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일 “국민의힘은 초부자 감세에 아직도 미련을 갖고 있나”라며 “근로소득세가 억울하게 늘어난 것부터 정상화하자”고 했다.

이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이같이 밝히며 상속세·근로소득세 등 세제 개편안과 관련해 국민의힘에 공개 토론을 제안했다. 최근 이 대표는 상속세 공제 금액을 현재 10억원에서 18억원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수도권 ‘한강벨트’ 유권자를 대상으로 ‘집 한 채 상속 부담’ 완화에 초점을 둔 것이다.

◇철저히 중산층에 포커싱

이 대표의 최근 전략은 세금 이슈에 민감한 ‘여당 성향의 중도표’ 공략에 맞춰져 있다. 서울 한강 벨트의 부동산 민심을 겨냥해 상속세를 완화하고, 월급쟁이 중산층을 겨냥해 근로소득세를 개편하자고 주장한 게 대표적이다. 연일 ‘중도·보수 정당론’을 설파해 당 이미지도 바꾸는 중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근 중도층 공략을 위해 애쓰고 있다. 사진은 이 대표가 지난 20일 충남 아산시 현대자동차 공장을 방문해 아이오닉9 차량 앞에서 이동석 현대차 사장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뉴시스

여당이 최근 윤석열 대통령을 지키자며 광장의 여론에 올라타자 민주당은 기존 보수 유권자 중 ‘취약한 고리’를 공략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들이 판단하기에 보수층에서 이탈이 가장 쉬운 계층은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에 실망해 민주당 지지를 거둔 유권자들이다. 지역적으로는 주로 서울 한강 벨트에 몰려 있다. 이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0.73%포인트로 질 때 서울에서 윤석열 대통령보다 31만여 표 적게 받은 게 승패를 갈랐다.

최근 민주당은 배우자 공제 한도 등을 적용해 18억원까지 상속세를 내지 않게 세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지난 대선은 부동산 때문에 졌다”며 “세금 문제로 떠난 이들은 우리가 다시 잡아야 한다”고 했다. 근로소득세 개편을 꺼낸 것도 비슷한 이유다. 당내에서는 상속세나 근로소득세 개편으로 영향을 받는 계층이 주로 수도권 중산층이라고 판단한다.

그래픽=김성규

이 대표는 이날 강성 지지층에게 자제를 당부하는 메시지도 냈다. 그는 페이스북에 “모멸감을 주는 방식으로 상대를 공격하거나 의사 표현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비난하면 논쟁이 어려워진다”고 했다. 이른바 개딸로 불리는 강성 지지층이 중도층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역시 중도 확장 전략의 일환이다.

◇노동시간 등 핵심 지지층 정책은 그대로

다만 민주당은 반도체 산업 연구직 주 52시간 규제 면제, 노란봉투법 등 노조의 이익과 관련된 정책은 기존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 ‘주 52시간제 예외’를 두는 방안을 수용하는 듯했다가, 노동계 반발에 반대하는 방향으로 돌아서기도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모순적인 건 분명하지만, 노동시간을 늘린다고 하면 유권자들이 또 싫어하지 않느냐”며 “여당의 정책 역량이 상실된 상황에서, 민주당이 ‘민생을 챙기고 있다’는 인식을 주는 것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상속세 완화를 주장했지만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대책으로 상속세와 보유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의 ‘2025 불평등 보고서’를 발간했다. 연구원은 “보유세 강화에 대한 조세 저항을 완화하는 측면에서 기본소득형 토지세 등의 정책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기본소득형 토지세는 지난 대선 때 이 대표가 기본소득 재원 마련을 위한 목적세로 거론했던 ‘국토보유세’와 유사한 개념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런 이 대표의 전략을 두고 “보수 정책 ‘체리피킹(유리한 것만 챙김)’”이라는 말이 나왔다. 구조개혁 등 인기 없는 보수 정책은 멀리하고 특정 계층 감세 등 표에 도움 되는 정책 몇 가지만 강조하면서 “민주당은 중도·보수 정당”이라고 주장한다는 얘기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좌회전할 거면 1차로에서, 우회전할 거면 가로변 차로에서, 깜빡이 정확히 켜고 방어 운전하면서 진입하라”며 “1차로에서 우측 깜빡이를 켜고 있으면 국민들은 ‘대체 뭐에 취해서 핸들을 잡았나?’ 하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윤희숙 국민의힘 여의도연구원장은 “이 대표가 상대 당에 부자 감세 프레임 한번 씌워보겠다고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다”며 “이념 사기에 이어 이제는 정책 사기까지 친다. 인생 자체가 사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