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photo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10 총선 이후 원내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완화하겠다고 공약했다. 현행법상 현역의원 20명이 있어야 교섭단체로 신청이 가능한데, 이를 현역의원 10명으로 기준을 하향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기존보다 절반 줄어든 현역의원들로도 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해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소수 군소정당들은 ‘소수정당의 의사 개진을 막고 있다’는 점을 문제삼아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개정하려는 시도를 해왔었다. 2004년 당시 17대 국회에서 민주노동당 비례였던 노회찬 진보정의당 대표는 ‘현행 20석인 교섭단체 요건을 5석 이하 또는 선거 득표율 5%로 내리자’고 주장했지만 실패한 바 있다. 이런 소수의견이 국회 문턱을 넘기는 어려웠고, 거대 양당의 동의를 얻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번에 제1야당 대표인 이재명 대표가 이런 시도를 예고한 건 표면적으로 다당제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되지만 또 다른 정치적 포석이 깔린 것 아니냐는 시선도 강하다.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심판 성격이 강한 이번 총선 이후 야권의 기세를 더 키우겠다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특히 거대 양당과 비슷하거나 더 많은 비례의원을 배출할 수도 있는 조국혁신당과의 연대로 민주당의 몸집을 최대화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국회 원내 교섭단체 요건이 주목받는 것은 교섭단체가 되면 여러 가지 혜택이 따르기 때문이다. 일단 현역의원 20명을 모아 교섭단체가 되면, 국회 일정과 주요 협의 안건에 대한 결정 과정에 직접적인 참여가 가능해진다. 비교섭단체는 교섭단체의 결정을 따르기만 해야 하기 때문에 국회 내에서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에서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野 교섭단체 많아지면 여권 포위전략 가능”

특히 교섭단체는 국회 윤리심사징계요구, 의사일정변경, 국무위원 출석요구, 의안 수정동의, 긴급현안질문, 상임위 및 특별위원회 의원 선임 등 주도적 의정활동이 가능하다. 또 전체 국고보조금의 50%를 교섭단체가 나눠 가진 뒤, 나머지 절반은 의석수와 최근 총선에서의 정당득표율에 따라 각 정당에 배분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정당 운영 측면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교섭단체들은 정책입법을 위한 정책연구원과 수십억원 단위의 입법지원비도 국가로부터 받는 등 엄청난 재정적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원내에 교섭단체가 많아진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볼 때 야권의 기능을 강화한다는 의미와 같다. 주요 현안을 결정할 때 교섭단체 간 협의 사항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 ‘일(一) 대 다(多)’의 협의 구도가 가능해진다. 야권 교섭단체들끼리의 연대는 정부·여당을 압박하는 카드로 활용될 수도 있다.

야권이 합당해 하나로 덩치를 키우는 것보다 각자 교섭단체로서 연대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견해도 있다. 야권 성향의 교섭단체 숫자 자체가 많아야 의사결정 과정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국회 관계자는 “군소정당이 교섭권을 얻게 되면 주도권을 쥐게 되니까 여권을 포위하는 전략이 가능해진다”면서 “교섭단체 지위를 얻게 되면 사무처로부터 받는 지원이 있어서 조직의 영속성을 갖기 수월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재명 대표의 교섭단체 기준 완화 공약 발표는 일단 조국혁신당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범야권 연대를 형성해 정부·여당을 압박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 임기 내 치러지는 마지막 선거로 정부 심판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결과에 따라 윤 대통령의 레임덕이 시작될 수도 있는 기점이다. 민주당으로선 이번 총선 이후 확실히 정부·여당의 기세를 꺾고 차기 대선을 준비하는 제1정당의 입지를 구축해야 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에 가장 적합한 러닝메이트는 조국혁신당일 수밖에 없다. 민주당에 뿌리를 두고 있는 조국혁신당은 현재 제3지대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각종 여론조사에서 호남 민심을 사로잡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이들이 제3세력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현재 정당지지율 30% 이상 수준을 보이고 있는 조국혁신당은 15석 안팎의 비례의원 의석을 확보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더불어민주연합보다 더 많은 비례의원 배출 가능성을 보이고 있고, 국민의미래를 앞지른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오고 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낮춰서 조국혁신당을 교섭단체로 만들고 나면 국민의힘을 빼고 협상을 할 수 있는 게 많을 것”이라면서 “교섭단체 협의 안건이 있을 때 3당 중 하나를 빼고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시나리오에는 조국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어떻게 전개될지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조국 대표는 감찰 무마와 입학업무 방해 등의 혐의로 2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대법원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다. 이와 관련 조국 대표는 대법 판결에서 실형이 확정되면 “감옥을 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윤 정부 심판론에 누구보다 강성인 조국 대표가 최종 실형을 받고 의원직마저 상실할 경우 조국혁신당이 지금의 기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여야 진영에서 교섭단체가 2 대 2 구도처럼 대등하게 구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국민의미래도 10석 이상의 비례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만약 조국혁신당의 돌풍이 이어져 더불어민주연합이 비례의석 10석 확보에 실패한다면, 국회 내 여야 2 대 2 구도가 형성된다.

오는 22대 국회 역시 현재로선 여소야대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원내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변경하기 위한 국회법 개정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국회법 개정안은 국회 운영위원회 소관으로, 여야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법안 처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국회법 개정을 놓고 운영위 등 통과가 쉽지 않을 거다. 특히나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법안들은 여야 충돌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면서 “다만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연대를 기준을 봤을 때 180석 이상의 압도적 승리가 이뤄진다면 원내교섭단체 구성 기준 관련 법안 개정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야권 180석 이상 돼야 관련법 개정 가능

실제 이번 총선에서 압도적 차이로 야권이 승리할 경우 국회법 개정 가능성은 높아진다. 전체 300석 중 3분의2에 해당하는 180석 정도 의석을 야권이 차기하게 된다면 법 개정 절차에서 잡음은 나오겠지만 큰 어려움이 불거지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현재 민주당의 당선 가능 지역으로 분류되는 곳은 110석 이상이다. 비례의원은 10명 이상으로 점쳐지고, 여야의 격전지역은 50군데 정도로 전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의 경우 15명 안팎의 비례의원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많은데, 확실해 보이는 야권 의석수만 더해도 140석에 근접한다. 여기에 여야 격전지로 분류되고 있는 50곳이 민주당에 다 넘어가면 야권은 충분히 180석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결국 야권의 ‘여당 포위전략’이 먹히느냐 마느냐도 격전지 50곳이 향배에 달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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