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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영국 런던에 사는, 쫌아는기자들 4호 이해인 런던특파원입니다. 오늘 소개할 기업은 영국 수제맥주 회사 브루독입니다. ‘미친’ 마케팅으로 MZ세대의 지지를 얻어 맥주만 팔아서 유니콘이 된 스타트업입니다.
*목차
-지루한 영국 맥주이라는 페인포인트
-미친 짓 같니? 기본은 맥주 ‘맛’
-고객 아닌 팬을 만들어라
-세계 최초의 탄소 네거티브 맥주 만든 사연
들어가기 전에 잠깐, 영국이 유럽에서 독일 다음으로 맥주 소비량이 많은 나라인 것 알고 계셨나요? 1인당 연간 맥주 소비량(70리터)이 술 좋아한다는 우리나라(39.4리터)에 비해 월등히 높은 걸 보면 대략 짐작이 가실 겁니다. 맥주통에 빠져 사는 나라죠. 그런데 말예요. 영국의 국민 맥주는 뭘까요? 한국은 카스, 하이트, 테라 뭐 이런 게 떠오르잖아요. 궁금해서 찾아봤습니다.
지난해 영국 내 맥주 판매 순위입니다. 칼링(캐나다), 포스터(호주), 칼스버그(덴마크) 쿠어스라이트(미국), 스텔라(벨기에), 페로니(이탈리아). 네, 전부 수입 맥주입니다. 맥주를 누구보다도 정말 사랑하는 청년 둘이 스타트업을 차린 이유가 이겁니다. “맥주를 이렇게 많이 먹는데, 왜 맛있는 영국 국민 맥주는 없어?”
스코틀랜드 토박이 마틴 디키와 제임스 와트는 2007년 ‘지루하고 맛없는 영국 맥주 시장에 충격을 주겠다”며 양조장을 차렸습니다. 당시 두 창업자 나이 스물 넷. 두 창업자들, 정말 괴짜짓을 많이 벌입니다. 탱크를 타고 런던 시내를 돌아다니지않나, 윌리엄 왕자 결혼식에 맞춰 비아그라 성분이 들어간 맥주를 만들어 내놓기도 하고요. 러시아 푸틴을 조롱하는 맥주를 만들어 크렘린궁에 보내기도 합니다. 55도짜리 맥주를 만들었다가 영국 양조 협회가 들고 일어서자 보란 듯이 0.5도짜리 맥주를 내놓는 기행을 벌이기도 했지요. 이상한 짓을 벌일수록 영국 젊은이들이 열광했습니다. 브루독은 영국을 넘어 유럽 수제 맥주 시장을 제패하고 이제는 미국 시장까지 진출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요. 이태원에도 매장이 있어요.
지난 달엔 느닷없이 우리나라 강남구 면적에 맞먹는 규모의 땅을 사들였다고 발표했습니다. 이곳에 수백만그루의 나무를 심을 예정이라는데요. 이 회사,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세상에 없던 맥주회사를 만들고 있는 브루독 마틴 디키(38) 공동 창업자를 인터뷰했습니다.
◇맥주를 대하는 새 시각 2題 ... 지루한 영국 맥주의 혁신
많은 사업 아이템 중에 왜 맥주를 택했나요.
영국 맥주가 너무너무 지루하고 재미없었거든요. 저와 제임스가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을 때, 선택지가 많지 않았어요. 스텔라, 테넌츠 같은 대형 맥주회사들의 라거, 소규모 양조장의 맥주 두어 개가 전부였죠. 미국 시에라 네바다산 페일에일을 마시게 됐는데 정말 신세계였어요. 시원하면서 강하게 느껴지는 과일향. 영국에선 한번도 못 먹어본 맛이었죠. 그때 들었죠.
“왜 영국 맥주는 다 하나같이 똑같고, 재미가 없을까' 그리고 이어진 생각. “그러면 우리만의 맥주를 만들자” 이렇게 이어졌어요.
그때 저는 양조회사에서 일하고 있었고, 제임스는 대학(에딘버러대 법학과) 졸업 후 어부로 일하고 있었는데요. 제임스가 고기 잡고 돌아오면 같이 맥주를 만들었어요. 우연히 우리가 만든 맥주를 세계적인 맥주 평론가 마이클 잭슨에게 선보일 기회가 있었죠. 그 분이 맥주를 마시고 한 말이 이거예요.
“너희 둘, 지금 뭐하고 있냐. 당장 회사랑 어부를 때려치고 사업에 뛰어들어라. 잘 팔릴 맥주다.”
둘이 모은 돈 2만8000파운드(약 4300만원)에 은행에서 빌린 돈 2만 파운드(약 3100만원)로 시작했어요. 양조하고 병에 담아 포장하는 일까지 둘이서 해냈죠. 그렇게 시작했어요.
사업 초반부터 소위 마케팅으로 젊은 세대들의 주목을 받았어요. 맥주를 많이 팔기 위한 일종의 충격 전술인건가요.
