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밤 속개된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정부의 내란ㆍ외환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수정안이 상정된 뒤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의원이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검찰이 19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을 내달 초 내란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할 것이 확실시되면서 ‘특별검사 무용론’이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당장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난 17일 국회를 통과한 내란 특검법안을 공포하고 특검 임명 절차를 밟는다고 해도 특검 준비 기간을 감안하면 검찰의 기소 전 특검이 출범하기는 사실상 쉽지 않다. 검찰·공수처의 구속 수사 기한은 최장 20일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이미 재판 중인 윤 대통령 등 관련자들에 대해 특검이 가동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현행법상 동일 사건·인물에 대한 이중 기소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내란 특검’이 정작 내란 혐의 기소도 하지 못한 채 막대한 세금만 쓰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픽=정인성

특검은 기존 수사기관의 수사가 미진하거나 공정성·객관성이 의심되는 경우에 보충적·예외적으로 도입된다. 다만 비상계엄 같은 국가적 중대 사건이 벌어지면 특검의 빠른 수사로 국정 혼란을 안정시킬 필요도 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9일 발의한 내란 특검법안은 특검 후보 추천권 야당 독점 등을 둘러싼 논란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와 국회 재표결 끝에 지난 8일 부결·폐기됐다. 이에 민주당은 지난 9일 내란 혐의에다가 외환(外患) 혐의와 내란 선전·선동 혐의를 수사 대상에 추가한 두 번째 내란·외환 특검법안을 발의했다. 이번에도 국민의힘이 강하게 반발하자, 민주당은 수사 대상을 일부 줄였지만 별건 수사 길을 열어둔 수정안을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이 특검을 ‘진상 규명’ 수단이 아닌, 조기 대선을 위한 정략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욕심이 앞서다 보니 잇따라 여당에 거부할 수 있는 빌미를 준 셈”이라고 했다.

이처럼 내란 특검 도입 문제가 한 달 넘게 공전하는 사이, 검찰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박안수 육군 참모총장을 비롯한 군 장성 등 비상계엄 관련 중요 인사 대부분을 이미 구속 기소했다. 공수처도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검찰·경찰 등에서 넘겨받아 지난 15일 체포한 데 이어 19일 새벽 구속했다. 법조계 인사는 “형사소송법상 구속 만료 기한까지 기소하지 않으면 윤 대통령은 석방돼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게 된다”며 “공수처와 검찰이 윤 대통령의 관련 혐의가 상당 부분 소명이 이뤄졌다고 판단하고 내달 초 기소할 공산이 크다”고 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9일 국회에서 열린 당 긴급 비상대책위원 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권 원내대표는 “사법부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이재명 대표에게 면죄부를 줬다”고 했다. /연합뉴스

최 대행이 특검법안을 공포해 특검이 내달 본격 수사에 나선다고 해도 검찰이 기소한 재판을 넘겨받아 공소 유지에 치중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조계 인사는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 군 장성들의 주요 내란 혐의는 검찰과 공수처가 수사를 마무리 지을 공산이 커 특검이 도입되더라도 발굴해낼 굵직한 추가 혐의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더구나 최 대행이 야당이 국민의힘 반대에도 일방 처리한 특검법안에 대해 재의(再議)를 요구할 경우 특검 출범은 더 늦어질 수도 있어 ‘예산 먹는 특검’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특검법 초안을 기준으로 특검에 소요될 예산을 111억9100만원으로 추계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국회에서 열린 당 비상의원총회 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이 대표는 “서부지법 난동 사태는 사법부 체계를 파괴하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했다. /뉴스1

민주당이 이번에 처리한 내란 특검법의 수사 기간은 100일이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에선 “민주당이 검찰과 공수처, 경찰이 수사한 내용을 재탕·삼탕하며 석 달 이상 현 여권을 겨냥한 공세를 벌이려는 정략 특검”이라고 의심한다. 국회를 통과한 특검법안에 수시로 수사에 관해 언론에 브리핑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 그대로 담긴 것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조기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둔 독소 조항이라는 것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탄핵심판 이후 조기 대선이 열릴 경우 특검 브리핑으로 수사 상황이 실시간 중계되면 선거판이 요동칠 수 있다”며 “이는 결국 특검이 민주당의 선거 캠프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라고 헀다.

노종면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특검 무용론에 대해 “(국민의힘이) 특검이 부담스러워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낸 논리”라며 “(기존에) 수사가 많이 이뤄졌다고 하지만 이번 사건 규모로 봤을 때 충분한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