이유가 있다고 본다. 광주를 비롯한 호남 여론에서 제일 두드러진 건 지금의 정부·여당을 견제할 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민주당이 당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비롯한 각종 내홍으로 이를 충실히 해내지 못하고 있는데 이 같은 상황에 이르게 된 데는 지난 대선 경선을 함께 뛴 이낙연 전 대표의 책임이 크다는 인식이 작용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렇다고 이낙연 전 대표가 이끄는 새로운미래가 당장 정부·여당 견제 역할을 대신 할 것이란 확신을 지역에 심어주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새로운미래는 지난 2월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과 합당 및 분당 과정을 거치면서 정치적 스탠스가 모호해졌다는 지적부터 받았다. 앞서의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광주송정역 뒤편 영광통사거리에는 이 전 대표와 동향인 전남 영광 출신 주민들이 많이 거주하는데 여기선 오히려 기대감보다는 실망감을 표하는 의견이 많다”며 “그래서 일부러 이 전 대표가 이곳을 포함한 지역구에는 출마하지 않을 거란 말도 나온다”고 말했다.

이러한 지역 민심은 이 전 대표가 이끄는 새로운미래 지지율로 여실히 드러난다. 새로운미래 지지율은 다수 여론조사에서 1~2% 수준에 머물고 있다. 향후 민주당 탈당 인사들이 새로운미래에 합류한다 해도 지지율 반등은 쉽지 않을 것이란 게 지역 정가의 주된 평가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낙연 전 대표의 새로운미래는 그저 3지대 정당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며 “이것만으론 호남이 굳이 이 전 대표의 정당을 지지할 이유가 없다”고 분석했다. 이 전 대표는 3월 10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결의대회를 연 뒤 출마 지역구를 확정지을 예정이다. 향후 호남 공략 본격화로 호남 여론을 다소 우호적으로 바꿔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 3월 4일 광주광역시 시내에 민주당 광주광역시당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photo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조국혁신당 호남 지지율 30% 육박

눈여겨볼 점은 이런 상황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이끄는 조국혁신당의 약진이다. 다수의 비례대표 위성정당 지지율 조사에 따르면, 조국혁신당은 창당과 동시에 지지율 10%대를 기록하며 3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3월 3~4일 실시한 엠브레인퍼블릭 조사에서도 조국혁신당 지지율은 15%로 국민의미래(30%), 민주당 주도 비례연합정당(21%)에 뒤이은 3위를 기록했다. 특히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조국혁신당에 대한 호남 지지율만 30%에 육박하고 있다. 지난 3월 5일 발표된 미디어토마토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호남의 민주당 주도 비례연합정당 지지율은 34.9%, 조국혁신당 27.6%로 조사됐다. 국민의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는 11.1%였다.

전체적인 지지율 양상을 고려하면 조국혁신당이 기존 민주당 지지층을 흡수하고 있다. 결국 민주당과 새로운미래가 갖고 있지 못한 ‘선명한 여당·정부 견제 노선’이 호남 유권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국혁신당은 지난 3월 3일 중앙당 창당대회 당시 ‘검찰독재정권 조기종식’ 등을 목표로 내세운 바 있다. 총선에서 야권이 힘을 낼 수 있는 ‘정권심판론’을 가장 잘 투영했다는 평가가 많다.

조국혁신당 지지자들은 창당과 동시에 이른바 ‘조국과 함께하는 사람들’(조함사)이란 이름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을 개설해 자원봉사 참여, 후원금 모금 등도 독려하고 있는데, 여기서 이뤄지는 당 정체성 논의를 보면 조국혁신당이 두각을 보이는 이유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한 지지자는 이 방에서 여타 지지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조국혁신당은 윤석열 검찰 독재 조기 종식을 바라는 사람들을 타깃으로 만들어진 당으로 이해한다. 어중간한 중도세력이 아닌 눈치 안 보는 대(對)윤석열 진보 혁신당이다. 모든 연령층과 성향의 사람들에게 다 어필하고자 하면 당의 정체성은 흐려진다.”

조 전 장관 개인을 향한 평가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사법리스크에 휘말린 이재명 대표 못지않게 조 전 장관 또한 자녀 입시비리 등으로 2심에서 실형을 받는 등 사법리스크를 떠안고 있지만, 호남 유권자들에게 ‘반감’보다는 ‘측은지심’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 많다. 실제 “불쌍하다” “안타깝다” “어떻게 자식까지 그렇게 죽일 수가 있나” “자식 키우다 보면 다 그럴 수 있지 않겠나” 등 조 전 장관을 동정하며 호의적으로 얘기하는 광주 지역 유권자들을 찾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양동시장의 한 약재가게 사장은 “요즘 정치 봐라.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있나. 더군다나 본인 문제도 아니지 않나”라며 “현 정부에서 인맥이 없으니 이렇게 내몰린 거다”라는 언급도 했다.

지역 정치권 일각에선 이런 지지율 추이와 민심을 고려했을 때 실제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절충안으로 지역구 투표에선 민주당 후보를, 비례정당 투표에선 조국혁신당을 찍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래도 조국은 안철수가 될 수 없다”

다만 조국혁신당이 과거 2016년 20대 총선 당시 호남에 불어닥친 ‘국민의당 안풍’(安風·안철수 바람)에 버금가는 위력을 보일 거란 데에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많다. 조국 전 장관이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표처럼 대선주자급으로 불릴 만큼 체급이 오르지 않았거니와 당 또한 총선까지 그만한 힘을 갖출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앞서의 민주당 광주광역시당 관계자는 “만약 조국혁신당이 작년에 좀 더 일찍 출범한 뒤 지역 본부를 두고 지역구 후보까지 냈더라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분명한 건 지금의 광주를 비롯한 호남의 민주당 민심이 기존처럼 ‘미워도 다시 한번’ 식은 아니란 이야기다. 당원 및 유권자층 분포 등을 고려했을 때 호남 표심은 수도권의 진보층 지지율로도 직결된다. 결국 어떤 양상으로든 호남 유권자들이 이번 총선에서 ‘당대표가 당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당의 주인은 당원’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민주당에 경종을 울리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광주 지역의 한 민주당 현역 의원은 “민주당을 향한 지역 유권자와 당원들의 실망감이 지속해서 높아져가고 있다”며 “민심이란 건 지속해서 달라지는데 그것이 총선에서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는 끝까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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