아뇨. 재밌는 일을 많이 벌였지만 충격 전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맥주 사업가로서 중요한 두 가지 있어요. 첫 번째, 사람들을 약간 다르게 생각하게 만드는 거요. 예를 들어볼게요. 우리는 2009년에 18.2도짜리 맥주를 만들었어요. 그 당시엔 스코틀랜드에서 만들어진 맥주 중에 가장 강한 맥주였어요(이후 브루독은 55도짜리 맥주를 만들어 기록을 다시 깼다).
크랜베리, 자스민, 카카오가 들어간 맥주였고 와인을 숙성하는 목제 오크통에서 숙성시켰어요. 소비자들이 이 맥주를 맥줏잔이 아니라 와인잔처럼 작은 글래스에 나눠 한 잔씩 마시면서 맥주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맥주를 즐기는 색다른 방법을 선보인 거예요. 관습과 금기를 깨는 방식으로요.
두 번째,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맞서는 거예요. ‘안녕, 내 이름은 블라디미르야’라는 맥주를 만들어 크렘린궁의 푸틴에 보낼 때 단순히 재밌자고 한 게 아녜요. 사람들은 피부색, 성별, 성적 취향 같은 것 때문에 차별이나 핍박을 받아서는 안돼요. (2014년 소치올림픽을 앞두고 푸틴이 반동성애법을 지지하자 브루독은 이 같은 맥주를 만들어 항의했다. 맥주 판매 수익의 절반을 소수자 지원 단체에 기부했다) 약자를 대표하는 것에 진심이예요. 맥주를 통해 사회에 하고 싶은 얘길 전하죠.
◇“미친 짓으로 주목을 받더라도, 기본은 지킨다”
그래도 본질은 ‘맛있는 맥주’ 아닐까요, 그런 이벤트 맥주들도 맛이 괜찮았나요. 어떤 사람들은 마케팅할 시간에 맥주를 더 열심히 만들어야한다고 하던데요.
그동안 맥주 잘 만들지 않았나요? 하하. 항상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맥주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앞서 말한 맥주들도 모두 의미를 담은 맥주예요. 비아그라 맥주도 마찬가지예요. 왕실을 조롱하기 위한 장난이 아니었어요. 윌리엄 왕자 결혼식을 축하한다며 수많은 맥주 회사들이 겨우 라벨만 바꿔 새로운 맥주인 것처럼 내놨죠. 맛보다는 이벤트에 따라 제품을 판매하는 게 잘못됐어요. 모든 맥주는 만드는데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밌는 이벤트처럼 보였겠지만, 역설적으로 브루독의 맥주들은 항상 ‘맥주를 만드는 의미’를 늘 생각하면서 만든 것들이죠.
(※쫌아는기자들 4호의 부연 : 12살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양조를 시작한 마틴 디키는 대학에서 양조를 전공한 전문가다. 창업 초기 그가 만든 맥주는 영국 대형 수퍼마켓 체인 ‘테스코’가 개죄한 수제 맥주 대회에서 1~4위를 휩쓸었다. 마틴 디키의 창업 동료 제임스 와트는 미국 맥주 전문가 자격증인 시서론 ‘마스터’를 보유하고 있는데, 마스터 자격을 보유한 사람은 전세계에서 19명 뿐이다.)
요즘에도 직접 맥주 개발에 참여를 하나요.
네. 본사에 새로운 맛을 개발하는 팀이 있고, 제가 총괄이에요. 계속해서 새로운 실험을 하고요. 저와 공동창업자인 제임스 둘다 매주 두 번씩 시음 테스트를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매주 새로운 맥주를 내놓는 것이 목표죠.
매주 신제품요?
한 해 평균 200종에 가까운 새로운 맥주를 만들고 있어요. 저희 본사가 있는 스코틀랜드에서는 이 맥주 대부분 맛볼 수 있어요. 일부는 조금만 만들어서 바에서 유통하고, (서울 이태원을 비롯해 전세계에 100여개의 브루독바가 있다), 일부는 온라인몰에서 판매하죠.
펑크IPA같은 스테디셀러가 있잖아요. 그것만 많이 만들어 팔아도 될텐데 왜 새로운 맥주 만드는 데 열심인가요.
음. 말 그대로 저와 제임스에게 맥주 개발이 가장 큰 취미라서요. 맥주 더미에 눌러 앉는 것보다 더 흥미로운 건 이 세상에 없어요. 이전에 맛본 적 없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새로운 맛의 맥주를 마시는 거요. 맥주를 만들 때 어떤 물을 쓰고 어떤 종류의 홉을 쓰는지, 과일을 얼마나 넣는지, 어디에서 숙성하는지에 따라 맛이 달라져요. 정말 재밌는 세상 아닌가요?
그렇게 열심히 만든 맥주 레시피를 홈페이지에 아무런 대가 없이 공개하시죠. 영업 비밀을요.
과거엔 비밀이었죠. KFC의 닭고기 요리 비법 같은 거 말예요. 몇 년전에 제임스와 함께 미국 스톤 브루어리에 간 적이 있어요. 두 팔 벌려 환영해주더라고요. 그들의 맥주 만드는 과정을 전부 다 공개해줬고요. 그렇게 하는 거예요.
