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에서 탄핵소추안이 기각되면서 직무에 복귀한 최재해 감사원장이 지난 3월 13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문재인 정부와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야권을 겨냥한 연이은 감사로 정치적 편향 논란에 휩싸였던 감사원이, 최근에는 국회 요구에 따라 윤석열 정권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최재해 감사원장은 지난 3월 13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를 기각함에 따라 복귀한 뒤 “국회 요구 감사를 우선적으로 처리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된 ‘정치 감사’ 논란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하지만 지난 3월 25일 감사원은 국회가 요청한 방송통신위원회 관련 감사에 대해 “감사원이 결론을 내리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히며, 야권 요구에 사실상 첫 제동을 걸었다. 이에 따라 중립성 논란에 시달려 온 감사원이 조기 대선을 앞두고 다시 주목받고 있다. 감사 방향을 둘러싼 판단이 또다시 정치적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정치 개입” VS “감사완박”

감사원의 정치 편향 논란은 2022년부터 불거졌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감사원이 문재인 정부 시절 통계청의 고용·부동산 통계 조작 의혹,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대응 실태 등 전임 정권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를 벌이는 데 대해 ‘정치 개입’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감사원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해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공무원 직무 감찰을 할 때 행정기관이 먼저 자체 감찰을 한 뒤에 감사원은 보충적인 2차 감찰을 하고 국회 요구가 있으면 감사 결과를 해당 상임위에 보고하라는 내용과 정치 중립 의무를 어기면 형사 처벌하는 규정이 담겼다.

이에 국민의힘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이은 ‘감사완박(감사원 권한 완전 박탈)’”이라며 민주당의 감사원법 개정안을 비판했다. 감사원은 2023년 1월 34쪽짜리 반박자료를 내고 민주당과 각을 세웠다. 감사원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감사원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묻는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대한 답변서에서 “감찰을 보충적으로만 하게 한 조항은 ‘헌법 위반’”이라며 강경하게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결국 감사원법 개정안은 21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지만, 22대 국회에서는 감사원에 대한 거야의 제재 시도가 더욱 본격화됐다. 감사원은 2024년

1월 ‘경기도 정기감사’ 결과 보고서를 발표하고 지역화폐와 남북교류협력사업 등 이 전 대표가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 추진했던 사업에 대해 문제를 지적했다. 이에 민주당은 2024년 5월 당선인 워크숍에서 22대 국회 운영 전략과 중점 추진 법안 등을 논의하면서 감사원법 개정안 처리를 재추진하기로 하고, 같은 해 7월 감사원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권 아래에서 감사원을 검찰과 유사한 성격의 ‘정치적 기관’으로 인식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국회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민주당은 감사원과 검찰의 특수활동비를 전액 삭감했다. “내역이 입증되지 않는다”는 명분이었지만, 감사원이 정권 편향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이어 지난해 12월 2일에는 관저 이전 의혹에 대한 부실 감사 논란 등이 불거지자 헌정 사상 처음으로 최재해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민주당은 “감사원이 야권 인사들만 선별적으로 표적 감사를 하는 반면, 여권 인사 비위에 눈을 감고 있다”고 주장했다. 감사원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최달영 감사원 사무총장은 같은 날 이례적으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일체의 정치적 고려 없이 공정하게 감사하고 있다”며 “통상 감사는 과거 3~5년간의 업무가 대상”이다.“새 정부 초기에는 전 정부가 한 일이 감사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감사원의 감사 대상과 시기의 선택이 편향적이라는 지적은 특히 선거 기간 강하게 제기됐다. 감사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둘러싼 ‘부정선거 의혹’을 만나면서 정치적 갈등은 폭발했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원내정책수석부대표(오른쪽)와 이성윤 의원이 지난해 12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서 최재해

‘부정선거론’ 둘러싸고 선관위와 충돌

시작은 감사원이 2022년 제20대 대선 국면에서 코로나 확진자 사전투표 관리 부실 의혹,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에 대해 중앙선관위 감사를 벌이면서다. 쟁점은 헌법상 독립기관인 선관위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권이 정당한가 여부였다. 그러나 감사원은 감사를 강행했고, 감사 착수 1년 만인 2023년 7월 “선관위 자체 감사로 충분해 추가적인 감사 필요성이 낮다”고 결론 내렸다. 이에 야권에서는 감사원 감사가 선관위 압박용이었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감사원과 중앙선관위 사이의 권한을 둘러싼 갈등은 헌법재판소로 이어졌다. 감사원이 2023년 5월 선관위 고위 간부 자녀의 특혜 채용 의혹에 대해 직무감찰을 결정하자, 중앙선관위는 그해 7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두 헌법기관 간의 권한쟁의심판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정국과 맞물리며 정쟁의 한복판에 서게 됐다. 지난

1월 15일 헌재에서 열린 권한쟁의심판 2차 변론 기일에서는 양측이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장했던 ‘부정선거론’을 두고 정면충돌했다.

