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

국내 정치·헌법학계 원로급 학자들이 ”12·3 비상계엄의 원인은 갈등 일변도의 정치에 있고, 이를 해결하려면 대통령·국회의 권한을 모두 분산하는 개헌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현행 헌법하에선 거대 야당이 국정을 마비시키고 대통령은 무리한 비상 대권을 행사하는 등의 정치 파행이 반복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한림대학교 도헌학술원이 1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한국 민주주의 구출하기’ 심포지엄에서 정치·헌법학자들은 이 같은 의견을 밝혔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비상계엄 사태를 부른 근본 원인은 과도하게 투쟁적인 “광장의 정치”에 있다고 했다. 진보 정부는 상대를 ‘친일파’로, 보수 정부는 ‘좌익 적폐’로 몰아 척결하려 했다는 것이다. 최 명예교수는 “유튜브 시대에 정치는 더욱 전투적으로 변모했다”며 “이는 과거 권위주의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협약을 통해 만든 ‘87년 체제’의 기반을 무너뜨렸다”고 말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과거엔 여소야대 상황이라도 야당이 자제했다면, 이제는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직접 도전한다”며 “윤석열 대통령도 일방적인 방식으로 국정을 이끌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들 간의 다툼이 정치체제의 안정성을 해치는 수준까지 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개헌을 통한 ‘권력 분산’이 제안됐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승자 독식의 정치 시스템이 가장 먼저 개혁돼야 한다”며 정부의 통치권을 대통령(외교·국방·통일 등)과 국무총리(나머지 내각)가 나눠가져야 한다고 했다. 또 양원제를 도입해 입법부의 권력도 분산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낙인 전 서울대학교 총장도 “대통령의 권한을 최소화하고, 일상적 행정권은 총리에게 부여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입법부를 견제하기 위해 대통령에 국회 해산권을 부여하고, 국정 마비를 초래하는 국회의 국정감사권은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송호근 도헌학술원장은 “국민들이 대통령을 뽑아 주권을 위임했는데, 대통령이 ‘감옥 담장 위’를 걷도록 하는 현행 제도를 고치치 않고는 이런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며 “낡고 녹슨 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