창업 때부터 지켜오고 있는 미션은, 세상 사람들이 저와 제임스만큼 맥주에 열광할 수 있게 만드는 거예요. 그 미션에 비추어 보면 공개하지 못할 이유는 없어요.
◇클라우드 펀딩으로 1000억원을 쏴준, 그들은 투자자 아닌 우리 팬
상장을 하지 않고 크라우드펀딩으로만 1000억원 넘게 모았더군요.
투자금이 필요한 이유를 공개하면 회사의 가치에 공감해주는 주주들이 펀딩에 참여하는 방식이에요. 지금 진행중인 크라우드펀딩엔 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고 2500만 파운드(약 386억)가 모였어요. 그동안 진행한 것 중에 최대죠. 이 정도로 호응은 예상 못 했어요.
(※쫌아는기자들 4호의 부연 : 브루독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누구나 쉽게 주당 25.15파운드(한화 약 3만9000원) 주식을 살 수 있다. 투자에 앞서 알아야 할 투자금의 용처, 회사의 매출, 자금 상황 등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주식 사면 각종 혜택을 제공한다. 평생 브루독 맥주 10% 할인같은 식이다. 맥주 신품의 사전 시음권을 주거나, 생일 땐 맥주 한 잔이 공짜다. 매년 열리는 주주총회(의 탈을 쓴) DJ파티에도 초대한다. 2019년 미국 오하이오에 맥주 호텔 도그하우스를 오픈했을 땐 런던에서 200명의 주주를 전용 비행기에 태우고 투어에 나섰다.)
크라우드 펀딩을 사업초기에 반짝 한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10년 넘게 이렇게 투자를 받았네요.
저도, 제임스도 전혀 예상치 못했어요. 크라우드펀딩이 비즈니스 모델이 될거라곤 상상할 수 없었죠. 크라우드펀딩 참여자들은 투자자가 아녜요. 우리의 팬이자, 친구고, 브루독의 사업과 추진하는 가치를 지지해주는 엄청난 후원자들입니다.
◇Drink Beer, Plant Trees... 세상에 없던, 탄소 네거티브 맥주
1000만평이 넘는 땅을 사고 나무를 심고 있던데, 맥주회사가 왜 나무를 심나요.
앞으로도 몇 년 안에 수백만 그루의 나무를 심을 거예요. 작년에 산 땅에 100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었어요. 숲을 만들었어요. 사람들이 맥주를 마실 때마다 나무를 심는 것과 같은 효과예요. 맥주를 만들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내뿜는 탄소 양의 2배의 탄소를 흡수하게 됩니다. 탄소 중립을 넘어선 세계 최초의 탄소 네거티브 맥주입니다.
탄소 네거티브라니. 맥주 회사가 왜 이렇게 환경에 신경쓰나요?
다들 잘 몰라서 그렇죠. 양조 산업은 다른 산업들 못지않게 에너지 집약적인 산업이예요. 기본적으로 물을 많이 쓰고, 발효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탄소를 뿜습니다.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어떤 산업이든 그들이 사용하는 에너지를 줄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해요. 탄소만 줄이는 게 아녜요.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고 해요. 맥주캔을 묶을 때 쓰던 플라스틱을 전부 재활용 가능한 종이로 바꿨고요. 양조하는 데 쓰는 전기도 전부 풍력 발전을 통해 얻은 전기만 씁니다. 영국 내 맥주 유통을 위해 쓰이는 트럭을 전부 전기차로 바꾼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실례이긴 한데요, ‘참, 좋은 마케팅’이네요. 고객들이 맥주마실 때 기분 좋도록.
생각하는 건 자유죠.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 뿐. 저는 아들 한 명, 딸 두명, 세 아이의 아빠거든요. 아이들, 손자, 증손자에게 예쁜 지구를 물려주고 싶어요. 살기 좋은 자연에서 즐거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요. 우리가 충분히 즐긴 것처럼요.
‘맥주계의 철부지 악동’이 브루독인데요, 지금은 어른 같은 말을 하시네요.
하하. 말씀하신대로 14년 사이 회사도, 저도 많이 성장했어요. 더 이상 나와 제임스 둘이 꾸려가는 양조장이 아니죠. 전세계에 직원이 2000명 가까이 있고, 신경 써야 할 게 더 많죠.
비아그라 맥주를 만들고 크렘린궁에 맥주 보냈던, 혈기왕성 사업초기가 그립진 않나요?
회사가 커진 만큼 가치를 현실화할 수 있는 힘이 생겼어요. 지금 브루독은 지속가능한 성장에 초점을 둬요. 고객이 많아진만큼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한 번 더 환경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됐고요. 같은 업종에 있는 다른 회사도 브루독의 방식을 보고 따라할 수 있어요.
다같이 지구를 위해 조금씩 노력하는 게 지금 집중하고 있는 거예요. 이 기사를 볼 한국의 회사들도 같이 하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