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의하는 與 향해 “품격 지켜달라”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오전 국회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하던 중 내용에 항의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해 “품격을 지켜달라”고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AI(인공지능)와 첨단 기술에 의한 생산성 향상은 노동시간 단축으로 이어져야 한다”며 “주 4.5일제를 거쳐 주 4일 근무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보편적 기본사회를 위해선 ‘회복과 성장’이 전제돼야 한다”며 “‘기본사회를 위한 회복과 성장 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사실상의 ‘조기 대선 출정 선언’이었던 45분간의 연설에서 이 대표는 ‘성장’을 28차례 강조하면서도 복지와 분배까지 이루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종전에 내걸었던 ‘먹사니즘’(먹고사는 문제 우선주의)에서 나아가 ‘잘사니즘’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는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위해 어떤 정책도 수용하겠다. 진보 정책이든 보수 정책이든 유용한 처방이라면 총동원하자”고 했다.

이 대표는 중도층과 전통적 지지층에 모두 손을 내밀었지만, 정치권에선 ‘정책에 일관성 없이 그때그때 말이 바뀐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본소득 공약 재검토를 시사하고 52시간 근무 예외 조항을 명시한 반도체특별법 제정에 대한 긍정적 입장을 밝히는 등 ‘우클릭’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날 연설로 18일 만에 다시 예전 기조로 원위치했다.

◇52시간, 주 4일제, 정년 연장

이 대표가 이날 연설에서 ‘주 4일 근무 국가’를 언급하자 우재준 국민의힘 의원은 “진심이 뭡니까”라고 소리쳤다.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 가능성을 시사했던 이 대표가 말을 뒤집었다는 취지다. 그러자 이 대표는 “(노동시간) 유연화를 하더라도 총 노동 시간을 늘리자는 이야기를 누가 하나”라며 “첨단 기술 분야에서 장시간 노동과 노동 착취로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은 형용 모순”이라고 답했다. 반도체 업계 근무 유연화가 필요하다면 반도체특별법에 주 52시간 예외를 명시하는 방식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의 특별연장근로 등 기존 제도를 활용하자는 취지다.

주 4일제는 이 대표가 지난 대선 때도 공약했지만, 당시 문재인 정부도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우선”(홍남기 경제부총리)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표했었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임금이 그대로 유지되는 주 4일제는) 단도직입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주 4일제는 개별 기업이 결정할 문제지 국가 차원에서 일률적으로 해야 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했다. 정년 연장 문제 또한 문재인 정부뿐만 아니라 여러 정부에서 추진해왔지만 젊은 세대 반발로 번번이 좌초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민생 지원금 10조, 기본사회

재정과 관련해서 이 대표는 “재정 확대를 통한 경기 회복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며 “민생과 경제 회복을 위해 최소 30조원 규모의 추경을 제안한다”고 했다. 이 중 10조원은 그가 지난달 말 “포기하겠다”고 밝혔던 민생 회복 지원금이다. 다만 이 대표가 이날 밝힌 방안은 국민 1인당 일정 금액을 나눠주는 방식보다는 소상공인 손실 보상(2조원) 등 선별적으로 지원하거나 지자체의 지역 화폐 발행을 지원(2조원)하는 방식이다. 나머지 20조원은 공공주택과 SOC 투자 확대, 고교무상교육 국비 지원, 기후 위기 대응 예산 등이다. 정부는 20조원 규모의 추경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돈 교수는 “이미 학계에서는 민생 지원금이 경기 부양 효과가 크지 않다고 결론 났다”고 했다.

또 이 대표는 본인의 대표 공약인 ‘기본사회’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는 “초과학기술 신문명이 불러올 사회적 위기를 보편적 기본사회로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당력을 총동원해 ‘기본사회를 위한 회복과 성장 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도 했다. 지난달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지금은 나누는 문제보다 만들어가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며 기본사회 철회를 시사했었다.

◇국민소환제

이 대표는 “민주당이 주권자의 충직한 도구로 거듭나 꺼지지 않는 ‘빛의 혁명’을 완수하겠다”며 “그 첫 조치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국민소환제는 국회의원을 비롯한 선출직 공직자를 국민 투표를 통해 임기 만료 전에 파면할 수 있는 제도다. “헌정 파괴 세력에 맞서 헌정 수호 연대를 구성하고, 함께 싸우자”고도 했다. 광장의 에너지를 원내로 흡수하겠다는 의도다.

이에 대해 차진아 고려대 교수는 “지금처럼 양측의 진영 논리가 심하고, 갈등이 심한 상태에선 상대 진영 의원에 대해 365일 내내 국민소환제를 하며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재명의 기본사회

이재명 대표의 핵심 정책 브랜드로 ‘모든 사람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는 사회’를 뜻한다. 모든 국민에게 ‘기본 소득’과 ‘기본 주택’이 보장되도록 하고, ‘기본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