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최초의 봉건국가 전신은 구려국" 문제제기 남북한의 국사
교과서에서 가장 시각차가 큰 부분이 고구려다. 특히 고구려를 비롯한
삼국의 역사는 일제 식민지를 거치면서 많이 왜곡됐다. 초기 부분이
실재의 역사로 인정받지 못하고 전설의 시대 로 전락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 왜곡은 광복 후에도 제대로 시정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 여기에 남-북한이 삼국시대를 보는 시각마저 다르다. 남한은 삼국시
대와 통일신라시대까지를 고대사회 로 보는 반면, 북한은 중세봉건사
회 로 구분하고 있다. 북한 교과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3국
가운데서도 특히 고구려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우리민족이 가장 먼저 세
운 봉건국가일 뿐만 아니라 삼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과 외적의 침
략에 대한 투쟁을 밀접히 결합하여 추진했다고 가르치고 있다. 또 백제
와 신라는 고구려의 영향으로 성장한 일종의 부용국가로 설명한다. 따라
서 북한 교과서는 고구려에 대해 고구려의 강성 평양성 건설
수-당나라의 침략을 물리친 고구려 인민들의 투쟁 등 독립된 주제를
통해 김일성 교시, 김정일 말씀까지 넣어가며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남-북한 교과서의 고구려 서술의 차이점 가운데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기원에 대한 언급이다. "고구려는 부여로부터 남하한 주몽에 의하여
건국되었다고 한다(BC 37). 주몽은 부여의 지배 계급 내의 분열,
대립과정에서 박해를 피해 남하하여 독자적으로 고구려를 건국하였다."
(남한 고교 국사 상권 22쪽) "고구려는 고대국가 구려땅에서
고주몽(동명왕)에 의하여 기원전 277년에 세워졌다. 첫 수도는 비류
수 서쪽의 졸본성(오늘의 환인)이였다."(북한 조선력사 상권 52
쪽) 북한은 여기에 더해 소위 고구려의 전신이라고 주장하는 구려국
을 추가하고 있다. "기원전 5세기 이전 혼강과 압록강 중류 일대
에서는 고대국가 구려가 성립되였다."(북한 조선력사 상권 33쪽)
북한은 고구려의 전신으로 구려를 들고 있는 것이다. 남한 교과서에
는 구려에 대한 서술이 없다. 고구려의 초기 성장부분에서는 남한은
태조왕의 업적을 언급하고 있는 반면 북한은 태조왕에 대한 아무런 언급
이 없다는 점이 특이하다. "고구려는 우리나라 력사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봉건국가로서 점차 아세아의 대강국으로 발전하였다.(중략) 고구
려 사람들은 남의 나라를 쳐다보고 받드는 사대주의를 몰랐다. 그들은
높은 자존심과 진취적인 기상을 지니고 고구려를 강대한 나라로 만들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였다."(북한 조선력사 상권 59쪽) 즉, 북
한 교과서는 초기 고구려의 성장배경과 왕권확립, 사회의 변화 등에 대
해서는 대강 지나가고 대외투쟁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남
/"주몽 독자적 건립 고대국가"/북/곳곳에 김일성-김정일교시 삽입
신형식 이화여대 교수 서희건 편집국 부국장 배경분석 서희건
=남북한 교과서 모두 고구려 역대왕들에 대해 소홀히 다루는 이유는 무
엇입니까. 북한은 주몽이외에는 외세투쟁과 관련해 광개토왕, 장수왕 등
소수만을 다루고 나머지 왕들의 이름은 교과서에 보이질 않습니다. 남
한 교과서는 이름은 쓰지만 6대 태조왕 이상 90년(BC 37년 건국
경우)은 실재의 역사가 아닌 전설처럼 취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북 모두 역대왕들에 소홀 신형식=북한 교과서에 등장한 왕은
시조인 주몽과 광개토왕, 장수왕, 맨 마지막 왕인 보장왕 뿐입니다.
이것은 역사의 주체인 인민대중을 부각시키고 반역사적인 봉건통치배를 강
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특히 91년 개정전 교과서에서는 평양천도도 장
수왕이 한 것이 아니라 고구려 자체가 한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남한 교과서에서는 태조이전의 초기 고구려의 설명이 부족하다보니 전설처
럼 표기되었지만, 표현의 미숙에 따른 것이지 결코 전설처럼 보는 것은
아닙니다. 서희건=북한교과서에는 고구려의 전신이라는 구려국 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원전 5세기 이전에 건국했다고 연대도 상
당히 올려 잡고 있습니다. 남한교과서에서는 다루고 있지 않은 이 구
려국 이란 어떤 나라입니까. 신형식= 구려국 은 91년 북한 역사
교과서 개정과 함께 조선전사 의 내용을 교과서에 새롭게 반영한 것
입니다. 구려국이란 후한서 등 중국의 사서에 등장하고 있는 나라로
계부루의 고주몽 이전에 소노부(연노부) 중심으로 이어졌던 초기 고구
려를 말합니다. 북한교과서는 지난91년 교과서 개정이후 이 구려국을
추가해 BC 5세기 이전에 건국되었으며, BC 277년에 고구려에 의
해서 흡수-멸망된 것으로 주장합니다. 다시말해 구려와 고구려의 역사를
합하면 고구려가 945년 동안 계속되었다는 주장이지요. 서희건=
남한 교과서의 고구려 역사는 동명성왕부터 계산해도 7백5년입니다. 역
사가 길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고구려의 건국문제는 깊이 연구
해 볼 과제라고 할 수 있군요. 북한은 고구려가 이른바 봉건사회라면서
사회구조가 과거 노예소유자와 노예에서 지주와 농노(농민)로 바뀌었다
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봉건제도의 구체적 내용은 전혀 다
루고 있질 않습니다. 오히려 남한 교과서는 대가, 사자, 조의, 선인
등 관료제도 등을 언급하고 있어 대조가 되더군요. 신형식=북한의
역사서술은 안팎의 원쑤놈들 즉, 봉건통치배와 외적을 반대하여 싸워
이긴 인민들의 투쟁사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른바 봉건사회로
의 이행 부분도 고대노예의 줄기찬 투쟁 때문에 전과는 다른 방법인
토지대여를 통한 착취 로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것이지만 구체적 설명은
없습니다. 그러나 남한의 교과서에서는 고대 사회로의 이행에 따라 강력
한 왕권아래 율령제도의 원초적 모습으로서 여러 관직제가 나타나 국가조
직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서희건=남한 교과서는
태조왕 재임기간을 설명하면서 이때 대외전쟁과 왕위의 독점적 세습이 이
뤄져 국가의 초석이 놓였다고 설명합니다. 북한교과서는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동명왕)에 대해서는 건국설화와 함께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반면
, 태조왕 등 대부분의 왕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북, 태조왕에 대해 언급없어 신형식=대체로 북한 국사교과서에는
국왕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주로 건국자나
패망한 군주, 실정을 한 국왕이 나옵니다만 개정된 새 교과서에서 삼국
통일을 위한 고구려의 투쟁과 관련하여 광개토대왕, 장수왕의 업적을 소
개한 것은 특이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편된 교과서에서도
고구려의 국가초석을 닦은 태조왕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북한이 과
거의 구습에서 탈피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지요. 서희건=다음에
는 고구려의 발전과정을 남-북한의 교과서가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구체
적으로 비교해 볼까요. 정리=김한수 기자