중앙선관위 측 변호사는 윤석열 정부의 선관위 압박에 감사원이 활용됐다고 주장했다. “전 모 감사원장 시절 정책감사라는 게 갑자기 나타나서 그때부터 감사에 정치적 색깔이 입혀지기 시작했다. 이 사건 청구인(중앙선관위)에 대한 직무 감사의 시작이 정말 본래적인 감사의 목적으로 시작되었느냐. 청구인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윤 정부의 압박은 정권 초기 때부터 시작됐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이 감사원이다.”

이에 감사원 측 변호사는 윤 전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감사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한편, 12·3 계엄사태를 통해서도 중앙선관위의 방만 운영이 드러났다고 반격했다. “이 사건 감사는 언론보도에 중선관위에 대한 인사 비리가 매우 크게 보도돼 이뤄진 것이다. 12·3 계엄사태를 빗대 감사원이 윤석열 대통령의 부역자라는 취지로 주장하는데, 사실관계를 따져보면 군인들이 중선관위에 갔을 때 중요한 서버가 있는 공간에 방호원도 없이 단 5명의 당직자가 있었다. 중선관위가 얼마나 기관 운영을 방만하게 하고 있는지 예측할 수 있다.”

민주당 ‘줄감사’ 요구, 조기대선 변수 되나

헌법재판소는 결국 지난 2월 “감사원은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해 직무감찰을 할 수 없다”며 선관위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감사원의 ‘정치적 역할’을 둘러싼 정치권의 대립은 계속될 전망이다. 조기대선을 앞두고 국회가 민주당 주도로 감사요구안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부터 현재까지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감사원에 접수된 국회의 감사요구안은 12건, 요구안에 담긴 총 감사 요구는 45건이다. 이 가운데 절반인 6건의 감사요구안은 지난 1월 이후 의결됐다.

국회의 감사요구안은 대부분 윤석열 정부를 겨냥한 감사다. 이에 따라 최근 감사원은 윤석열 정부 시기의 대통령 관저 이전, 용산공원 예산 전용, 용산 어린이정원 조성 특혜 등 여권을 향한 국회 감사요구안에 대한 감사를 진행 중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한 ‘리버버스’의 타당성 여부, ‘그레이트 한강 사업’ 중 여의도 선착장 조성사업 사업자 선정의 불공정성에 대한 감사도 포함됐다. 여당 주요 인사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사안이 포함돼 있는 만큼, 감사 결과의 내용과 시점이 유권자 여론 지형에 직접적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 야당 시절 민주당이 우려했던 ‘감사원의 정치적 활용’을 그대로 반복하게 된 셈이다.

“독립성 보장 ‘국민적 합의’ 필요”

국회법 제127조에 따라 감사원은 국회 의결로 감사 요구를 받은 날부터 최장 5개월 안(3개월 내 감사 결과 보고, 2개월 연장 가능)에 감사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관련해 감사원 관계자는 “인력과 시간이 부족한 만큼, 기존 연간 감사계획을 조정해 법정 기한이 정해진 국회 요구 감사를 우선 처리할 계획”이라며 “(45건의 감사 요구가) 한꺼번에 접수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접수된 순서대로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해 감사원에 접수된 윤 정권에 대한 ‘줄감사’는 향후 감사원의 중립성 논란을 재점화할 우려가 있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미국의 경우 감사원(GAO)을 국회에 두고 엄격하게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우리는 헌법기관이긴 하지만, (감사원장) 임명권자가 대통령이다 보니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비판이 있다”며 “선관위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여러 견해가 있는데,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견제와 균형을 통해 공공성을 실현한다는 것은 민주공화국의 중요한 원리다. 문제는 자신에게 불리할 때 공격하고, 유리할 때는 적극 활용하는 이중성”이라며 “어떤 기관을 정치적으로 길들이고 사유화하려는 비일관된 태도, 당파적 태도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더욱이 지난 4월 10일 감사원이 ‘새만금 잼버리’ 감사 결과를 발표한 타이밍에도 ‘정치적 판단’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발표 시점이 지나치게 늦었기 때문이다. 2023년 여름에 열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행사와 관련된 감사는 같은해 9월에 시작돼 12월에 종료됐지만, 결과 보고서는 윤 대통령 탄핵 이후인 2025년 4월 10일에 발표됐다. 보고서는 여성가족부와 전북특별자치도, 조직위원회의 부실을 정조준했다.

그러나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 여부에 대해선 해석이 엇갈린다. 감사원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감독당국 관계자는 “감사원이 예전에는 정치색이 거의 없었는데, 최재형 전 원장 시절부터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며 “윤석열 정권 들어 특정 지역 출신들이 좌천성 인사를 당한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반면 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감사원이 최근 윤 정권 관련 감사에 집중하게 된 것은 정치적 판단 때문이 아니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감사요구안 상당수가 윤 정부 당시 사안이기 때문”이라며 “5개월 안에 감사 결과를 내야 하는 만큼 시기를 맞추려다 보니 밀려서 진행되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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