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지난 1월 말 윤석열 대통령을 체포·구속해 인신 확보에 성공한 후, 더불어민주당이 공수처 검사의 정년을 보장하고 조직 규모를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것으로 23일 나타났다. 법안에는 공수처의 기소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사실상 공수처의 숙원을 모두 풀어주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전현희 의원은 지난 6일 공수처 검사의 연임 제한 규정을 삭제하고, 임기 정년을 만 63세까지 보장해주는 내용을 골자로 한 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공수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 공수처법은 공수처 검사의 임기를 3년으로 하되 3회 연임이 가능해 최장 12년까지 근무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그런데 이 조항을 없애고, 검찰청 검사처럼 공수처 검사도 만 63세까지 정년을 보장하는 대신 7년마다 검사 적격 심사를 받도록 바꾸겠다는 게 개정안의 취지다. 이렇게 되면 12·3 비상계엄 사건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 등 현 정부 인사들을 내란 혐의로 수사한 ‘공수처 수사 라인’이 앞으로 공수처에 그대로 남게 될 공산이 크다.
개정안에는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50명으로 두 배 확대하고, 수사관 정원도 40명에서 60명으로 증원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국가재정법에 따라 예산과 관련해 공수처를 국회나 대법원 등과 같이 독립기관으로 분류하는 내용도 들어갔다. 국회 관계자는 “공수처 검사 정년 보장과 정원 확대에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데 그 편성도 공수처가 주도적으로 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공수처의 수사·기소 범위를 일치시키겠다는 목적하에 공수처의 기소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도 개정안에 포함됐다. 현행 공수처법상 공수처는 대통령·장관·국회의원·장성급 장교 등 고위 공직자에 대해 수사는 할 수 있지만, 직접 기소할 수 있는 대상은 판사·검사·경무관 이상 경찰관으로만 제한돼 있다. 그러나 전 의원은 이런 규정을 삭제하고, 공수처가 수사한 대상을 모두 기소까지 할 수 있도록 공수처법을 바꾸겠다고 했다. 한 법조인은 “가뜩이나 수사 능력과 실적이 떨어지는 공수처가 고위 공직자 관련 사건을 입건만 해두고 편파적으로 처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개정안은 공수처가 그간 국회 안팎에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숙원 사업을 모두 담고 있다. 민주당 등 야당이 압도적 과반 의석(192석)을 확보한 상황이라, 여당이 반발해도 개정안 강행 처리가 가능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매년 200억원씩을 쓰고도 초라한 성적표를 거둔 공수처에 민주당이 선물을 안겨준 것”이라며 “공수처가 여러 논란에도 윤 대통령 수사를 강행한 것에 대한 대가인가”라고 했다. 공수처는 2021년 출범한 이래 작년까지 4년간 총 813억원의 예산을 배정받았지만, 그동안 공수처가 직접 기소한 사건은 4건뿐이다.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수사 초기에 윤 대통령 등에 대한 압수수색·통신·체포영장을 서울중앙지법에 16건, 서울동부지법에 1건 청구했다가 모두 기각당하자 그 뒤로는 서울서부지법에 영장을 청구해 발부받았다는 ‘영장 쇼핑’ 논란도 불거져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내란죄 수사 권한이 없는 공수처가 영장을 입맛대로 쇼핑하고 국민 앞에서 거짓말로 이 사실을 은폐했다”며 “사기 수사 수괴 오동운 공수처장은 즉각 사퇴하고 공수처는 즉각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박준태 의원은 지난 3일 공수처 폐지법을 발의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번 계엄 사태와 무관하게 22대 국회 임기가 시작하자마자 준비해왔으며, 작년 10월 다른 의원들에게 공동 발의를 요청해놓은 상태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