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15일 오전 1시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잠이 들었다가 2시 30분쯤 지인이 걸어 온 전화에 깼다고 한다. 이때부터 윤 대통령은 오전 10시 33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체포 영장이 집행될 때까지 눈을 붙이지 않았다. 이날 새벽 공수처의 체포 영장 집행 작전이 사실상 예고된 터라 새벽 3시부터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비서진과 변호인단, 경호처 간부들이 대통령 관저에 집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새벽잠에서 깬 윤 대통령은 관저로 찾아온 참모들을 관저 1층에서 직접 맞았다. 한 참모는 “윤 대통령은 담담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날이 밝아오자 참모들에게 “아침 식사도 못 하지 않았느냐”며 관저 냉장고에 있던 재료로 30명분 햄에그 샌드위치를 직접 만들어 대접했다고 한다. 관저 2층에 머물던 김건희 여사도 1층으로 내려와 잠시 변호인단 이야기를 들었다. 김 여사는 비상계엄 이후 충격이 커서 주로 누워 지낸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김 여사는 근심 어린 표정이었다”고 했다.
오전 7시 34분, 경찰과 공수처 관계자들이 사다리로 차 벽을 넘어 관저 구역 내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체포팀이 경호처 관계자들과 별다른 충돌 없이 1·2차 저지선을 거쳐 3차 저지선인 관저 초소 앞까지 접근했다는 소식이 윤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그러자 윤 대통령은 “경호처도 최선을 다했다”며 “(공수처 관계자들을) 관저로 들어오라고 하라”고 했다. 이에 관저 출입 초소에서 윤 대통령 변호인과 공수처 측은 윤 대통령 이동 방식과 관련한 협의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이 공수처 호송차가 아닌 경호처 차량으로 이동하되 공수처 검사가 같이 타는 것으로 조율됐다.
이 시각 관저 안에선 윤상현·권영진 등 국민의힘 의원 약 15명과 원외 당협위원장 약 15명이 모여 윤 대통령을 만났다. 이날 새벽 한남동 관저 앞 윤 대통령 지지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이 상태로 계속 간다면 경찰들도 청년이고, 경호처 직원들도 청년인데 유혈 사태가 일어날 수 있으니 그건 막아야 하지 않겠나”라며 “여기(관저)에 있으나 저기(공수처)에 있으나 마음대로 못 돌아다니는 건 매한가지인데 들어가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대통령까지 했기 때문에 (정치적인) 목표가 없다. 하지만 이 상태로는 더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다만 “내가 불법에 무릎 꿇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또 윤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받아보는 많은 정보를 토대로 판단한 바로는 (한국 상황이) 여러분이 생각한 것보다 더 큰 위기라는 것”이라며 “요즘 레거시 미디어(전통적 신문·방송)는 너무 편향돼 있기 때문에 유튜브에서 잘 정리된 정보를 보라”는 말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최근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상승하는 것을 언급하면서 “정권 재창출도 가능할 것 같다. 여러분이 노력해 달라”라고 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지금 나라가 이렇게 무너져 가고 있는데 당은 뭐 하고 있느냐” “우리 의원들이 저쪽(민주당)에 비하면 아주 모범생” “국민의힘이 전투적인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도 했다고 한다. 한 의원은 “대통령이 향후 정치 일정을 염두에 두고 국민의힘에 투쟁력을 키워달라는 당부를 남기고 싶어 한 것 같았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경기 과천에 있는 공수처 청사로 향하기 전 대통령실 직원 스마트폰으로 2분 48초 분량의 대국민 영상 메시지를 촬영했다. 영상 속 윤 대통령은 넥타이를 매지 않은 남색 정장 차림이었다. 현장에 있었던 한 인사는 “윤 대통령이 애써 웃음을 지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공수처로 향하기 직전 “강아지를 한번 봐야지”라면서 관저 2층으로 향했다. 2층에는 김 여사가 있었다. 여권 관계자는 “김 여사 얼굴을 보러 간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윤 대통령은 관저를 나서면서 도열한 인사들과 일일이 악수하면서 “괜찮다” “고맙다” “미안하다”고 인사했다. 윤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수행실장을 지냈던 이용 전 의원은 뒤편에 서서 울었고, 또 다른 원외 당협위원장은 윤 대통령에게 엎드려 절했다.
오전 10시 33분, 관저 현관을 나서는 윤 대통령 앞에서 공수처 검사 2명이 체포 영장을 읽었다. 윤 대통령은 “알았다. 가자”라고 짧게 답했다. 윤 대통령은 경호처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방탄 차량 뒷좌석에 경호관들과 함께 탔다. 공수처 검사는 조수석에 앉았다. 윤 대통령을 태운 차량이 공수처 청사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0시 52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